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를 기억하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르 14,9)
라자로의 여동생이었던 마리아는 복음서에 세 번 등장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의 모습이 항상 예수님의 발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타에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 10,39)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요한 11,32)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요한 12,3)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언니 마르타의 꾸중을 들으면서도 시간을 내었고,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는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주님의 마음을 흔들었고(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결국 라자로는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라자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자신의 시간과 눈물, 그리고 향유를 드렸습니다. 발 아래 있다는 것 그리고 발을 씻긴다는 것은 겸손과 순종 그리고 헌신을 상징합니다.
마리아의 모습은 주님께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지만 그래도 늘 무엇인가를 구하기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그래서 주님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 그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 아래로 내려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화학당의 창설자이자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대모(大母)였던 메리 스크랜톤, 그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마리아입니다. 그녀의 양육을 받고 한국 여성교육의 큰 기둥이 되었던 이경숙은 훗날 이런 증언을 남겼습니다.
“스크랜톤 노부인은 나를 반겨 맞으며 처음 보는 사람이로되 그 친절한 태도는 오랫동안 사귀어 아는 사이보다 더 대단하였다. 나는 그날 밤 노부인의 집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노부인은 여러 가지 음식을 풍성히 차려놓고 내게 많이 먹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친척들의 굶주림을 생각하니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 그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조반 후에 노부인은 나를 자기 수양딸로 삼고 새 옷을 많이 주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아래 있었던 마리아처럼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눈물 그리고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린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의 피로 우리의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걸레와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작가의 “십자가와 걸레”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진한 감동이밀려옵니다.
“임신 두달 째에 접어들어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지으면서 나는 걸레와 많이 친해졌다. 걸레는 자신의 몸으로 더럽고 먼지 낀 곳을 닦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만약에 이 세상에 걸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온통 오염 덩어리요 시궁창보다 더 더러워서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거리에 환경미화원이 없다면 거리는 오물투성이일 것이요, 집에서 걸레를 들고 청소하는 이가 없다면 집안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오염된 공기, 오염된 물을 정화해주는 자연이 없다면 사람은 한순간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이 이나마 살 만한 것은 이처럼 소리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몸으로 걸레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걸레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십자가였다. 십자가 역시 누군가가 짊어져야 십자가이지 짊어지지 않는 십자가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렇구나. 십자가야말로 이 세상의 걸레이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셨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추상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만 생각한다. 십자가는 문자 속에, 신학 속에, 교리 속에 있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있어 우리가 언제든지 손에 쥐고 닦아야 하는 걸레인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다 바쳐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신 십자가, 그것은 바로 오늘 내 손에 들려진 걸레이다.
걸레가 자기 몸을 희생하고 바치고 헌신하며 더러운 곳을 닦아내고 깨끗하게 아름답게 하는 것처럼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 또한 자기 희생, 자기 헌신, 자기 내어놓음, 자기 비움, 자기 나눔이 아닌가?”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르 14,9)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