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인 인연(因緣)의 그 소중함
- 배청련화의 ‘건봉사(乾鳳寺) 송덕비’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본지 편집고문)
1. 만해의 시사적 배경과 통시적 고찰
모름지기 오랜 날 평자 그 나름으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일관되게 “우리의 소중한 삶에 있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운명적임”을 역설하면서 불교의 「同種善根說」에서 최대의 인연이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임을 역설해 왔다. 그 같은 맥락에서 80을 바라보는 황혼의 시간대에서 잠시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면 「선문학 권두칼럼」주제인 「필연적인 인연(因緣)의 그 소중함 - 배청련화의 ‘건봉사(乾鳳寺) 송덕비’」이 결코 우연일 수 없다.
그렇다. 심장이 뜨거운 청소년 시절 민족의 시인이며 선사(禪師)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시집『님의 沈默』(회동서관, 1926)에 심취하여 만상의 근본양상이 존재와 부재의 역설적 상호작용으로 결부된 현상임을 수긍한 끝에, 비록 석사학위 논문이지만, 최초의 수행연구에 해당하는『「님의 沈默」에 표현된 萬海의 詩世界』(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1973)과 역시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인『超虛 金東鳴의 詩文學硏究』(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1985)도 결코 별개일 수 없다.
각론하고 만해의 ‘만남과 인연’을 노래한 시편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나만 애태운다 원망치 말고/애처롭기까지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인연설 2)”에서 확증되듯 모든 대상의 심리적 현상은 유무의 변증법에 연계되고 있다.
그렇다. 파스칼이 “진정한 도덕가는 도덕을 싫어한다.”라는 가르침과도 무관치 아니하지만, 만해는 역사와 사회발전을 위해 행동하는 수행자로서 역경 속에서도 현실에 충실하였음도 그렇거니와 자못 진일보하여 종교적 깊이와 투쟁적 용기를 응집시켰음은 다시금 유념할 바다. 까닭에「선문학 권두칼럼」의 모두(冒頭)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정황이라면 독실한 불자(佛者)로서 필명이 배청련화(裵靑蓮花)인 배선희 시인은 여행가로서 지구촌을 넘나들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파워블로거다. 근간 방문자 1,800만을 돌파한 바쁜 일상에서도 필자와 문학을 통해 만남이 잇닿은「인생 12진법」의 정다운 스님 소개로 지난 2016년 2월에 월간『모던포엠』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동시대의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편 등단 3개월 만에 중량감이 실린 시집『페이지의 시 여행』(세상만사, 2016)을 묶어냈다. 필자와는 추천 당시 심사위원과 시집 평설을 집필한 연유로 인간관계가 10년 남짓 맞물려 사제 간의 인연으로 이어짐은 못내 소중할 따름이다.
2. 필연적 인연과 감동의 느낌표(!)
그간에 평자가 줄곧 역설하였듯이 필립 라아킨(Philip Arthur Larkin)이 “시란 맑은 정신의 문제,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는 시론과 전통적 질료를 보편적 정서와 소우주의 표징으로 접합시켜 중량감을 안겨줄 생명적이고도 담백한 시격(詩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거부감 없이 수긍해야 한다. 까닭에 앞서 평자가 그 자신의 시집 평설에서 지적한「체험의 내면성과 바람꽃의 교감(交感)-배선희 시인의 시의 길 찾기와 정신풍경」도 그렇지만 죽음과 삶의 엄숙한 교차이며 순환과 재생의 과정임을 상징하는 빛남과 눈부심의 징표인 꽃(花)은 생명현상에 기인한 일련의 사유를 함축적으로 발화시킨 코아(core, 岩芯)이다.
그렇다. 진정한 내면의식의 성숙을 위하여 뷔퐁(L'aiguille de Buffon)이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고 지적했듯이 최소한 시 쓰기에 열중한 ‘길 위의 여행자 배선희 시인’은 명실공히 검증된 ‘대한민국 파워블로거 1호이며「페이지 세상만사」의 당사자로「나라사랑 국민운동본부」의 홍보대사이며, 존재감을 지닌 국제포교사다. 비록 고향인 경북 청송의 벽촌(僻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 자신이 오빠로부터 선물 받은 지구본(地球本)이 신기하게도 동기부여가 되어 지구촌 2백여 곳의 경이로운 여행길에서 정신풍경에 담아 놓은 따뜻한 서정시의 이미지로 형사(形似) 시킨 뒤에, 그 자신이 자연 친화적인 관계성의 회복을 위한 엄숙한 생명 경외의 일체감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현재도 그 자신이 중국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것을 잊지 않고 「페이지의 전국일주 14주년」을 기념하여 이처럼 ‘문화유산, 먹을거리, 또 체험 거리’를 몸소 찾아 여행길에 올라 일상적 개아(個我)의 서정성을 자극하고 있음은 지극히 이채롭다 못해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다.
