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은...
그 시대가 그랬는지 무척이나 추워 모든 개천과 한강, 서울의 모든 물들이 얼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아이스링크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유명한 개그맨 누구누구들이 불법으로 점거해서 서울의 큰 개천들... 지금은 아스팔트로 덮였거나, 복개되거나, 혹은 사라진 그곳에서 정말로 많은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즐겼습니다.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나의 스케이트는 우리 삼촌이 돌로 날을 갈아줘서 그걸로 벽돌도 깰 수 있고, 심지어 얼음이 파여나가 자기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깊은 골이 생겨 다른 아이들의 스케이트는 그 골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고.
동네에는 저같은 7, 8세 아이들이 20명 이상이 모여 서로 스케이트 장에 갑니다.
동네 개천이지만 깊고 넓어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이용하던 그곳에 끼리끼리 돈 500원을 가져갑니다. 개중에 돈이 많은 아이들은 1,000원을 들고와 입장료 500원에 200원으로 삼양컵라면을 사먹기도 합니다.
자, 이제 개천 앞에 다다릅니다.
개천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천막으로 '유명 코메디안 XXX와 함께 즐거운 스케이트'라는 정말로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서커스가 유행했던 당시에나 볼 수 있던 정말 광목천으로 된 커다란, 정말로 거대하기까지한 천막이 쳐져있습니다. 그 안에는 스케이트 대여소와 칼갈이 아저씨, 라면과 우동, 오뎅, 떡볶이를 파는 아줌마, 그리고 100여명이 들어갈 정도의 큰 식당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머니 가장 안쪽에 두손으로 꼭 건지고 있던 500원으로 입장과 동시에 스케이트를 빌립니다.
당시 저는 개인 스케이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슨 저의 스케이트는 칼날을 가는 아저씨에게 가야만 했습니다. 칼날 가는 비용 300원이면 그 한철은 스케이트를 무진장 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의류쇼핑상가가 즐비한 동대문엔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파는 가게들로 분주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스케이트를 꺼내놓고 여자용인 피겨스케이팅과 남성용인 스피드 스케이팅을 가판대에 가득 쌓아놓고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스케이트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그 시절 스케이트는 정말 국민 스포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붐이었습니다.
여튼, 입장을 한 뒤 우리는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서 날렵하고 멋지게 턴을 도는 형님과 누님들의 뒤를 졸졸 따라서 아기오리의 걸음마처럼 같이 원을 그리며 하루 종일 탔습니다.
지금처럼 안전에 대한 염려가 없던 시절이라, 밤까지도 원의 행렬은 계속됩니다.
개천을 둘러싼 갈대밭에선 스케이트장에 입장을 못하는 동네 아이들이 쥐불놀이를 합니다.
유명 코메디언은 그 쥐불을 얻어서는 양팔로 돌리면서 행렬의 선두에서 원을 그리면서
자유롭고 신비롭게 무리를 이끕니다.
그렇게 겨울방학은 매일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봄이 다가오면서 개천을 꽁꽁 얼렸던 얼음이 녹습니다.
군데군데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서서히 늘어갑니다.
얼음이 얇아져 물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물을 피해 스케이트를 놀립니다.
모두가 선수들처럼 스케이트를 타며 점프와 방향전환이 자유롭습니다.
뒤로 타는 연습을 겨우내 한 우리들은 어느새 아예 스케이트 장의 원의 흐름을 뒤로 타기시작합니다.
가장 친한 충현이는 그러나 뒤로 돌다 노란색 나이론줄을 못보고 녹은 얼음 사이 깊은 물에 빠집니다.
허우적대다 얼음 밑으로 흘러내려갑니다.
중랑천으로 흘러가는 물길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어 한동안 우리들은 공범자들처럼 우울하고 끊임없는 충현이 엄마의 조사를 받으며 지냅니다.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쳐 스케이트장에 오던 충현이를 죽인건 그 엄마에 따르면 우리들이었습니다.
그 끊임없는 질책 속에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고 6학년이 되어갑니다.
개천들이 하나둘씩 아스팔트 도로로 변해가고, 우리는 롤러장으로 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즐겁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롤러장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동대문 롤러장 만이 유일하게 남고 롤러장 디제이 형님들의 푸념을 듣습니다.
"이제 떡볶이 집으로 자리를 옮겨야 겠지, 안그러면 굶어 죽겠다"
탈선의 온상이던 롤러장이 사라지고 청소년이 된 우리들은 당구를 치러 다닙니다.
그리고 어느새 나이를 먹어 술을 배우고, 담배를 피며 지금과 같은 세월에 남게 됩니다.
김연아가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공중 3회전반 턴을 해야 상을 탄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공중 4회전 턴과 동시에 '아래까기'(글쓴이 주석: 무릎을 굽히고 연속 턴, 공중 턴의 힘을 받아 무릎을 서서히 굽히면서 그 힘을 턴으로 옮김)로 얼마나 오래 도느냐가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기억 속에 그 수많은 무리들이 커다란 스케이트장에서 쥐불을 돌리며 회전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고지식한 고등학생이 된 저는 롯데월드 스케이트 장을 갑니다.
강남 아이들이 저마다 조심스레 스케이트를 탑니다.
저는 스케이트를 조심스레 쳐다봅니다. 몇몇 아픈 상흔들이 뇌리를 스치지만 뭔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하고 있는 힘껏 스케이트 줄을 당깁니다.
라운드에 서서 한쪽팔을 기도에 올리고 다른 팔은 수직으로 반대 방향으로 꺽습니다.
오른 발을 명치 오른쪽 한치 앞으로 뻗습니다.
왼발은 스케이트 날을 세워 얼음판에 내리꼽습니다.
준비... 땅!
아아... 수많은 장애물들로 인해 저의 기억속의 그 큰 회전도 하기 전에 어떤 여성에게 넘어져 땡값으로 50만원을 물어줘야 했습니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링크와 수많은 초보자들.
50도 이상 굽혀져야 돌 수 있는 양끝의 코너들의 주춤거리는 장애물들이 원망스럽고,
지금은 40대가 되어 있을 그 형님들의 유러한 뒤돌기와 공중 턴...
빠르지 못하면 가운데서 놀아야 했던 그 엄격하고 보이지 않던 룰...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체감하며
아쉽게 접어야 했던 스케이트....
84년의 기억으로 스케이트를 회상하는건 결국 어리섞음 다름 아니라는 자각으로
스러져가는 한 세대의 아픔을 받아들입니다.
추신...
만약 롤러장이 부활한다면, 그리고 그 새참컵면을 다시 먹을 수 있다면 5년은 젊게 살 수 있을거 같습니다.
카페 게시글
▦오블라디오블라다~
Re:오늘 아이스링크장에 다녀왔어요~ ^^
도그프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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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2
07.01.05 02:2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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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국제 롤러장을 갔었지...ㅋㅋㅋ 요즘도 그때의 음악을 가끔 들으면 왠지모를 뭔가가 솟구쳐 올라온다는...기비리비럽 ~~런던 나잇~~~ㅋㅋㅋ(시마모토)
런던보이즈 죽었다는 거 알고 있어? 교통사고로.. 장국영의 죽음과 함께 x 세대 청춘의 한 추억이 영원히 사라진 거지..
저도 타면서... 살짝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좀 더 많이 배워서 턴도 해보고 싶다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