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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성 발달
에릭슨의 심리사회성 발달이론은 인간의 행동에 기초하였으며 인간관, 자아, 성격 형성, 개인적 요소에서 프로이트와 다른 주장을 펼쳤다.
프로이트(S. Freud 1856-1939)는 정신분석학이라는 조직적인 성격이론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생물학적 기제와 본능적인 충동을 기초로 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이 가정하고 있는 점은 우리들의 정신세계가 의식과 무의식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특히 무의식의 본질과 기능에 관심을 두었다. 그 당시에는 마땅히 프로이트의 정신발달이론을 반박할 후기 이론이 등장하지 않은 가운데 이 이론이 곧 정의가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1900년대 중반부터 프로이트의 이론을 부정하고 재해석하는 이론들이 등장하게 된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이 대표적인데, 그는 인간이 무의식 속에 의존하며 5세까지 성격이 발달 되는 것(프로이트의 주장)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일생동안 계속하여 변화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에릭슨은 1902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났을 때 그의 가정은 한부모 가족이었다. 그의 부모는 에릭슨이 태어나기도 전, 이혼한 상태였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던 남자와 재혼을 하며 에릭슨을 키웠다. 당시에는 독일 나치가 유대인에 대한 반인권적인 정책으로 유대인의 가족이라는 무시와 핍박을 당했고,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청소년기에 알게 되면서 에릭슨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에릭슨은 뛰어난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던 중 우연히 만난 여인이 학문에 입문하게 도와주어 그가 심리사회학자가 될 수 있었는데,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다름 아닌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1895~1982)였다.
<심리사회성 성격발달 8단계>
에릭슨은 각 단계별로 위기를 긍적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한 쌍을 이루는데,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발달 되어야 하지만 부정적 측면 역시 전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심리사회적 위기를 극복하면 그 결과 각 단계마다 자아의 특질 즉, 기본적인 강점을 얻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했을 경우, 병리적인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1단계(0세부터 1세): 신뢰감과 불신감(Basic Trust vs. Basic Mistrust)
기본신뢰는 아이와 양육자 간의 초기경험에서 시작된다. 정서적으로 따뜻한 엄마가 일관되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양질의 양육을 제공할 때, 아이는 엄마를 신뢰하게 된다. 이렇게 기본신뢰를 갖게 된 아이는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져도 불안해하거나 화내지 않으며, 긍정적인 태도와 자기확신을 갖는다.
▶심리상담
아이가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엄마인 저에게서 도통 떨어지려 하질 않네요.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나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고 싶습니다.
▶ 응답
이 시기는 에릭슨의 발달단계 제1단계에 해당하는데요. 아기가 세상을 향한 신뢰의 싹을 틔우는 시기로, 아이의 기본적인 신뢰 발달은 엄마와의 초기경험에서 출발합니다. 부모가 양육과정에서 친밀한 태도로 일관된 양육을 제공해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을 때 아이는 자신과 주변환경에 대해 신뢰감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아이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희망적인 태도, 자기확신 등을 발전시키게 되죠. 반면 기본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불신감이 생기며, 일단 형성된 불신감은 평생 남아 이후의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는 매우 여리고 무력해서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기에, 부모와 분리될 때 불안을 느끼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2) 이 나타나는 게 정상입니다. 커가면서 아이는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좌절, 즉 잠시 부모와 떨어져 있더라도 곧 부모가 다시 나타나 자신을 위로하고 돌봐주는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부모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고, 차츰 두려워하지 않고 부모와의 분리를 견딜 수 있게 되면서 결국 분리불안을 극복하게 됩니다.
이 단계의 심리발달에서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애착(Attachment) 개념입니다. 애착이론은 1960년대에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J. 볼비(J. Bowlby)에 의해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발달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습니다. 애착은 한 사람이 누군가와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는 것인데, 아기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엄마나 다른 양육자에게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최초의 시작이 됩니다. 아이는 엄마를 안전기지(Secure Base)로 삼아 험한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미소를 짓고 안기며 매달리는 등 애착행동을 해서 엄마가 떠나지 않고 자신을 돌보게 만들죠. 엄마는 아이의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채서 반응하는데, 이런 민감성(Sensitivity)이 애착의 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앞 사례의 아기 역시 엄마가 민감하게 아이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충족시켜주어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고 나면,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자연스레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에게서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애착 형성에 큰 문제가 생기죠. 예를 들어, 엄마가 사고로 죽고 대신 돌봐줄 사람도 없어 아이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으면, 아이의 애착 형성에 위기가 옵니다. 일단 형성된 애착 형태는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기까지 친구, 연인, 배우자, 자녀 등 소중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 2단계(2세부터 3세): 자율성, 회의감, 수치심(Autonomy vs. Shame and Doubt)
자율성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성취감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통제가 적당할 때, 아이는 자신감과 자가통제능력을 발전시켜 자율성을 획득하는데, 부모가 자율적으로 행동하려는 아이를 지나치게 혼내거나 과잉통제하게 되면, 아이는 수치심과 자기의심에 빠지게 된다.
