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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시가를 모아 번역하여 엮은 책이다. 제목에서 표현된 '풍요로운 갈대 들판(豊葦原)'이란 갈대가 무성했던 일본을 지칭하는 의미이며, '시이카(詩歌)'는 시가 곧 일본의 전통 시가를 일컫는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의 전통 시가 중에서 가장 짧은 3행의 정형시인 하이쿠, 여기에 2행이 덧붙여진 와카, 그리고 한시와 기타 전통 시가들을 한데 모아 한국어로 번역하여 몇 개의 주제로 구분하여 엮은 것이라 하겠다. 하이쿠와 와카는 각 시행의 음절수를 엄격하게 지켜야만 하며, 시간 혹은 계절 감각을 지닌 시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한다는 규칙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을 매력적으로 여겨 미국 등에서는 ‘영어로 쓰는 하이쿠’와 같은 작품들이 지어지기도 한다.
3행으로 이뤄진 시행에서 각 행의 음절 수가 '5/7/5'로 이뤄진 하이쿠는 짧으면서도, 절묘한 시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알려져 있다. 마츠오 바쇼와 고바야시 잇샤 등이 대표적인 하이쿠 작가이며, 그 짧은 형식과 절묘한 시어로 인해 일찍부터 서양에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5행으로 이뤄진 와카는 3행까지는 하이쿠와 동일한 음절 수를 유지하며, 나머지 두 행이 각각 '7/7'의 음절수를 이루고 있는 형식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실은 렌카 혹은 렌쿠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공동 제작한 작품이라고 하겠는데, 각각 3행과 2행의 작품을 이어 짓는 방식이다. 이 형식의 특징은 작품 전체의 일관적인 흐름보다 앞 구절의 내용을 다음 사람이 연결시켜 이어나가는 것이라, 내용이 연속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새봄, 우리 꽃 누리'라는 제목의 봄을 노래한 작품을 수록한 작품들을 한데 묶은 첫 항목으로부터 '겨울 들판을 헤매도는 꿈' 등의 항목에 이르기까지, 시가에 나타난 계절 감각과 다양한 주제들로 묶어 작품을 번역하여 배열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항목에서는 '5/7/5'의 음절 수로 이진 지3행과 '7/7'의 음절이 배치된 2행이 서로 엇갈려,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시들의 연작들을 '현현과 소멸의 교향시, 렌카와 렌쿠'라는 제목으로 해당 작품 일부를 수록하고 있다. 각 시행마다 음절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일본 시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번역을 통해서는 그러한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예컨대 다음 작품을 보자.
반가워라!
산길에서 만난
어여쁜 제비꽃.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
이러한 번역과 함께 제시된 일본어 원문과 로마자 발음에 제시되어, 3행의 발음이 각각 ‘5/7/5’음절로 이뤄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번역문의 시행과 원문의 내용이 차이를 보여, 아마도 번역자가 의역을 한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각 시행의 음절수를 지키면서 절묘하게 형상화한 작가의 의도가 이 번역시를 통해서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것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실상 이러한 점은 모든 시의 번역에 있어서 항상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절수에 엄격한 일본시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로서는 이러한 부분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하이쿠와 와카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일본 시가 전반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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