모처럼 필자가 본고(本稿)에서 그 나름의 의중을 지니고 서술하는「필연적 인연과 감동의 느낌표(!)」는 물론이고 가까운 시일에 건립될 <천년의 건봉사는 달빛에 아득하고 - 망실토지 환수의 ‘배청련화(裵靑蓮花)’*> 공덕비의 축시에 있어 한때나마 이 사찰의 주지를 역임한 만해(萬海)의「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에 의하면 520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我倒)에 의해「원각사(圓覺寺)」가 창건되고, 그 후 신라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사찰을 중수하면서 서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 하여「서봉사(西鳳寺)」로 일컬었다. 또 1358년 무학대사(無學大師, 法名은 自超)의 스승인 나옹화상(懶翁和尙)이 다시 사찰을 중수한 뒤에 지금의「건봉사(乾鳳寺)」로 확정되었다.
새삼 논고 서술의 진정성은 일제강점기의 불교 31 본산으로서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냉천리)에 소재한 고성 건봉사(高城乾鳳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휴전선 이남의 최북단 사찰이다. 특히 건봉사는 한국전쟁(The Korea War) 당시 완전히 전소된 뒤 폐사지로 남아 있었으나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기념물 제51호 '고성건봉사지(高城乾鳳寺址)'로 지정되었고, 1994년 전소된 가람의 일부를 복원하면서 사찰은 원형대로 복구되었다. 또 한편 지난 2023년 2월 28일 '고성건봉사지(高城乾鳳寺址)'로 그 명칭이 확정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에 폐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징적 구조물인 불이문은,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건봉사에 현존하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인 건봉사 불이문(乾鳳寺 不二門)은 1920년에 세웠다. 여기서 불이문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형태인 팔작지붕을 얹었다. 각각 기둥에 금강전 문양을 새겨 놓았고 앞면 처마 밑에 걸린 '불이문(不二門)' 현판의 휘호는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의 필체다. 이 같은 역사적 현상에서 정부도, 거대한 종단도 포기한 막중한 일을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 이루어낸 그 지대한 공덕을 필자의 축시로나마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천년의 건봉사는 달빛에 아득하고
- 망실토지 환수의 ‘배청련화(裵靑蓮花)’*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허리 휘감은 물안개
아흐, 만상은 한 폭(幅)의 무채색 수묵화다.
백두대간 뻗어내린 산자락 그 천년의 고찰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하여 염불 만일회를 개최하고
7년 전쟁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 도량,
일제강점기 봉명학교가 건립된 선교 양종의 본산’
역사자료 찾기 디딤돌 마련하여 환수경비 쏟아붓고
놀라워라. 우주의 신비함에 깊이 잠긴 대가람은
저토록 적조(寂照)한 월광에 꿈인 듯 처연하다.
사법계와 잇닿은 자비의 불화 피워낸 삶의 교시에
촉촉이 비에 젖어 선명하게 빛나는 연초록 산하
청송(靑松)의 산자락에 탯줄 묻었으나 허명 멀리하고
지구촌 넘나드는 ‘길 위의 시인’으로 <세조실록>과
만해(萬海)의 <건봉사 본말사지기>를 펼쳐 들고
그렇게 목숨 걸다 끝내 망실한 7백만 평 찾아내어
건봉사 복원의 불사(佛事) 위해 심혈 쏟은 보살,
고독한 번뇌 끝의 만덕을 쌓은 화엄(華嚴)이다.
지난 1997년 ‘농업회사 법인 봉명합명회사’ 대표직에 올라
통분 삼키고 힘겹게 토지환수작업 주도하며
‘평상심이 불도임’을 체득한 법열은 비장하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극명한 정중동의 전율로
종단의 도움 일절 경계한 배청련화의 송덕비!,
깊은 밤의 몽환처럼 존재의 꽃 또 피워놓고
삼라만상의 묘법과 법문 기호화한 깨달음(覺)
8백 년 그 목어(木魚)의 음조에 풀꽃 선잠을 깨다.
