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下下)로 살기
나는 스스로 하하(下下)가 되기로 했다.
일터에서도 구성원들이 나를 일러 “하하쌤”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성을 모아 가꾸고 있는 인문학 모임의 이름도 <하하문화>라 이름하였다.
운영하고 있는 카페도 <하하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카페의 대문에 걸린 글을 옮겨본다.
“하하(下下)를 사모하는 사람들”
“이름하여 ‘하하(下下)’
낮아지고 낮아져서 경계를 허물고
힘든 일, 나누어 하며 ‘하하’
어려운 일, 함께 헤치며 ‘하하’
쉬운 일, 양보하며 ‘하하’
좋은 일, 같이 기뻐하며 ‘하하’
‘하하’ 웃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웃자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나는 하하(下下)로 사는 사람들이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하하’하고 웃는 세상을 꿈꾼다.
갓난 아이들의 천진난만 지고지순한 깔깔대는 웃음이 있는 세상 말이다.
요즘 세상은 상상(上上)을 지향한다. 높고 크고 많고 빠르고, 최고 최대 최다가 가치의 지향이고 목표다. 그러니 경쟁이 날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경쟁의 끝은 무엇이고 어디일까.
사람의 삶은 궁극적으로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사람으로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서로 높고 크고 많아지려고 치열하게 다투노라면 결국 다치고 죽고 소외와 배제, 폭력과 야만이 난무하는 불행에 이를 수밖에 없다.
노자도 물을 말하여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한 바 있다. 그 이유로 수선이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 즉 물은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말하자면 노자가 살던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낮은 곳을 싫어했던 모양이다. 이 말은 그때에도 높은 곳을 선망하며 추구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 대하여 자연물인 물은 온갖 이로움을 주면서도 잘났다고 뽐내거나 돋보이려고 다투지 않고 스스로 낮은 곳에 머물기를 서슴지 않으니 ‘가장 좋다’고 말한 것이리라. 가장 좋다는 말은 최상이라는 말이렷다.
가장 좋게 사는 방법은 온갖 이로움을 주어야 하고, 잘났다고 뽐내거나 다투지 않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낮은 곳에 머물기로 서슴지 않는 것이리라. 노자의 이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나이기에 내게 있어 가장 좋게 사는 방법은 하하(下下)로 살기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하하(下下)가 되기로 작정하게 된 것이다.
하하(下下)는 거저 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앞으로 몇 가지 힘써 정성을 모으고 공을 쌓아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
먼저 온갖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물질이건 정신이건 간에 또 크건 작건 간에, 사람이건 자연이건 간에 무언가 이로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도 부단히 해야 하고 심신을 수련하는 일도 꾸준히 해야 하리라. 나아가 물질을 관리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이로움은 물질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잘났다고 뽐내거나 다투지 않을 일이다. 사실 뽐내고 다투는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뽐낼 일이 별로 없는 것이 사람이다. 특히 나라는 사람은 겸손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진실로 뽐낼만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자의 타의로 자랑질하며 뽐낸 경우들이 적지 않다.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일 텐데 부끄럽고 미안하고 민망하다. 거기에 다투기까지 하는 일은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사이좋게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고 힘이 부칠 터인데 말이다. 남은 시간 동안엔 정말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데 힘 쓰고 공을 들일 일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낮은 곳에 머물기를 서슴지 않으리라. 보이는 곳, 들리는 곳에서도 이로운 일을 해야겠지만 안 보이는 곳, 안 들리는 곳에 스스로 나아가 머물며 동행하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나 나이 든 사람으로서 어둡고 그늘진 곳, 소외와 배제로 차별이 살아있는 곳에 스스로 나아가는데 애써 정성을 모아 가야겠다.
나머지 삶을 하하(下下)로 살기에 날마다 힘쓰고 노력하며 공을 들이는 일이 일상이 되도록 하는 일만이 내 인생을 가장 좋게 가꾸는 일임을 믿고 하하(下下)로 살기에 매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