▶ 심리상담
두 돌인 아이가 요즘 들어 무조건 싫다며 떼쓰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엄격하게 키우셔서 저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항상 아이에게 좋은 엄마로서 좋은 말만 하고 싶지만, 아이가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하니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를 어느 수준까지 야단쳐도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 응답
이 무렵 아이들은 괄약근 및 근육 조절이 가능해지는 등 신체가 발달하며, 대소변 가리기 같은 발달과제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기 시작하지만, 엄마는 어른의 관점에서 아직은 미숙해 보이는 아이를 통제하려고 들죠. 아이가 자기통제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성공경험이 쌓여가면 자율성을 얻게 되는 반면 스스로의 통제가 실패하거나 지나치게 어른들의 간섭을 받게 되면 자율성을 얻지 못하고, 수치심과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이 단계를 항문기(Anal Stage)라 명명했는데요. 배설의 쾌감이 리비도의 만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하면서 이런 욕구가 충족되거나 좌절될 수 있는데, 이 단계에서 좌절이 고착되면 여러 성격적ㆍ심리적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완고하고 강박적인 성격입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아이의 욕구와 발달 정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엄마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양육에 임해야 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제한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해야 합니다. 아이를 혼내는 것은 아이에게 화내고 면박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안전한 울타리를 설정해주는 행위여야 합니다.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문제행동을 줄여나가기 위한 해결 중심적인 반응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 3단계(4세부터 5세): 주도성과 죄책감(Initiative vs. Guilt)
운동기능과 지적기능이 발전하면서 아이에게 신체적인 자유가 주어지고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면 주도성을 갖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부적절감을 느끼게 된다면 자기주도적인 활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 심리상담
5살 아들이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놀면 꼭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가 자기주장만 하고 양보를 하지 않으니 노는 건지 싸우는 건지 구분이 안 가네요. 차라리 혼자 놀게 하는 게 나을까요?
▶ 응답
유치원에 다닐 무렵의 아이들은 참 자신만만해서 의욕적이고 경쟁적입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려 들고, 자기 생각이 언제나 옳고 제일 좋다고 주장하죠. 이는 아직 어리다 보니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미숙하고, 지나친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 자기주장만 한다면 싸움이 벌어지고, 이기는 아이가 있으면 지는 아이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시기에 건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상황을 주도해서 성공경험을 쌓은 아이들은 주도성을 갖게 됩니다. 반면 자기주장을 할 기회가 없었거나, 시도는 했으나 좌절을 겪고 부적절감을 느낀 아이는 위축되고,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5살 아들이 또래들과 싸우는 것은 한 과정입니다. 아이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주장을 펴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또래들과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매번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상황을 주도해본 아이는 주도성을 얻게 되고 이후 성장과정에서도 이런 주도성을 잘 활용합니다. 그러니 싸운다고 혼자 놀게 한다면, 아이는 주도성을 얻을 기회가 없겠죠. 마치 물을 빼버린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될 것입니다. 아이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방법을 터득하게 될 테니, 부모는 안전한 한계를 설정하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앞 사례의 아이는 이 연령대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의사소통의 한계로 인해 또래 간에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고 적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 4단계(6세부터 11세): 근면성과 열등감(Industry vs. Inferiority)
이 시기의 아이들은 체계적인 학습과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맡겨진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근면성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을 습득하는 데 실패하거나 과잉보호를 받거나 혹은 또래집단에서 적절한 지위를 얻지 못했을 때, 아이는 부적절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 심리상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같은 문장을 3번씩 써오는 숙제를 받아왔는데, 왜 이런 무의미한 일을 반복해야 하느냐며 불평합니다. 사실 모든 어른들도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은데, 뭐라 답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그 시절에 배웠던 것이 뭘까요?
▶ 응답
학령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때로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에 매료되어 두 눈이 동그래지는 배움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요즘은 선행교육이 보편화되어 학교에서 새로운 내용을 배우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손가락이 아프도록 연필을 잡고서 이미 알고 있는 글자들을 써야 하고, 구구단을 달달 외워서 빠른 시간 내에 정확히 계산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합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지루한 과제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실력이 느는 것을 확인합니다. 리코더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나 줄넘기의 각종 기술들에 도전해 하나씩 마스터해나가는 아이들을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도 어려워하고, 줄에 걸리지 않고 줄넘기를 10번 이상 하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기량이 느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며 성취감을 느낍니다. 상대적으로 중간에 포기한 아이들은 열등감에 빠질 수밖에 없죠.
