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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닭갈비도 음식이냐?
강원도에 오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강원도 음식에도 익숙하게 되었다.
강원도는 산지가 많아 교통이 불편하고 당연히 타지방과의 교류가 드문데다 기후가 난폭(바람, 비, 눈, 추위)하고 토지가 척박하여 주로 구황(救荒), 즉 입에 풀칠이나 하고 간신히 허기나 면하여 연명하는 그런 음식이 위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양념 조차 귀하여 쓰고 짠 그런 음식 밖에 없어서 경상도와 함께 음식 맛이 최악인 곳으로 손꼽힌다.
20여년 전 삼척 하장에 산돼지를 잡으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어느 시골집을 찾아가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좀 나이든 아낙은 부엌에서 한참을 뚝딱거리다가 만두 한 사발과 누렇게 묵은 밥 한 사발 그리고 간장 한 종지 뿐인 그런 상을 차려왔다.
만두를 보니 정성이 엄청 든 것이었으나, 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만두 속에 든 것은 갓-강원도 갓은 여수 돌산 갓과는 달리 크기가 아주 작고 요즘은 김장철에 배추 김치와 함께 섞어서 김장을 담그는데 이용한다- 그 갓을 소금물에 절여 놓았다가 먹을 때 물에 빨아 행궈서 그것을 꼭 짜서 다져넣은 것인데 (이를 강원도 삼척 갓김치한다.), 여기에는 마늘이며 고춧가루 혹은 젓갈류 같은 것은 아에 없어서 그맛이 맹탕이고 쓰기만 할 뿐이었다. 화전민들이 주로 먹던 반찬이었다. 그래도 그맛이 그리워 년전에 하장쪽 사람에서 그 김치를 물으니 젊은이는 기억하는 이가 없고 나이든 사람들은 그래도 그 맛을 잊지 않고 막국수를 말거나 할 때 즐긴다 하였다.
강릉 사람들은 대관령이란 장벽에 막혀 오랜 세월 동안 외부와의 교류가 드물었던 터라, 그 먹는 음식이 유별나다.
이를테면 참기름은 아예 먹지를 아니하고 들기름을 즐기며, 참두릅 보다는 개두릅(엄나무순), 참미역 보다는 구멍이 숭숭 뚫린 쇠미역, 밀가루 국수 보다는 막국수를 훨씬더 즐긴다는 식이다. 맑은 칼국수 보다는 장(醬)을 풀어서 끓인 장칼국수를 더 좋아한다. 이는 타 지방에는 거의 없는 음식이다.
그러나 음지가 양지가 되고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그런 세상이 올 줄이야!
이렇게 맛없고 끈기 없고 터벅하고 씁쓰레 하기만 했던 강원도 음식이, 이제는 국민 과영양시대, 비만 고혈압 당뇨, 즉 대사증후군 질환이 감기 보다 더 흔한 세상이 되어 저지방 저 열량의 그런 음식이 더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 이런 음식들을 중심으로 강원도 먹거리를 덭어본다.
*올창묵
봄날은 가고 하지(夏至)를 중심으로 낮은 길기만 했다.
이제는 겨울 감자도 떨어지고 햇감자는 멀었다. 그 즈음 수염이 갓 올라온 강냉이가 익으려면 아직은 멀었지만 그게 다 여물도록 기다리기엔 허기가 너무 심했다.
이렇게 덜 여문 풋강냉이를 맷돌에 갈고 그것을 궁멍이 숭숭 뚫린 바가지를 통과시키고 그 바가지를 통과한 것을 물이 설설 끓는 솥에 떨어뜨려 익히는데, 그 반죽들이 서로 달라붙지 못하게 솥물을 저어주면 떨어진 반죽은 앞이 굵고 뒤가 날씬한 올챙이처럼 되어 솥 안을 헤엄쳐 다닌다.
이걸 건져서 찬물에 행구고 애호박으로 고명을 하고 양념장을 넣어 먹는다. 이것은 생긴 모습 때문에 올창묵이라 부르는데, 별 맛은 없고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그나마 요즘 강냉이는 찰강냉이라 다행이다.
정선 지방에 남아 있는 음식이다.
* 콧등치기 국수
역시 정선 지방의 음식으로, 매밀 반죽으로 국수를 만드는데, 찰기가 없는 매밀의 특성상 면발이 굵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굵은 면발 국수에 양념장을 넣어서 먹는데, 면을 쪽 당기다 보면 그 면발이 콧등을 친다하여 그렇게 이름지어 졌다.
면이 다소 찰지도록 힘을 많이 들여서 여러번 치데서 반죽을 해야 맛이있다. 일반적으로 감자를 썰어 넣고 함께 끓인다.
*막국수
논 농사가 발달되지 못한 강원도 고랭지에서 화전을 일구어 심을 수 있는 것은 강냉이와 감자, 조, 수수가 전부였다. 그나마 땅이 그런대로 쓸 만한 곳에서 그런 재배가 가능했다. 올해처럼 봄 가뭄이 심해서 파종 시기를 놓치게 되면 대파(代播)할 수 있는 유일한 작물이 매밀이었다.
티벳 지방과 중국 윈난성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매밀은 그 고향과 젤로 많이 닮은 강원도가 재배 적지였다.
물론 평안도 지방은 말할 나위없는 매밀의 적지이기에 냉면이 발달하였다.
또 그것이 여뀌 같은 야생종과 흡사하여 거름이 필요하지아니하고 병충해가 없고 생육 기간이 짧아서 여러모로 강원도 지방에 어울리는 작물이었다.
