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7.8.30.목
달성하씨(達城夏氏)
시조 하흠(夏欽)은 중국 송나라 때 대도독(大都督)을 지냈다. 그가 고려 인종 때 귀화하여 달성에 정착한 것이 우리나라 하씨의 시작이다.
하흠의 아들 하용(夏溶)은 고려 때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달성으로 했다. 달성은 대구의 옛 지명이다.
하흠의 현손(손자의 손자) 하광신(夏光臣)은 고려 명종 때 이부시랑을 역임했다. 그는 효행이 뛰어나 정문이 세워졌다. 생전에 지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모친상을 당하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했다. 하광신의 동생 하우신(夏佑臣)은 부사를 역임하여 형제가 모두 가문을 중흥시켰다. 하혁하(夏赫河)는 대장군을 지냈다.
조선조에서는 인조 때 어모장군을 지낸 하임우와 경산포 만호인 하무가 뛰어났다. 하인경(夏仁敬)은 선조 때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판관 하운서(夏雲瑞)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하시우(夏時雨)는 부호군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정조 때의 학자 하시찬(夏試鑽)은 학행으로 유명하다. 조선 영조 26년(1750)에 대구시 수성구에서 태어난 그는 예학에 밝았다. 하시찬은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했으며, '열암집(悅庵集)'을 저술했다.
대구직할시 수성구 만촌동 188-1에는 하시찬 재실이 있다. 그의 제자들이 세운 이 재실은 달성하씨 독무재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대구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하시찬은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독무암루에서 살았다. 그의 명성이 높아 당시 이곳에는 제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달성하씨는 대구직할시 동구 수성동, 경북 달성, 경산 지방과 경남 밀양, 강원도 원주, 전북 순창, 장수 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2000년 현재 4,028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