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체험기
보통 시민 박씨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소비 활동을 시작했다. 생수 한 병을 마시고, 새벽에 배송된 택배를 정리했다. 또, 아침을 먹었고 옷을 입었으며 등교했다. 오늘도 그는 평소와 똑같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며 삶의 흔적을 남기고 지구 곳곳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사진 1] 온라인으로 장 볼 때 오는 택배 상자 / [사진 2] 온라인으로 장 볼 때 택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식료품 포장재
필자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나름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온라인으로 장을 보거나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 등 예상보다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었다. 더불어 청소할 때 자주 사용하는 테이프 클리너, 비 오는 날이면 건물 입구 곳곳에 놓여있는 우산 비닐 포장기, 붕어빵 포장지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쓰레기가 발생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생활용품의 부산물을 모아보니 작은 종이봉투를 가득 채운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지난 30일부터 6일까지 일주일간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챌린지’를 실천해보았다. 해당 챌린지는 환경보호를 위해 불필요한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말한다.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자원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챌린지 실천 첫날, 외출 전 집 안 청소를 했다. 평소라면 테이프 클리너로 빠르게 바닥 청소를 했을 테지만, 빗자루를 꺼내 바닥을 쓸었다. 테이프 클리너만큼 편리했다. 무엇보다도 한데 모이는 먼지들을 보니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종이컵 대신 텀블러, 휴지 대신 손수건을 챙겼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방문했을 때 테이블에 묻은 얼룩이나 식사 후 입가를 닦기 위해 습관적으로 휴지에 손이 갔지만, 손수건을 꺼내 사용했다. 손수건 한 장으로 테이블을 닦고 입가를 닦자니 찜찜해서 흘린 것은 닦지 못하고 입만 대충 훔쳤다. 다음부터는 손수건을 2장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포화 된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이 임박한 햄과 시들시들한 채소를 꺼내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사용한 텀블러를 세척하고 손수건을 빨아야 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쓰레기를 줄인다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밤 텀블러를 세척하고 손수건을 빨고 있으니 내가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난 후, 그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어딘가에 축적되리라는 무책임한 믿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느새 쓰레기에 대한 책임감이 자리 잡았다.
실천 이틀째에는 길거리에서 풍기는 붕어빵의 냄새를 참지 못하고 붕어빵을 사러 갔다. 하지만 붕어빵을 사서 나오는 이들의 손에 쥐어진 종이봉투를 보고 난 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쓰레기를 손에 쥘 뻔했다. 다회용기를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다음에는 다회용기를 가져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3] 외출 전 챙기는 물품들 / [사진 4] 일회용 티백
실천 삼일차, 사일차가 됐을 때는 외출 전 텀블러, 다회용 빨대, 장바구니, 손수건을 챙기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 아니게 됐다. 비록 가방이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무거운 만큼 쓰레기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가방에 든 짐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손에 쓰레기가 들린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기 위해 일회용 티백 하나를 뜯었다. 곧바로 내 손에 쓰레기가 쥐어졌다. 티백 포장지와 티백.
[사진 5] 텀블러에 포장한 음료 / [사진 6] 증정품을 받기 위해 뽑은 지류 티켓
오일차에는 영화를 보러 갔다. 어느 정도의 크기의 다회용기에 팝콘을 담아야 할지 고민하다 팝콘 먹는 것을 포기했다. 음료만 텀블러에 담아갔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무사히 상영관에 도착했다. 지류 티켓을 뽑지 않고도 모바일 티켓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영화 상영 후 영화 관람자에게 증정품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표소로 향했다. 증정품을 받기 위해서 지류 티켓이 필요하다는 말에 무인발권기에서 티켓을 출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쓰레기가 내 손으로 들어왔다.
‘제로웨이스트 챌린지’가 끝나기까지 하루를 남기고 냉장고의 식자재들로 식사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냄비를 들고 집 근처 순순대국밥을 파는 식당으로 향했다. 순대국밥 3인분을 포장했다. 반찬 담을 용기는 챙겨오지 못해 반찬을 제외한 새우젓과 양념장만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냄비째 순대국밥을 끓여 먹으니 배달시켜 먹을 때보다 편리하게 느껴졌다.
[사진 8] 청설모가 물티슈를 먹이로 착각해 먹는 모습 / [사진 9] 등산로 벤치에 버려진 쓰레기 / [사진 10] 플로깅 하면서 수거한 쓰레기
마지막 날에는 필자가 사는 동네의 뒷산을 오르면서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했다. 몇 달 전, 동네 뒷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물티슈를 먹이로 착각해 먹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선택한 장소였다. 쓰레기를 수거하다 보니 생수병, 휴지, 각종 간식 포장지 등 사람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곳곳에 놓인 벤치 주변으로 쓰레기가 많았는데, 일회용 도시락이나 나무젓가락, 믹스커피 포장지 등 산에서 식사한 후 쓰레기를 챙겨가지 않는 등산객이 많은 듯했다. 처음에는 구석구석 숨겨진 쓰레기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지만, 챙겨간 종이봉투에 쓰레기가 쌓일수록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챌린지를 할 때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주변 사람들한테 환경보호 실천 중임을 알리는 일이었다. 식당에 가면 자연스럽게 내 앞에 놓이는 휴지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방식의 환경보호 방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이번 캠페인을 실천하며 깨달았다.
제로웨이스트 챌린지는 일주일로 끝이 났지만, 환경보호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실천 중이다. 해당 챌린지를 통해 환경보호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손수건 대신 휴지를 사용하고 붕어빵의 유혹을 참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여전히 테이프 클리너 대신 빗자루를 사용하고, 텀블러와 장바구니는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필수품이 되었다. 오늘도 필자의 가방은 두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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