비탈이 많은 강원도 밭에서 강냉이 밭, 매밀 밭을 매다보면 아낙의 한 발은 위에 있고 다른 한 발은 아래에 있기 마련, 그러기에 강원도 아낙의 거시기는 짝이 져서 삐뚜러져있다하여 ‘강원도 여자는 비탈**’라 놀린다.
오랜 매밀 재배로 자연스럽게 매밀로 만든 여러 음식, 매밀 전병, 매밀 부꾸미, 매밀 국수, 매밀묵, 매밀 만두등 여러 가지 음식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 으뜸이 매밀 막국수다.
지금은 막국수로 거부(巨富)가 된 사람도 많지만, 애초에는 그 역시 허기를 달래기 위한 배 채우는 음식에 불과하였다.
반죽 조차 잘 되지 않는 매밀을 여러 번 치대어서 뭉친 것을 ‘분틀’이라는 나무로 된 틀에 넣고 막대기를 걸어서 장정이 매달려 국수 가닥을 뽑아서 그것이 바로 물이 끓는 솥으로 들어가게 하고, 면이 익으면 바로 찬물에 헹구어 내어 먹는 국수다. 동치미에 말아 먹는게 원칙이나, 지금은 여러 가지 육수가 발달하여 있다.
막국수를 먹을 때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깻가루나 김 가루를 넣어주는 곳이나 가위를 대령하는 곳에는 가지말라는 것이다. 위에서 내가 지적했다시피 강원도에서는 참깨 농사를 짓지 않아서 깻가루가 없으며, 김도 서, 남해안 산물이니 강원도 산골에 무슨 김가루가 있었겠나? 이는 못생긴 딸래미 성형시키거나 많은 혼수를 장만해서 억지로 보내는 격이니, 육수나 면에 자신이 없는 집에서 이런 짓을 한다.
그리고 매밀은 본시 끈기가 없는 음식인데, 가위를 내오는 것은 스스로 밀가루나 다른 전분을 많이 넣었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면으로는 매밀면을 씹었을 때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강릉의 예향 막국수, 주문진의 동해 막국수, 양양의 실로암 막국수, 고성의 백촌 막국수를 추천하는데, 그 중의 으뜸은
실로암과 백촌이다. 설명은 생략한다.
*닭갈비
위에서 열거한대로 강원도 음식은 대부분 구황 음식이다.
감자 음식이 빠졌는데, 독특한 감자 음식으로는 강릉의 옹심이가 있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생긴 감자 전분과 간감자를 함께 수재비처럼 뭉쳐서 끓이고 여기에 칼국수를 약간 넣어 함께 끓인 것으로, 맛이 구수하고 옹심이가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은 음식이다. 강릉 곳곳에서 많이 즐기나, 타 지방에서는 없다.
구황 음식이 아니면서 강원도에서 유명한 음식이 닭갈비다. 닭갈비는 강원도의 특성상 접경지역이 많아서 군 부대에 닭을 납품하고 남는 날개, 다리, 내장등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가공이 시작된 음식임직 한데, 지금은 닭의 전 부위를 다 쓴다.
닭을 여러 부위로 갈라서 익혀 먹는 것은 동일하나, 닭갈비는 크게 태백식과 춘천식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는 태백식 닭갈비 (갈비는 아니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르자)를 더 좋아한다.
태백식은 국물이 있는게 특징이니, 전골 냄비에 닭고기를 넣고 육수를 붓고 갖은 양념과 감자, 채소를 넣어 끓여 먹으니, 닭고기가 연하고 익힌 감자며 채소에 양념이 배어서 맛이 있다.
춘천식은 불판에 양념한 닭고기를 익혀서 먹는 방식이다.
집집마다 양념이 다르다고는 하나, 나는 그 특성을 알기가 어렵다. 다만 불판의 두께와 화력의 강약이 맛을 좌우할 뿐이다.
가을 동화와 겨울 연가로 유명해진 춘천 남이섬에 가본 적이 있는가?
작년에 남이섬에 갔다가 비만 쫄딱 맞았는데, 더욱 화가 난 것은 점심 때가 되어 식당을 찾는데 열의 아홉 집은 닭갈비집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닭갈비 못 먹어서 죽은 귀신만 사나 싶었지만 나도 인테리어가 그럴듯한 집을 찾아들어갔다. 역시 실망이었다. 더구나 닭이 냉장닭이다!
당연히 푸석거리고 맛이 없다. 과도한 숙성 때문일 것이다.
내 입맛은 가히 귀신이 형님이라할 경지이다.
생닭, 우리 닭을 쓰지 않는 그런 닭갈비로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의 입맛만 버리고, 우리 음식에 먹칠이나 하는 그런 음식은 진정한 강원도의 맛이 아니다!
춘천 닭갈비로 축제도 한다고?
니들이나 먹어라!
乙未 小滿節 前 三日 豊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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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았! 다시 찾았군요~^^
근데 제가 댓글 단것은 없어졌어요.
푸르늑대님 본인께서 삭제하셨다가 제가 다시 전화드려서 올려 놓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저는 강원도 음식을 좋아합니다. 감자옹심이, 메밀국수, 강냉디 등...메밀국수를 먹기 위해 일부러 광화문까지 갔다가 오기도 합니다. 옥수수는 주문을 해먹기도 하구요. 얼마 전, 저도 친구를 만나 강남에서 유명한 춘천 닭갈비를 먹기로 하고 먹었는데 무척 실망을 하고 나왔습니다. 예전에 먹던 맛이 아니었어요. 찝찝하니 영 개운치 않았어요....저는 푸른늑대님의 글을 읽노라면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스케치가 되어 잔잔한 행복함으로 접하게 됩니다. 걸림이 없고, 가식도 없고. 닭갈비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더 맛있는 닭갈비를 만들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