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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 봉사활동을 갔다 왔다. 낮에는 브롱스의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나누어 주며 노숙자들과 삶의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밤에는 좋은 레스토랑과 쇼핑센터가 늘어선 거리에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프로그램이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도시에 존재하는 경제생활의 극과 극을 체험한 우리는 뭔가 불편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프로그램을 지도하던 강사는 “불편하신가요? 불편한 게 맞는 겁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추운 겨울날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경제적 양극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국과 미국은 둘 다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가졌다. 개인적인 부의 축척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권장하기까지 하는 자본주의이기에 사람들 사이의 빈부격차는 언제나 존재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국가마다 경제의 운용에 정부가 개입하는 정도에 따라 이 격차는 커지거나 작아진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정부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를 원칙으로 한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경제는 정부나 그 밖의 기관이 하는 개입이 없더라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자유(방임)경제의 개념은 미국의 부상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질서로 자리 잡았다. 50여 년 동안 지속된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 통제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결이 통제경제의 붕괴로 결말이 나자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시장경제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독주체제가 갖춰지자 오히려 통제경제를 의미하는 정부개입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각국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정도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민물학파(freshwater school)와 짠물학파(saltwater school)의 주장이 그것이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경제학학교로는 우선 오대호 주변에 위치한 시카고 대학교의 ‘Booth School of Business’, 노드웨스턴 대학교의 ‘Kellogg School of Management’ 등이 있다. 이들 경제학교는 호수 근처에 있기 때문에 재직한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자들은 ‘민물 경제학파’라고 불린다. 다음으로 태평양과 대서양 주위에 위치한 경제학교로는 하버드 대학교의 ‘Kennedy School, 스탠퍼드 대학교의 ’Stanford Graduate School of Business‘, 그리고 MIT의 'Sloan School of Management' 등이 유명하다. 바다 주위에 위치해 있는 이들 학교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자들은 ’짠물 경제학파‘라고 불린다.
민물 경제학자들은 자유경제를 지지한다. 순수자본주의의 개념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자율통제성을 믿는 그들은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만에 하나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순수한 시장경제는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했다. 정부의 제제가 없다보니 기업들은 임금, 노동시간, 작업환경 등을 임의로 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생활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기업에 대한 별다른 제제가 없다보니 한 기업의 독점이나 전매 등도 빈번히 일어났다. 사람들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주길 바랬고, 그렇게 생겨난 논리를 지지하는 학파가 바로 ‘짠물 경제학파’다.
짠물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개입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정부의 개입은 원활한 경제운용을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나 미국의 최저임금제도, 주 48시간미만 근무제도 등이 정부가 하는 개입의 대표적인 요소다. 짠물 경제학자들은 심지어 세금까지도 정부개입에 해당한다고 본다. 빈부격차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정부의 제재가 많은 국가일수록 작다. ‘스칸디나비아 사회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세금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을 보자. 핀란드의 경우 소득세가 무려 51%에 이른다. 이는 미국의 35%와 한국의 38.5%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높은 소득세로 만든 재원을 활용한 무상 복지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는 덕분에 핀란드에서 극빈층은 드문 편이다. 이렇게 정부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빈부격차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자본주의의 기본인 자유주의의 의의가 훼손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떤 것을 택해도 곤란할 경우에 적합한 조언이 불교에 있다. 불교는 양 극단을 떠난 중도를 강조한다. 여기서 중도는 올바른 길을 의미한다. 경제에 있어서의 올바른 길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짠물경제나 민물경제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양자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 짠물경제의 방식을, 그 반대일 경우 민물경제의 방식을 적용한다면 모두가 함께 사는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