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공동체성(共同體性)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바야흐로 법 만능 시대가 된 듯하다. 가정, 직장, 학교, 단체뿐만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까지 총망라하여 “법대로 하자”다. 상식과 인정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왔던 가정과 직장과 학교가 점점 조그마한 의견 차이나 갈등 상황에 처하면 고소, 고발을 통해 ‘법대로 하자’고 나선다.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 직장의 동료나 상하급자 간에, 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사제 간에 학부모와 교사 간에 기본 상식과 양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추세다.
도대체 법이란 게 뭔가. 법에 무지한 필자의 생각으로는 보편적 상식(常識)을 조문화한 것이 법 아니던가. 그리고 이 법을 바탕으로 하여 유지 존속하는 사회를 법치 사회라 하고 이는 현대사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 ‘법대로 하면 다 되는가? 특히 효율을 앞세워 경쟁을 부추기는 현대사회에서 법대로 하는 일은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공동체를 해체하고 붕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일쑤다. 왜냐하면 경쟁은 상대를 끝없이 분리하고 배제하여 추락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법이 보편적 상식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세상은 법이라는 형식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집에서 부모에게, 직장에서 상사에게 인사 안 했다고 법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학교나 단체에서 큰소리로 악을 썼다고 법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도 갖가지 사안들을 모두 법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법원에서 판사가 판결을 할 때에도 고려해 주는 정황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상식이나 예의, 양심 등이 그것이다. 법 만능의 세상이 되면 공동체의 저변을 이루는 법 이전의 상식이나 예의, 양심, 부끄러움 등이 설 자리를 잃는다.
얼마 전 “1948년 이전에는 한국 국민은 없고 일본 국민만 있었다“고 말한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우리 한민족공동체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이 말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 또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거나 회의를 진행할 때 욕설과 반말, 비아냥, 조롱의 말이 난무하여 도무지 예의와 염치가 없는 모습이다. 나아가 알만한 사람은 대부분 아는 사안에 대하여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모습은 도대체 양심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모름지기 공동체란 구성원들 간에 공통으로 감각하는 공동체성(共同體性)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성(共同體性)은 공동체의 운명이나 생활, 목적 따위를 같이하려고 하는 집단이 갖는 성질을 말한다. 그 성질이 바로 상식이요 양심이며 예의범절이나 부끄러움과 같은 윤리일 것이다.
몰상식이 상식 위에 군림하여 위세를 떨치고, 불량(不良)이 양심을 마음껏 조롱하며, 무례(無禮)가 예의의 뺨을 때리며, 몰염치(沒廉恥)의 뻔뻔함이 염치를 부끄럽게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두고 바닷물이나 생선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마치 일본의 입장을 홍보하듯 수족관의 물을 마시고 생선회를 먹어 보이는 모습, 여러 나라에서 여러 차례의 원전 사고를 통해 그 위험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면서도 수명이 다한 원전의 가동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일 등 국가적 단위에서부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이 사이렌을 켜고 현장 출동하는 소방차, 구급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소방서는 혐오시설’이라며 민원을 넣는다거나 아파트 단지에 택배기사의 출입을 금지하는 주민들의 행태, 또 아파트 경비원들을 함부로 대해 자살에 이르게 하는 행패, 이웃간의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 쓰레기 불법 투기 등 지역 단위나 개인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널려 있다.
어차피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밖에 없기에 공동체성(共同體性)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공동체의 건강성과 유지의 지속성은 공동체성(共同體性)의 발현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성(共同體性)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책무감을 가지고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가진 지식과 돈으로 누군가에게 군림하고 누군가를 억압하며 배제하거나 소외시킨다면 그것이 횡포요 폭력이 되어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그런 자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 배우고 가진 값을 해야 한다. 그것은 누가 봐도 공정하고 공평이 상식적이요 양심적이며 예의범절이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그래야 같이 살 수 있다.
지금 가정, 직장, 학교나 단체 그리고 사회가 이 정도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의 공동체성(共同體性)을 지켜가려는 눈물겨운 노력 때문일 것이다.
(광주매일신문 202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