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와 공동체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사람이 생활하는 데 기본이 되는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의식주는 옷을 짓다. 밥을 짓다(농사를 짓다), 집을 짓다에서 보듯 서술어를 ‘짓다’로 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 할 의식주는 모두 ‘짓는’ 것이다. ‘짓다’는 말은 이렇게 재료를 들여 만들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글 짓다 노래 짓다(쓰거나 만들다), 미소 짓다 표정 짓다(나타내 보이다), 짝짓다(무리를 이루다), 이름 짓다(골라서 결정하다), 죄짓다(생겨나게 저지르다), 복 짓다(생겨나게 만들다) 등 다양한 의미망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짓다’는 말의 밑둥에 사람들이나 동물들 또는 문자 등의 재료들이 서로 이어져서 의존함(도움)을 보게 된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이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책에서 말한 ‘상호부조(서로 돕기)를 통한 진화’라 할 수 있다.
밥 짓는데 필요한 쌀을 생산하는 일을 농사짓는다고 한다. 농사짓는 일이 혼자서 가능한 일인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설파한 장일순 선생님은 나락 한 알이 나오려면 땅, 날씨, 하늘, 물의 상태, 돌봐주는 사람 등을 포함한 우주 일체가 보살펴야 한다고 했다. 곧 밥 짓는 일은 만물이 서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이어진 우주 일체의 ‘짓기’인 것이다.
옷을 지을 때도 자연에서 재료를 얻기까지 자연과 인간의 수많은 상호부조를 통해야 한다. 또 그 재료를 가지고 여러 도구와 사람의 정성과 수고가 합력 협력하여 옷을 짓게 된다.
또 집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늘과 땅의 기운과 방향 또 흙과 나무와 사람(목수와 거주자) 그리고 각종 도구 등 유형무형의 온갖 것들이 관계를 맺고 이어져서 집이라는 걸 짓게 된다.
결국 밥, 옷, 집을 짓는 것은 자연과 자연, 자연과 우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간에 상호관계를 맺고 이어지는 것 곧 하나로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인간 생활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어지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렵고 불가능하다. 농사도 공동체를 통해 짓고, 밥을 지어도 혼자 먹기보다는 함께 나누어 같이 먹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옷도 여럿이 어울려 옷감을 만들고, 완성품은 누군가 대상을 지정하여 ‘짓기’가 이루어진다. 집도 터 잡고 목재를 구하고 건축하고 마무리하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의 사물과 기술과 재능과 예술과 취향 그리고 개성과 사람과 자연이 공동체가 되어 어우러진 결과로 집짓기가 완성된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어떤가. ‘짓는’ 일에 사람과 자연이 그 중심에서 비껴나 있다. 상호부조가 작동하던 전통사회에서는 사람과 생명의 우주 질서가 엄연하였는데 지금은 기계가 중심에 있고 그 밑둥에 돈이 도사리고 있다.
농사짓기가 기계와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지 않고 가능한가. 그 기계와 노동자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돈이다. 이제는 밥 짓는 일도 밥솥(기계)이 하고 있다. 그것도 점점 가정에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식당에서 밥을 짓고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도 모두 밥솥이나 키오스크가 담당하고 있다. 그것도 돈으로 가능하다. 집 짓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땅을 파고 고르고 다지는 데서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기계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돈으로 간단히 짓는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짓기’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짓기’에 수반되는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우주와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어우러짐 즉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밥 짓기를 중심으로 한 밥상공동체가 사라지고, 옷을 지어 입는 가족공동체가 무너지고, 한 집과 마을에서 먹고 자고 입고 배우고 익히며 자라는 마을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고립 소외되며 다른 사람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농사짓는 일, 밥 짓는 일, 옷 짓는 일, 집 짓는 일을 권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공동체가 공중분해 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몇 가지 요리라도 배워야겠다. 직접 밥을 지어서 누군가를 대접하며 감사의 관계를 잇고 싶다. 옷 짓는 일의 순서나 과정을 전혀 모르지만 미싱 사용법을 배워야겠다. 직접 아내의 옷, 아들딸 손녀, 지인들의 옷을 만들어 선물하며 사랑의 관계를 잇고 싶다. 공들여 짓는 일을 통해 자연과 사람,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 밥상공동체 가족공동체 마을공동체를 위하여 상호부조를 통한 진화인 ‘짓기’에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