* 페이지 배선희 시인
위에 인용한 시편에 대하여 이 시대의 충직한 독자로서 ‘청람영재학교 에세이스트이며 언어논술 스타 강사인 청람(晴嵐) 김왕식『신문예』회원의 감상 평설「건봉사 송덕비를 쓰다-엄창섭 교수와 배선희 시인」의 그 일부를 옮겨보기로 한다.
위에 인용한 시는 배선희 시인의 금강산 건봉사 토지 환수작업과 그의 무조건적인 기부행위를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는 배선희 시인이 건봉사의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투자한 노력과 헌신을 서정적으로 읊어내고 있다. 특히 배선희 시인의 환수 노력은 건봉사가 오랜 시간 동안 겪는 명암을 조명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현대에 되살리려는 시도로 해명된다.
또 한편 이 시는 고찰(古刹)의 정취를 수묵화로 비유하며 고요하고 차분한 이미지로 독자의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같은 수사는 동양적 미학과 깊은 선(禪)의 정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시인의 품은 역사적 소임과 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표출한 일례다. 아울러 이 시는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더 큰 통합과 자유를 모색하는데 시적 영감과 교훈을 제공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와 그 당위성을 지닌다.
3. 한 시대의 진정한 수행자, 빛나는 이름
무엇보다 시 의미의 차별성과 수용성 과정에 관한 기술에 있어 오늘의 현대시를 이끈 한 시대의 진정한 대변인 T. S. 엘리엇이 그의 시편인 <The Hollow men>에서 ‘우리는 텅 빈 사람, 우리는 가득한 사람’이라는 역설로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듯, 만해는 공간이면서도 텅 빈 공간이 아닌 님의 실체를 찾아서 견고한 고독 앞에서 고뇌하였다. 이것은 강렬한 신앙에 의한 종교적으로 무아의 경지까지 승화시킨 애국심의 발로이다. 그처럼 그의 <옥중투쟁 3대 원칙>이나 심야에 분향묵좌(焚香黙坐)하며 불전(佛殿)에서 “나는 약소국에 태어난 한 박복 중생입니다. 이 철천지한을 참을 수 없으니, 이 민족에게 서광이 돌아오게 하소서.”라는 절박한 기원에 비장감이 묻어있다.
특히 최초의 국내 여행 시인으로서 그 차별성을 갖춰 이채롭게 간행한 시집『페이지의 시여행』은 '페이지의 세상만사, 체험 여행'이라는 그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혔듯 ‘여행이라는 어휘 앞에서도 첫 입맞춤처럼 가슴 설렘 뒤의 낯선 환경·풍물을 다양한 소재로 삼아 불안·초조·두려움’을 말끔 씻겨내고 있다. 차제에 유장(悠長)하고 막힘없이 써 내려간 예감이 빛나는 공감의 시학과 정신적 피폐함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성찰케 하는 역동성은 새삼 놀랍다. 그처럼 즉물적 현상의 심부를 해체를 시키는 도식으로 동일한 시간대의 우리에게 ‘들어냄보다 감춤’의 담론으로 사라지는 대상의 생명감을 거듭 입증하기에, 생명의 엄숙성이 수용된 따뜻한 감성의 시적 행보(行步)는 정체성을 지닌 독자적인 시의 지평을 새삼 열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1967년 파고다 공원에 세워진 <龍雲堂 大禪師碑>의 비문에 “한국 말년에 산중 불교를 도시로 끌어내어 대중화하고 아울러 쇠진하는 국운을 만회하여 민주사회를 실현하려던 지도자”로 각인되었듯 만해는 수난의 역사 앞에 비분강개하면서도 조국광복을 예감하며 자존감을 지켜낸 민족의 정신적 스승이다. 비록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으로 조국의 불확실한 시간대에 대응할지라도 상실한 자아를 되찾아 따뜻한 감성과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까닭에 슈바이처가 ‘현대인의 병리성을 비자립성, 무사상성임.’을 언급하였듯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현대인의 비극은 진정한 자아와 삶의 좌표, 그리고 열정의 상실감이다. 모쪼록 사상과 삶의 행적은 끊임없이 검증할 일이기에 건강한 생명의식을 지닌 배선희 시인의 인간적 위대성은 철학과 사상, 그리고 민족애의 계승에 맞물려 그 존재감은 더없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