에릭슨의 발달이론에서 6~11세 사이의 아동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근면성을 얻을 것이냐, 열등감에 빠질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유능감과 자신감을 얻게 되는데, 이를 통해 근면성을 획득한 사람은 성인이 된 후 직장이나 가정에서 힘든 과제를 맡게 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니까 되더라’라는 성취의 경험을 맛본 사람들이니 맷집 센 싸움꾼처럼 근성 있게 달려들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그 시절에 배웠던 것은 구구단이나 줄넘기만이 아닌 근면이라는 덕목인 겁니다. 따라서 같은 문장 3번 쓰기 과제를 해야 하는 딸에게는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너는 쓰기만 배우고 있는 게 아니란다. 세상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야.”
◎ 5단계(12세에서 18세): 자아 정체감과 정체감 혼미(Identity vs.Role Diffusion)
자아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애쓰는 시기로, 건강한 정체성은 선행된 단계들을 거치며 쌓아온 성공경험에 기초해 만들어진다. 후기 청소년기에는 파벌을 만들고 정체성의 위기가 오기도 하는데, 이런 위기는 대부분 정상적인 현상이다.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했을 때 정체성 혼란과 역할 혼동이 나타나며, 가출, 범죄, 정신과 질환 등이나 성정체성 및 성적 역할의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 심리상담
고2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반항적이고 주변 어른들에게 도전적입니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과격하게 주장하고요. 일면 옳은 말을 하기는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 걱정입니다. 게다가 정작 본인의 생활태도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 응답
이 시기는 왕성한 신체발달과 2차 성징 및 심리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청소년기로, 중고생과 대학 초년생 시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시기에 겪은 갑작스러운 신체변화와 정서변화로 인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는 갑자기 키가 자라고 덩치가 커지는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성호르몬의 분비와 성기능의 발달이 이루어지며 생리와 몽정이 시작됩니다.
에릭슨은 이 시기를 자아정체성을 이루거나 혹은 이에 실패하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급격하게 신체가 변화하고, 성적 욕구가 증가하고, 이에 비례해 초자아의 역할 또한 커지는데요. 이 가운데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고 현재의 자신과 비교해 미래의 모습을 예상하며 자신의 일관된 자아정체성을 찾는 것,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자신의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해 하나의 자아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또한 강력한 또래압력을 극복하고 독특한 자기 자신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 시기에 적절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실패한 경우에는 자아정체성에 타격을 입고, 정체성 혼동의 상태를 보이게 됩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자아에만 치우치고 긍정적인 측면의 자아를 무시하면, 과도하게 부정적인 자아상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자아정체성을 만들지 못하면, 주변사람들의 기대나 상황에 맞는 모습만을 보이려고 노력할 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례의 남학생은 자아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타락한 기성세대에 비해 자신은 순수한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세상이 흘러갈 것처럼 여기는 지나친 자기중심성을 보이고 있죠. 이런 긍정적인 이상 추구의 모습과 실제 나태한 생활태도 등 부정적인 모습이 아직 통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학생이 앞으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조화로운 통합을 이룬다면 건강한 자아정체성 획득에 성공하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얻거나 일관되지 못한 정체성의 혼란만 가중될 것입니다.
◎ 6단계(성인 초기): 친밀감과 고립감(Intimacy vs. isolation)
일과 사랑이 주요과제가 되는 단계이다. 친밀감은 타인의 한계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희생과 타협을 통해 지속적이고 견고한 관계를 유지할 때 만들어진다. 이와 달리 연인이나 친구 등 의미 있는 대상과 함께하지 못할 때, 사람은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고립감에 빠진다.
