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숨 사이에 그 섬이 있다 /김영욱
새들도 날아다니다 휘청거리는 날이다. 파도의 낮은음자리표로 올라탄 샛파람과 하늬바람이 서로 좀 더 높은 소리를 내겠다며 삐걱삐걱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겨울바다를 건너온 북서풍도 입이 천 개쯤 있는지, 허공에 대고 한꺼번에 웅얼거리고 있다. 문득 오싹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 고팡의 철문을 돌아보았다. 철문 틈새 어딘가에도 바람의 손톱이 끼었는지, 문짝이 끽끽거리고 있다.
이런 악천후엔 축시의 귀신들도 발이 얼어 바다를 건너지 못할텐데, 동장군이 고드름 칼날을 바람의 허리춤에 매달고있을 이 밤, 성난 바람의 신이 어디론가 섬을 끌고 가고 있는 듯한 괴이쩍은 느낌이 든다. 상군 해녀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못한 그날도 넋건지기굿이 있던 오늘처럼 파도가 울부짖으며 고꾸라졌다.
징, 장구, 꽹과리의 고조된 소리까지 합세하여 심방이 전하는 망자의 마지막 넋두리마저 갈기갈기 찢어댔다. 생가지 나무 끝에 망자가 평소 쓰던 밥주발을 넋그릇으로 매단 혼대를 건네받은 유족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자, 심방이 망자의 속옷을 들고 조수웅덩이에 직접 몸을 담갔다. 바다가 파도의 입을 쩌억 벌리고 심방마저 물어갈 듯한데도 노련한 그녀는 넋그릇을 물속에 담갔다 빼냈다 하며 망자의 허운데기*를 찾고 있었다.
섬 속의 섬 우도, 하고수동 해변과 하우목동 선착장 사이에는 넙대대한 갯바위 하나를 중심으로 암초대가 형성되어 있고, 여기서는 5미터만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도 전복, 해삼, 성게가 풍족해서 해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물질만 반 백년 경력인 상군해녀는 평소 15미터 물밑에서도 거뜬히 서너 시간 작업을 해냈으니, 모처럼 찾아온 조금 물때를 눈보라 탓으로 놓칠 수 없었나 보다. 그날 아침녘에도 그녀는 해녀들의 상비약인 뇌선부터 챙겨 먹고, 몸에 콱 조이는 고무 잠수복을 입고서 망사리를 어깨에 메고 나섰다고 한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흐린날 인데도 물속은 오히려 따뜻하고, 오랜 경험상으로 볼 때 궂은날도 곧 개일 거라며 집을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떠날 때를 잘못 헤아린 그녀는 물너울 속에서 허깨비를 보았는지, 물숨을 먹고 목숨을 잃어버렸다.
넋은 겨우 건졌지만 바다가 그대로 무덤이 되어버린 그날, 그녀는 혼백상자를 매고 자신의 저승길로 뛰어들었다. 물론 의도한 일은 아니겠지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폐부 깊숙이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내듯 비우는 그녀의 숨비소리를 들은 동료들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셋이서 한 팀을 이뤄 작업했으나,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뭍 쪽으로 몸을 붙이지 못하고 물귀신이 흔들어대는 풍랑에 휩쓸려 그만 잠수복이 수의가 되어 버렸다.
바다를 해자로 두른 우도에는 물숨이 있다. 첫 들숨과 마지막 날숨 사이에 뭍짐승들의 생이 있는 것처럼, 물숨이 있는 물속에서의 삶을 맛본 해녀들은 체력이 허락되는 한,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잠수병을 얻고 귓병을 얻어 잘 들리지 않는 미수(米壽)의 할망 해녀들조차 삭신이 쑤시는 몸을 짠물 속에 담그면 목욕이라도 한 듯 개운하다며 바다에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에는 떠날 때를 알고 행하는 자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역설이 엄연히 존재한다. 숨, 그것은 살아 있다는 신이 내린 증표다. 또한 그것은 신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부지되는 목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풍랑주의보로 며칠째 도항선이 뜨지 못하는 텅 빈 겨울 섬은 온통 바람의 차지다. 사방이 바다로 뻥 뚫려 있으니, 바람의 칼춤에 온 전신이 베여도 어디 숨을 곳도 마땅찮다. 영등할망이 섬을 떠나지 않았으니, 몸을 낮춰 지내란 뜻인가 보다 싶다가도 한해살이를 기약하고 섬에 든 내게는 관광객이 철수한 이때야말로 섬을 속속들이 구경하기 좋은 때이다. 정낭 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를 해보지만, 입으로든 코로든 내 멋대로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가 없다. 이내 정수리까지 둔기로 얻어맞은 듯이 띵하다. 몸을 가누는 건 고사하고 호흡의 리듬마저 놓치게 되니, 몹시 당혹스럽다.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숨을 쉬어온 지도 반 백 년이 넘는 내가 숨구멍까지 틀어막는 바람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그럭저럭 바람에 등 떠밀려 간신히 내려온 하고수동 해변에서 다시 바다를 마주 하고 섰다. 그때 마을안길 쪽에서 유모차 같은 것에 테왁과 망사리를 싣고서 힘겹게 끌고 오는 해녀 두 분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설마 이런 날씨에도 물질을? 궁금함을 못 이긴 척하며 묻고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해녀 탈의장 쪽으로 난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혹시 저분들은 이날 이때까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뭍과 물을 오가며 평생을 살아 왔을까 싶은데, 순간, 이 한 겨울에도 벗겨지지 않는 물안경 자국이 또렷한 얼굴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잠시 뒤따라오라는 손짓이 이어졌다.
