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족의 머리, 천민의 몸!’
누군가 조선시대 기녀의 처지를 이렇게 서술했을 때,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신분적 차별이 뚜렷했던 조선시대의 기녀들은 천민에 속했으며, 사회적으로 언제나 소수자로서의 제약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당대의 지배 계급인 사대부들을 상대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와 예술적 능력을 겸비해야만 했다. 노래와 춤은 물론, 시조와 한시를 짓는 등 지배층의 문화를 능숙하게 구사해야만 풍류공간에서 인기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이나 야담 등에 나타난 기녀들의 면모는 매우 능력있고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들의 대부분은 기녀들을 상대했던 남성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에, 남성들이 기녀들의 삶에서 보고자 했던 모습만을 그려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황진이와 매창 등 조선시대 뛰어난 기녀들의 모습은 정작 기녀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그러한 기녀들을 상대했던 남성들의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지 않았던 기녀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경우는 매우 드물 수밖에 없기에, 여전히 조선시대 기녀들의 형상은 남성들의 시각에 굴절된 모습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그러던 중 매우 드물지만 기녀들의 목소리가 담긴 자료들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현대어로 풀어서 정리한 내용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기녀들이 지은 가사집의 형태로 전하는 <소수록>이 비로 그것인데, 아마도 그 제목은 ‘근심을 풀어내는 기록’이라는 뜻의 ‘소수록(消愁錄)’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가사를 비롯하여 모두 14편의 기록을 포함하고 있는 <소수록>과 함께 다양한 자료에서 찾은 기생 관련 작품들을 모아 현대어로 풀어내어 주석을 제시하고, 책의 뒷부분에는 원문을 주석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 바로 이런 체제로 인해 일반 독자들과 함께 전공자들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번역자는 돌아가신 자신의 작은할아버지에게 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그 첩실 할머니의 삶의 돌아보면서 조선시대 기생첩의 고단했던 삶의 모습을 유추하고 있다. 화류계에서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했던 기생들이지만, 대부분의 기녀들은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희망으로 여겻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활동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기녀들의 노후를 비교적 안락하게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수록> 읽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구성은, 작품의 내용에 따라 원문을 재배치하여 주제별로 엮어내고 있다. 먼저 제1부는 ‘기생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어지는 제2부에서는 3편의 작품을 제시하면서 ‘기생놀음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기생을 다룬 일반적인 기록들에서는 기생에 대한 남성의 시각만이 다뤄지고 있지만, 제3부에서는 ‘기생이 보는 눈, 기생을 보는 눈’이라는 제목으로 기생들이 당대 남성을 평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희귀하지만 ‘기생과 편지’라는 제목을 통해서, 기생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제시되고 있다. 부록으로 ‘조선의 기생’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시대 기생들의 존재와 사회적 처지 등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고 하겠다.
따지고 보자면 기생들 역시 조선시대의 제도와 문화가 만든 존재들로서, 견고한 유교적 윤리의 잣대에 의해 ‘사회악’처럼 인식되었던 존재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남성들의 유흥을 위해 만들어놓고, 남성들의 방탕한 유흥문화에는 관대하고 오히려 기생들에게 그 잘못을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물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요구된다. 결국 기생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이끌었던 문화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체제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봄으로써, 그동안 왜곡된 관점에서 바라봤던 기생에 대한 인식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