▶ 심리상담
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입니다.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성화시지만, 저는 사실 혼자 사는 생활이 정말 편해요. 이성을 사귀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고, 상대에게 헌신하고 양보하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곤 합니다. 그러다 최근 동기들 대부분이 결혼하면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을 정말 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 응답
이 시기는 학창시절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때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는데, 그 깊이와 폭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릅니다. 이렇게 엮인 사람들과의 관계는 본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나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에릭슨은 이 시기의 과업으로 친밀감 형성을 꼽았습니다. 연인이나 친구나 배우자와 깊이 있는 관계를 맺으며 자기충만감과 유대감을 형성해야 하고, 여기에 실패하면 고립감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친밀감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양보하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얻어집니다.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상대가 먼저 다가와 저절로 교감을 느끼고 매일 관계가 깊어지는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동일한 환경에서 비슷한 공부를 하고 서로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순수하게 동류의식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어른들이 학창시절 친구들에게서 끈끈한 우정을 떠올리는 것이죠. 하지만 일단 성인이 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등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두 성인이 만났을 때 잘 맞거나 맞지 않는 다양한 관계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해도, 시간이 지나면 충돌과 갈등이 생기고, 관계를 끝낼 것이냐 노력해서 유지할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나와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진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자기만 희생한다면, 그 또한 건강한 관계가 아니며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본인을 이해하고 배려해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타협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이 다 귀찮고 자신의 에너지를 타인과의 관계에 쏟는 것이 아까워 반복해서 관계를 끝내버리는 사람은 결국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는 외롭고 고립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 7단계(성인 중기): 생산성과 침체성(Generativity vs. Stagnation)
생산성이란 단순히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후세를 이끌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다음 세대를 돕는 데 관심이 없는 어른은 자신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만 집착하는데, 그런 관계에서는 진정한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고 자기염려의 껍질에 갇혀 고립되고 침체감을 느끼게 된다.
▶ 심리상담
어느덧 40살이 넘었는데 직장도 변변치 못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결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나름대로 애쓰며 살아온 것 같지만, 되돌아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친구들 보기도 민망해 모임에도 잘 안 나갑니다. 명절에 친척들에게 ‘무슨 일 하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라는 질문 듣는 게 제일 고역입니다.
▶ 응답
20~30대는 일과 사랑에 있어 친밀감을 형성해 스스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시기입니다. 이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결실을 보고, 앞으로 살아갈 능력을 갖추기 위해 직업적인 능력을 쌓아 동료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단계죠. 이 단계를 성공적으로 잘 완수한 사람은 40살 정도가 되었을 때 다음 두 가지 면에 있어 명확한 방향성을 갖습니다. 하나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나가려는 것,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활동과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정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에릭슨은 40~65세까지의 시기를 생산성의 시기라고 규정했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업에서나 가장 활동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갑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시기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계속해서 보살펴주며,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생산적인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점차 더 숙달되어가고 경험도 쌓여 창조성이 최대치에 이르죠. 승진하고, 수입이 늘어나며, 자신이 만들어낸 노동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이를 통해 자존감이 향상되고, 목표했던 삶의 이상이 점차 현실화 되어 갑니다. 비단 직업뿐만 아니라 그 밖의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생산성은 극대화됩니다. 직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교류하고, 자녀의 친구 부모와도 친해집니다. 함께 취미를 공유하는 그룹들도 생겨나고, 종교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의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이 시기는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내고 꾸준히 생산해내는 활동들이 가장 왕성한 때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삶이 정체되고 맙니다. 우선 집안이 화목하지 않고 자녀의 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식이 생기지 않으면, 고민이 됩니다.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부모들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면, 삶이 고달파집니다. 자식뿐만 아니라 배우자나 시가, 처가와 갈등이 생겨나도 삶이 정체됩니다.
이런저런 고민들로 인해 삶이 활기를 잃고, 목표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죠. 직장생활에 있어서도 생산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때 진급하지 못하면, 사업이 안정되지 않으면, 계획대로 수익이 나지 않으면, 경제적 생산활동은 정체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인 활동도 고립되기 쉽습니다. 이루어놓은 게 없다는 자괴감, 자기 처지에 대한 모멸감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게 되죠. 나가는 곳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딱히 뭔가 하는 것도 없지요. 그저 삶이 공허해지고 주변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히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 생산성과 정체성의 갈림길에 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향한 작은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삶이 침체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따라잡아야겠다고 생각된다면, 문제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성을 이루지 못해 정체된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생산성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전 단계에 이루었어야 할 ‘친밀감’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집에서만 머물지 말고, 일단은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야 하죠. 옛 친구의 안부를 묻고, 함께 만나서 어울려 놀아야 합니다. 재미가 느껴져 자꾸 만나다 보면,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고 여러 가지 듣는 얘기들이 생깁니다. 그 가운데 흥미가 생기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해결방법이 떠오를 겁니다.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생산적인 활동이 생겨나는 것이죠.
또한 친밀감은 나를 고립되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겨나 우정이라는 관계를 생산해내는 겁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좋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삶은 더없이 생산적이 됩니다. 또한 누군가와 관계가 만들어지면 사람은 자연스레 상대의 눈에 비칠 자기 모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다시 추스르게 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또 만들어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생산성의 첫걸음은 바로 친밀감인 것입니다.
