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고 만남 추구’, 진짜 MZ 세대 사랑법 맞아?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들, 너도나도 자극적 포맷 개발 경쟁 ‘눈살’
최근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참가자들의 민망하고 선정적인 활동 설정이 점점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웨이브는 ‘잠만 자는 사이’ 예고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잠만 자는 사이'는 저녁 6시에서 새벽 6시 사이에 합숙 공간에서 남녀 출연진들이 혼숙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해당 영상에는 ”나는 왁싱을 한 사람이 좋더라“ ”벗을까 그냥” 등 출연진들의 자극적인 대사가 여과 없이 등장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도를 넘어섰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잠만 자는 사이' 예고편에서 출연진들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해당 영상은 청소년도 관람 가능하다. 출처: 잠만 자는 사이 (웨이브) 예고
이 예고 영상에 달린 댓글 292개 가운데 프로그램 취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댓글은 단 4개에 불과했고 다수가 프로그램 취지에 불쾌감을 표했다. 특히 ‘MZ세대들의 사랑법’이라는 프로그램 홍보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댓글이 많았다. ”왜 자꾸 하지도 않는 유행에 MZ세대 가져다가 붙이는 거냐?“ ”진짜 아무 데나 MZ 붙이지 좀 마. 문란한 애들이나 저러고 살겠지“ 등 프로그램 취지에 반대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잠만 자는 사이'에서 MZ들의 연애 방식을 보여주겠다며 홍보하는 장면이다. 출처: 잠만 자는 사이(웨이브) 예고
‘자보고 만남 추구’가 MZ세대의 연애 방법이라는 예고편에 MZ세대들은 정작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석모(24)씨는 ”내 주변에는 ‘자만추’(자보고 만남 추구의 준말)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일반화를 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모(24)씨 역시 ”요즘 뭐만 하면 MZ세대라고 하는데 실제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서 ”나를 포함한 지인들은 모두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를 알아가는 편“이라고 전했다.
▲'잠만 자는 사이' 측은 MZ들의 연애 방식이 ‘자보고 만남 추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 잠만 자는 사이(웨이브) 예고
지난 2018년 화제가 됐던 ‘하트시그널2(채널A)’부터 최근 방영 중인 ‘환승연애2(티빙)’까지 각종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에 따르면, ‘환승연애2(티빙)’는 최근 3주 연속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간 온라인 콘텐츠 반응 정도에서 가장 핫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 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황석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청년들을 n포 세대, 섹스리스 세대라고 하지 않냐”며 “만남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면서 이들에 차단돼 있는 욕구를 연애 프로그램이 자극하는 것”이라고 최근 연애 프로그램 흥행의 배경을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에 탑승한 제작사들은 연애 프로그램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문제는 우후죽순 만들어진 연애 프로그램 속에서 차별성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자극적인 포맷이 경쟁하듯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 한해 8월까지 쏟아진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개수만 총 25개다. 이 중‘에덴’(iHQ), ‘썸핑’(웨이브) 등은 ‘남녀 혼숙’ 및 ‘과한 노출과 스킨십’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특히 ‘에덴’은 1화부터 출연진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만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 남녀가 체인이 묶인 채 함께 생활해야 하는 ‘체인 리액션(쿠팡 플레이)’도 등장했다. 화장실을 갈 때조차 체인에 묶여 이성이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가야 하는 규칙에 시청자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분위기다. 계속된 논란에도 점점 더 자극적인 요소가 추가되는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화장실을 갈 때조차 체인으로 묶여 있어야 하는 규칙이다. 출처: 체인 리액션(쿠팡플레이)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수위 높은 프로그램들이 청소년들에게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대개 OTT를 통해 방영되는데, OTT는 텔레비전과 달리 ‘방송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유해 사이트나 불법 정보 유통 등에 대해서만 규제를 받다보니, 성적 언행, 욕설, 음주 등의 표현과 행위에 대해 별다른 제재없이 제작, 유포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4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에 따르면 1주일에 5일 이상 OTT를 이용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70%에 달한다. 쉽게 청소년들이 OTT를 접하는 환경인 만큼 세심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웨이브에서 방영 예정인 ‘잠만 자는 사이’ 예고편에서도 성적 언행, 욕설, 음주 등의 표현과 행위가 수차례 이어졌지만, 1~4회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결정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욕설, 비속어도 등장하나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며, 음주 요소도 전체 맥락상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며 ”전체적으로 주제, 대사, 약물 항목에 있어서 15세 이상의 사람이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수용 가능하므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결정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는 OTT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견을 수렴해 TV와 라디오 방송 등 기존 미디어와 OTT을 모두 포괄해 관리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제정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은 미디어 매체별로 방송법·IPTV법·전기통신사업법(OTT) 등 분산된 규제체계를 일원화해, OTT 관리감독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어 법 제정과 그 효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전민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