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동화를 쓴 적이 있다 내가 언니의 숙제를 찢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언니도 화가 나서 엄마의 가계부를 찢었고 엄마는 아빠의 신문을 찢고 아빠는 달력을 찢다가, 온 세상에 찢어진 종이가 눈처럼 펄펄 내리며 끝난다
손금이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집에 남고 싶은 것은 정말로 나 하나뿐일까? 언니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더는 찢을 것이 없었다 눈이 쌓이고 금값이 오르고 검은 외투를 꽁꽁 여민 사람들이 거리를 쏘아 다녔다
엄마는 결국 한 돈짜리 목걸이를 한 애인을 따라갔지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오겠다고 했다
따로 따로 떨어지는 눈과
따로 노는 낡고 지친 눈빛을
집이 사라지고 방향이 생겼다
파편화 된 삶이 '숙제를 찢고', '가계부를 찢고'. '신문을 찢고', '달력을 찍'는 연쇄로, 또 '찢어진 종이가 눈으로 펄펄 내리'는 동화 같은 서사로 표현되어 있다. 엄마는 돈 많은 남자를 따라 가버리고, 제각기 '손금이 사라진 사람들'이 되어 "따로 노는 낡고 지친 눈빛"이 된 식구들이 "따로 따로 떨어지는 눈"으로 형상화된다. "찢다'와 '떨어지다', '눈'(雪)과 '눈'(眼)의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