또 규칙적인 운동도 좋습니다. 살을 빼거나 근육이 붙는 게 뿌듯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는 취미를 갖는 것 또한 추천합니다. 수제가구 만들기, 뜨개질, 십자수 등 어떤 취미도 괜찮습니다. 머리를 부드럽게 만들려면, 공부도 필요합니다. 중년쯤 되면 세상에 대한 시야가 어느 정도 열리기 때문에, 이때 읽는 책은 젊은 시절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줍니다. 고전도 좋고, 다소 어려운 책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독서를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테니까요.
이런 생산적 활동을 할 때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비관적인 전망과 패배적인 생각입니다. 누구를 만날까 하다가도 딱히 만날 만한 사람이 없다며 미리 포기해버리기 일쑤죠. 친구들은 직장 다니느라 바쁠 거라고, 결혼해서 아이 돌보느라 시간이 없을 거라고,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운동이나 취미를 시작해볼까 하다가도, 나이 탓인지 잘 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열심히 노력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며 TV나 스포츠에 빠져버리고요. 종교나 봉사활동을 권유받아도,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며 사양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들이 정체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특히 중년이 지나면, 곧 노년이 찾아와 삶을 정리해야 합니다. 되든 안 되든 뭐라도 해본 인생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머문 인생보다 훨씬 낫습니다.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나날에서 벗어나, 뭔가 새롭고 흥미로운 활동을 해야 할 때입니다.
◎ 8단계(노년기): 자아통합과 절망감(Integrity vs. Despair)
통합이란 자신의 삶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중요했던 사람들을 꼭 필요한 존재로 여기게 될 때 느끼는 만족감을 특징으로 한다. 통합성을 획득한 사람은 인생의 순환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죽음이 임박한 것을 참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 통합 시도가 실패하면, 희망을 잃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 심리상담
나이 먹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쉽게 피곤해지고, 여기저기 아프고, 문득 거울을 마주하면 거울 속 내 모습이 보기 흉하게 느껴집니다. 누구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이루어놓은 것도 없는 것 같아 과거의 삶이 후회스럽기도 하고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 소식을 듣게 되면서 삶이 헛된 것 같고, 죽음이 이제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부쩍 두렵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잘 받아들이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 응답
노년기의 통합과정은 이전 단계까지 건강하게 발전해온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청년기에 건강한 자아정체성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주변사람들과 깊이 있는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고, 생산적인 삶을 이뤄내기도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노년기에도 이룬 것이 없다는 허망함을 느낄 뿐, 통합을 이루지 못합니다.
앞 사례의 주인공은 노년기의 갈등상황에 놓여 있는데요. 노년기는 수십 년간 애쓰며 이뤄온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기이므로 자신이 이룬 긍정적인 성취들을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가정을 지키며 자식을 낳았고,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 주변에서 인정받았고, 책임 있게 가사를 돌보아왔습니다. 결코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아온 것이죠. 특히 아등바등 자식을 키워 사회에 내보낸 세월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우리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먼 옛날부터 다음 세대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맺는 글
이상과 같이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심리사회발달이론을 통해 인간이 8단계의 발달과정을 거치며, 각 단계마다 발달과업을 수행하면서 성숙하고 성장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Freud)가 정신분석을 통해 주로 영유아기의 욕구 충족과 특정 단계에서의 고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 원초아의 역할, 발달에 미치는 부모의 영향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에릭슨은 영유아기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발달과 성숙을 이루어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발달과정에서 원초아보다는 자아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부모의 역할보다는 한 개인을 둘러싼 심리사회적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설사 영유아기나 아동기에 외상적 경험이 있거나 부모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후 발달과정에서 좋은 선생님이나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회복되고 성장하며 성숙을 이루어갈 수 있다. 에릭슨의 이런 관점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다.
1950년, 에릭슨이 발표한 ‘아동기와 사회’라는 책은 그의 나이 50이 넘어서 책으로 출판되었고 대학학위조차 없었지만,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프로이드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새로운 이론을 전개한 에릭슨은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하버드 대학에서 ‘인생주기(life cycle)’를 가르치다가 은퇴하였고 1994년 5월,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2023.11.1.)
* 위 글은 여러 자료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였음
첫댓글 에릭슨의 심리사회성 발달은 교사,학부모가 반드시 이해하고 숙지해야 할 이론. 현대의 외상 ,불신 등 각종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좋은 친구, 교사, 사회적 관계로 치유되고 성숙된다는 위로와 희망, 마음을 크게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