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蛇頭)족 엄지 이야기
남자의 시선이 봉을 잡고 있던 내 왼손 엄지와 자신의 엄지를 오갔다. 난 반사적으로 봉에서 얼른 손을 떼고 주먹을 말아 쥐고 엄지를 밀어 넣었다. 곧바로 남자의 얼굴에는 뱀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 스쳤다. 낯선 이로부터 시선의 봉변을 당한 나 역시 불콰한 낯빛을 감출 수 없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움쩍달싹 못하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 있는 내내 숨이 막혔다. 출근길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땅꾼의 자루 같은 답답한 그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거장마다 고개를 밀고 들어 닥치는 인파에 뒤로 밀리다 못해 발마저 디딜 곳을 놓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 남자의 다리에 내 다리가 꼬였지만, 지하철의 속도에 따라 비스듬히 쏠리는 기울기에서 둘 다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이나 더 갔을까, 어느 순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치부를 알아버린 남자는 쓰러지기 직전의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내 손으로는 아무 것도 그러잡지 못해 갈데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챈 눈치였다. 혈관을 타고 찌르르 흐르는 수치심과 함께 창피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종각역, 마침내 비틀거리며 지하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원피스는 뱀 허물처럼 후줄근했다. 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떨리는 마음 탓일까? 손아귀에서 비누가 미끄러지며 세면대로 떨어졌다. 그걸 또 잡겠다며 왼손이 덥석 비누를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이번엔 내 시선이 엄지에 꽂혔다.
살모사의 머리가 이럴까? 뭉툭한 엄지는 볼썽사나웠다. 애먼 사람에게 희롱을 당하고서 삼각형의 대가리를 바짝 쳐든 독사가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 꼴이라니,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리 흉측하게 생겼으니 제 아비로부터도 멸시를 받는 거란 자괴감마저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뱀이 무서워 수풀이 우거진 곳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으려는 내게 아버지는 툭하면 외탁을 했다며 혀를 끌끌 찼다. 초등학생 때까지 나와 한 방을 쓰신 외할머니는 여러모로 손재주가 좋았지만, 양쪽 엄지가 짤막한 뱀 머리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 손톱을 잘라줄 때면, 너도 손재주가 좋을 거라며 애써 위로했지만, 난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거나 시장이나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들이 내민 뱀 머리 모양의 엄지를 훔쳐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에덴동산 시절,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도록 꼬드긴 이후 생겨난 기휘(忌諱)의 증표 같은 그것이 내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탄생은 축복이 아닌 저주처럼 느껴졌다. 나를 그렇게 낳아준 엄마가 미웠다. 특히 손톱을 잘라주려 할 때마다 심하게 몽니를 부렸다. 그럼 부아가 치밀어 오른 엄마도 내가 애기였을 때부터 유난스레 손가락을 많이 빨아서라며 변명을 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서로 다른 모양을 한 양손의 엄지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왼쪽 엄지만 빠는 버릇이 있던 유년기를 보낸 게 분명해 보였다.
짝짝이 엄지를 가진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눅눅한 집구석의 음지를 찾아 똬리를 틀고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출판사를 하던 외삼촌이 보내준 동화 전집 속에서 찾아낸 하인리히 호프만의 『더벅머리 아이』를 읽고 나니, 차라리 손을 빨았다며 재봉가위로 손가락을 잘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손가락이 길고 가는 여동생이 피아노를 배우고 남동생이 바이올린을 배울 때에도, 나는 나만의 굴속에서 잠을 잤다. 긴긴 잠을 자면서도 동화의 주인공들과는 꿈속에서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 친할머니 댁으로 나만 홀로 보내졌다. 할머니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늘 긴팔 옷차림이었는데, 열세 살이 되어서야 당신의 처녀 적에 뱀한테 물린 자국이 선명한 팔뚝을 보게 되었다. 마침 복날이라 닭백숙을 해주시겠다며 아궁이에 불을 붙일 때 사용할 짚가리를 가져 오라고 삼촌더러 시켰다. 삼촌을 뒤따라간 광 뒤편의 퇴비장에서 나는 그만 짚가리를 들추자마자 기다랗고 시커먼 것들이 서로 얽혀 스멀거리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그것들은 터주인인 구렁이와 그 새끼들이었다.
