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입원실 하얀 벽지 옆에/푸른 약국이라는 이름이 쓰여진 종이 달력이 있다/벽에는 못이 박혀 있고 종이 달력은 하루종일 거기 걸려 있다/햇빛에는 피맺힌 애환이 있고 달빛은 무심한 민간요법이다/달력이라는 이름의 혈서의 무게가 온다/감탄사가 쏟아지는 달력의 무게도 온다/물 새는 항아리 같은 비탄의 무게도 온다/심장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봄이 온다//아침이며 낮이며 저녁이며 밤이 오고/봄이며 여름이며 가을이고 겨울 같이/메멘토 모리, 종이 달력 옆에 대문자 괘종시계가/목을 빼들고 창밖을 내다본다/앞집 앞마당 죽은 나무에 빨랫줄을 묶어서/햇빛이 반짝이는 아기의 배냇저고리가 하얗게 빛난다/아기를 업고 있는 젊은 엄마가/어부바, 아기의 엉덩이를 토닥인다/얼마나 평화로운 선율인가//너는 어디에서 오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회자정리라고 하는데 이제 병실은 기침이나 종양이나 콩팥의 비명이여/푸른 약국이라는 이름의 달력이 낡은 벽지에 남아 있고/빛바랜 정든 달력이 구겨진 기차표같이 한 장 나에게 온다/앞마당 죽은 나무에 하루하루 양동이 물을 주고/이름을 곧 희망이라고 하자/어부바라는 이름을 사랑이라고 하자
「현대시(2024년 4월호) 전문」
이 시에는 삶과 죽음처럼 대비되는 것들이 있다. 낡은 벽지에 남아 있는 “푸른 약국이라는 이름의 달력”이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면, “구겨진 기차표같이 한 장 나에게” 온 “빛바랜 정든 달력”은 흘러간 과거다. 삶은 편도고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는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기침이나 종양이 콩팥의 비명”이 낭자한 병원 입원실 안의 환자들과, 병실 밖 창문 너머 나무에 매단 빨랫줄에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하얗게 널고 있는 젊은 엄마의 처지는 같지 않다. 환자들에겐 “어부바,”하며, 업은 아기의 엉덩이를 토닥이는 손짓과 자장가가 아름다운 선율 같다.
침상에 누운 환자들에게 병실 밖 환한 햇살은 그 눈부심으로 인해 오히려 “피맺힌 애환”으로 다가온다. 중병을 앓거나 노환으로 인해 기약할 수 없는 미래와 함께 생을 돌아봤을 때,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회상 속에 떠오르는 지난 삶은 ‘혈서’를 쓰듯 비장했던 다짐들과, 그 다짐들을 하나하나 성취해나가던 순간마다의 환호, 힘겹게 무릎 꿇던 좌절과 절망의 무게를 가진 ‘달력’으로 상징된다.
메멘토 모리(Moment 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은은한 달빛이 진실하고도 “무심한” 조언을 건넨다. ‘너’는 결코 모르겠지만, “어부바라는 이름”의 “사랑”을 하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앞마당 죽은 나무에 하루하루 양동이 물을 주”듯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 푸른 약국이라는 이름이 써진 종이 달력, 그것 역시 기를 쓰듯 하루하루 지워나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