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열무김치
이영옥
시어머니 떠나신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 열무김치의 맛이다. 여름만 되면 생각이 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가 찾는 맛의 열무김치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 맛이 그리워 올해도 이번만은 잘 담가봐야지 하면서 도전했지만 또 실패다. 이 정도 살림 경력이면 눈 감고도 해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 음식 솜씨는 남달랐다. 변변찮은 재료로도 순식간에 풍성한 식탁을 만들었다. 훌륭한 요리사는 재료를 탓하지 않는다더니 어머니가 그랬다. 나물을 무쳐도 맛이 있고 탕이나 국을 끓여도 깊은 맛이 났다. 그중에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은 열무김치였다. 비법이 궁금해서 어떻게 만들었나고 물을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시부적시부적했다’고 말씀하셨다. 커다란 김치통에 자박자박하게 담겨 있는 김치를 꺼내어 식탁에 놓으면 벌써 군침이 돌았다.
열무김치가 알맞게 익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어머니는 보시기에 김치를 고봉밥처럼 담았다. 구첩반상 부럽지 않은 일첩반상이었다. 큰 그릇에 밥을 적당히 덜고, 고봉으로 꺼내놓은 김치를 듬뿍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려 비비면 머슴밥처럼 많아 보여도 단숨에 먹게 되었다. 소식小食과는 거리가 멀다.
이때는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먹어도 탈이 난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비빔밥만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맨밥에 그냥 먹어도 시원하고 비빔국수로 먹을 때도 입안에서 씹히는 소리에 내가 즐거워 혼자 먹어도 외롭지 않았다.
추측해 보면, 어머니는 여린 열무를 살짝 절여서 부드럽게 한 다음 양념을 넣고 미리 끓여 놓은 김치국물을 붓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정도 숙성시키면 국물이 복숭아 빛처럼 불그스레하고 열무는 씹는 맛이 최고인 김치가 되었다. 시원한 김치국물에 국수라도 말아 먹을라치면 열무가 씹힐 때 ‘아삭아삭’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방금 전 식사를 했더라도 다시 젓갉을 들게 할 정도였다.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시동생도 어머니의 열무김치를 최고로 쳤다. 세월이 흐르니 가슴은 무뎌져 어머니 생각도 잘 나지 않는데 어쩌자고 열무김치만 남아서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우연히 내가 보게 된 날은 인천 앞바다의 섬을 돌며 김장 김치를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김치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최불암씨 어머니의 고향과 김치를 내놓았던 할머니는 고향이 같은 이북 사람이었다. 맛의 기억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머리 허연 남자도 울먹이게 만들 수 있는 것.
내게도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울먹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첫댓글 열무김치 담아 먹어야겠어요.
어쩌자고 잘 밤에 군침이 돕니다.
잘 읽었습니다. ^^
맛난 열무김치만 있으면 잘 밤에도 먹습니다.
배둘레햄이 늘어날지라도....
@이복희 ㅎㅎ 선생님
역류성 식도염이 걱정되어
저는 군침만 흘립니다. ^^
이영옥님의 그리운 열무김치 맛있게 감상했습니다.
앞으로 '옥꽃'이라 하고 싶은데 거부X 승인은 O를 남겨 주세요. ㅎㅎㅎ
준빠님, 옥꽃은 이 카페에 거의 안 들어옵니다.
제가 올렸을 뿐.
거부X 승인은 O
답은 할 수 없을테니 준빠님 원하시는대로.... ㅎㅎㅎ
읽기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열무김치를 먹으면서 글을 읽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