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유적지를 다니면서 떠올린 생각
정 성 삼
『대장금』 드라마로 동아시아권에 불던 한류(韓流)와 최근 유럽∙미주(美洲)지역 K-팝(POP) 한류 바람에 도대체 무엇이 한국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나는 외손자 홍승규군과 함께 경주 불국사∙석굴암∙안압지∙포석정∙남산∙박물관을 다니면서 한국문화의 원류(源流)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문화의 원류는 고조선 건국신화에 나오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상과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과 현대의 기독교 사랑 등의 사상이 공존(共存)과 융합으로 공동체를 지향하고 보편적 인류애(人類愛)로 혼연일체가 된 즐거움을 누리는 것으로 표출(表出)되어왔다.
중국역사서에 우리 고대 종족인 예족(濊族)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예족은 10월이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고 하였다.
이것을 무천(舞天)이라 하였는데,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삼한(三韓)의 10월제도 모두 제천의식이었다.
그래서 한국문화는 신명문화에서 비롯되어 오늘날의 대중문화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한국대중문화는 동아시아나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게도 공감대를 이루어 그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고구려족(族)의 근원을 말살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중국은 동북아 지역의 신석기시대 홍산(紅山) 문화권에 고구려의 역사를 포함시켜 중국 역사로 왜곡시키고 있다. 정부에서는 2000년도에 중국 동북공정의 대응책으로 신화로 다루었던 단군의 조선역사를 복구하였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상고(上古)시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한국문화의 원류를 신라문화에서 찾아야한다고 말하면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상고시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한국문화의 원류는 신라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여 고려∙조선∙근대국가로 내려오는 동안 민족통일의 정체성을 이어오면서 오늘에 이른 것에 기인(基因)한다고 본 것이다.
나는 경주 인근 지역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는 편인데, 이번에는 동행자가 있어서 평소보다 경주(慶州)가 신라역사문화자연박물관으로 더욱 커 보였다.
이곳은 천년 고도(古都)로서 불국토(佛國土)를 이루고 살았던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문화가 곳곳에 유적이나 유물로 살아 숨쉬고 있어서 한국문화의 원류로 존숭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라역사문화는 후세인들에 의해 기록되어 왔는데, 고려때 김부식이 편찬한 정사(正史) 삼국사기에 ‘민족예술의 꽃’이라고 하는 석굴암과 불국사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행이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사찰건립경위를 설화형태로 기록한 것이 오늘날의 신라문화연구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신라사(新羅史)연구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역사학회나 대학에서도 신라역사에 대해서는 비중있는 연구가 적은 이유가 되었다. 최근 야사(野史)를 연구하는 한 향토사학자의 저작물을 보면 “경주는 불국토(佛國土)이지, 신라 도읍지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 년 신라의 역사는 한국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신라국가에 대한 전문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에서는 지적된 바 있다.
신라 국가의 역사관(歷史觀)이 정립되지 아니하였는데 “신라의 문화가 한국문화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재 지방정부와 국가에서는 신라문화의 우수성과 그 가치를 발견하고 후세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8년 ‘새천년의 미소’라는 테마로 시작한 경주문화엑스포는 해를 거듭할수록 신라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리는데 그 일익을 담당해오고 있다.
이러한 행사를 관람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공연행사 외에 경주신라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보여주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다.
경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적과 유물은 신라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과 유물 가운데 1995년 불국사․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2000년에는 신라왕을 비롯한 고분군 지역인 대릉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지구, 천 년 왕조(王朝)의 핵심인 월성지구, 왕궁(王宮)방어시설인 산성지구, 신라인의 애환과 신앙이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 남산지구 등 경주 일원 다섯지구가 추가로 등록되었다.
이와 같이 신라역사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신라 천 년의 역사와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받은 명성(名聲)때문이다.
유네스코가 불국사는 불교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성화된 사례를 들어 아시아지역에서는 아주 독특한 건축물이라 하고, 석굴암도 신라 전성기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의 조형계획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경주가 천 년 역사문화 도시로서 간직했던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문화엑스포를 통해 여러 나라의 이질적 문화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세계문화를 이해하는 안목을 넓혀주고,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노력은 신라문화가 한국문화의 원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경주 유적지를 다니면서 떠 올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통일신라 불교문화의 전통 위에 화려한 가야문화와 온화한 백제문화, 패기있는 고구려 등의 문화가 합쳐지며 하나로 이룬 찬란했던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한국문화의 원류를 찾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승규군이 할아버지와 함께 경주를 다녀온 후 신라문화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반가운 일이다.
첫댓글 송재 형, 반갑소, 할아버지 노릇 톡톡히 했구려, 소제도 같은 생각이나 워낙 기록이 없으니 답답 할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