처음으로 뱀을 직접 본 그날 이후로 할머니 집에 있는 것조차 무서웠다. 터를 지켜주는 신이라며 겁에 질려 있는 나를 달랬지만, 서까래에도 매달려 있을 것만 같아 대낮에도 이를 덜덜 떨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 기다랗고 시커먼 구렁이를 꿈속에서 다시 만났다. 작대기로 감을 따고 있었는데, 나뭇가지에서 뚝 떨어진 구렁이가 내 왼팔을 감고 엄지를 물었다. 그러고는 쓰러진 나를 확인하고 담장을 넘어 집을 나갔다.
여동생이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구렁이를 쫓아내면 안 된다고 했던 금기를 꿈속에서 어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엔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갔는데, 대웅전 돌층계를 올라가려하는 내 등을 누군가 잡아끌었다. 스님이었다. 내 가랑이 밑으로 뱀이 지나가려는데, 넘어가면 안 된다고 충고하셨다. 할머니는 기도를 하고, 부모님은 양의한의를 따지지 않고 명의를 찾아다녔다. 머리칼이 다 빠진 여동생의 온몸은 텅텅 부어 있었다. 온갖 약과 치료에 시달리는 동안 해맑던 성격도 점점 어두워졌다. 애초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지만, 반드시 살려내고자 하는 모두의 의지에 기한을 넘겨 한 해 한 해 목숨을 연장해가고 있었다.‘차라리 내가 아팠더라면.....’나는 무시로 찾아오는 죄책감에 아버지의 미움도 달게 받았다.
골수이식수술의 방법이 있다고 했다. 공여자의 혈액에서 혈소판, 조혈모세포, 골수를 뽑아내기 전에 정밀한 혈액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표정 속에는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지레짐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가 해볼게요.” 나는 발끈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쏘아붙였다. “너랑 네 엄마는 O형이잖아.”그 즉시 돌아온 반응에 웃음이 났다. 아무리 당신의 발목을 잡은 결혼을 하게 된 것이 일찍 들어선 나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남도 아닌 딸의 혈액형도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당신의 삶이 비겁하다 못해 불쌍해 보였다.
정확하게 혈액성분이 일치했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피를 이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한 차례씩 일주일 간 배꼽 주변에다 주사를 놓았다. 등허리 뼈가 노글노글해지면서 열이 났다. 엄마는 혈액원심분리기에 연결된 내 왼쪽 팔을 연신 주물렀다. ‘고맙다’와 ‘미안하다’사이에서 엄마의 말은 갈팡질팡했지만, 나는 내 자신이 외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내 팔뚝에 굵은 주삿바늘을 찌른 의사는 푸른 혈관에서 이어지는 플라스틱 링거 줄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켰다. 반나절 이상 내 동맥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피가 정맥으로 되돌아오는 걸 지켜보면서, 뱀이 감겨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이면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뱀이라고 상상했다. 한쪽에는 나와 똑같은 뱀모양 엄지를 갖고 있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다른 쪽엔 뱀에 물린 상처를 팔뚝에 갖고 있는 친할머니의 얼굴이 달려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어느 쪽이든 뻣뻣해서 뒤로 젖혀지지 않는 것이 일찍 남편들을 잃고 신산한 삶은 살아온 두 할머니의 고집을 닮아 있었다.
남자의 시선이 내 엄지를 향한다. 핸드폰의 문자반을 누르고 있는 내 두 엄지가 서로 다르게 생긴 걸 눈치 챈 게 분명했다. 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짐짓 딴청이다. “뱀 대가리 같이 생겼지만, 사람 살리는 재주가 있어요.”잠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처음 보는 남자 앞에 두 엄지를 내밀었다. “그거 알아요? 뱀은 눈에서도 허물이 벗겨진답니다. 허물이 벗겨져야 몸도 성장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도 밝아지는 이치. 아시죠?”그러면서 남자도 탁자 위로 자신의 엄지를 올려 보였다. 짧고 굵은 삼각형 모양의 사두가 머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만날 확률이 몇이나 될까마는 나와 같은 변종 사두족이 내 눈 앞에서 멋쩍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