불기도 없는 불턱에 앉아 있는 소복 입은 두 모녀가 보였다.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군해녀의 딸과 손녀인 듯한데, 그들 앞에는 종이에 싸인 음식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어느덧 저무는 해가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힌 수면 위로 제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대상군 해녀가 앉은뱅이밥상을 들고 서둘렀다. 갯바위 위에 제사상이 차려지고, 동료 해녀들이 빙 둘러섰다. 조금 뒤로 물러나 가만히 지켜보니, 지는 해를 향해 ‘어멍 잃은 불쌍한 우리 딸네들 잘 돌봐 줍써’ 하는 간청과 함께 음식을 싼 종이가 그대로 하나하나 바다로 던져졌다. 지드림이라고 했다. 이렇게 지드림을 정성껏 드려야 망자의 생전기억이 지워져 아무런 원한도 갖지 않은 물귀신이 된다고 했다. 헉, 그 말에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아랫입술이 안쪽으로 당겨지면서 저절로 휘리릭 소리가 났다. 어질머리에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문득 일렁이는 오렌지빛 석양이 영등할망의 큰 테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 몸이 잠시 앞으로 휘청거렸나 본데, 누군가가 고꾸라지기 직전에 내 목덜미를 잡아당겨주었다.
숨과 숨 사이에 섬이 보였다. 날숨과 들숨 사이에 내가 ‘꼬르륵’ 물밑으로 가라 앉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에겐 있는 물숨이 내겐 없었다. 당연히 나는 허우적거렸 다. 물질을 할 줄 모르니, 나는 가라앉는 섬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나는 울부짖었다. 가위에 눌린 악몽에서 몸이 풀려난 시각, 바람이 천 개의 주먹을 쥐고 내 방 창문을 두드리고 키 큰 나무들이 휘청휘청 혼대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핸드폰을 찾아 ‘윈드 파인더’ 앱을 열고 풍속과 파고를 확인해보니, 내일도 배가 뜰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 문득 얼마 전 수중고혼이 된 해녀는 일찍이 바다가 막아버린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섬의 애옥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의 깊이만큼 바다에 몸을 담근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제주 바다에서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갈수록 듣기 어려워지고 있다. 2022년 기준, 내가 머물렀던 제주의 부속섬인 우도에는 192명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었으나 젊은 처녀나 아낙네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하긴 수온상승으로 탁해진 물속을 곱을락하듯** 헤집으며 숨을 꾹꾹 참은 대가로 얻을 수 있던 바다의 선물마저도 줄어들었으니, 숨빔질을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젊은 그네들을 탓할 순 없다. 그나저나 온몸이 축축하다. 땀을 훔친 손바닥에서 바다의 짠내가 난다. 정말이지, 낮에 심방이 건져 올린 허운데기 한 움큼이 망자의 것이었을까? 멀리 해안선의 집어등이 조등 같은 밤, 나는 창밖의 나뭇가지 그림자의 춤사위에도 소름 돋도록 무서운데, 동료를 잃은 심란함으로 몇 번쯤은 잠자리 이불을 걷어찼을 해녀 할망들은 내일 또 물질을 못 나가면 삭신이 더 쑤시려나? 내 얕은 잠의 창문까지 두드려대는 삭풍이 얄궂기만 하다.
*허운데기 – 머리카락을 얕잡아 부르는 제줏말
**곱을락 – 숨바꼭질의 제줏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