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의 역사적 배경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시대에 수도 한양을 지키기던 산성으로, 신라 문무왕 때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의 남한산성이 된 것은 인조 2년 때 였다고 한다.
더불어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고 강화가 함락한 뒤 양식이 부족했던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그 뒤 계속해서 수리에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12월 28일(음력12월2일) 부터 1637년 2월24일(음력1월30일) 까지 조선과 청 제국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 제국의 숭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광해군을 내쫒고 인조를 왕으로 세운 서인들은 망해가는 명과 친하게 지내고 시롭게 일어나는 후금을 멀리했는데
이때 후금이 조선에 형제관계를 요구하며 침입, 하는 수 없이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게 된다.
이후 명나라를 무너뜨린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꿨고 이제 조선은 신하로 예를 갖추라고 요구했으나 조선은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해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청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침입했으며 이것이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이다.청나라 군대는 순식간에 한양의 근처까지 쳐들어 왔고 이에 놀란 인조와 신하들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47일간
대항하게 되었으나 결국 당해 낼 수 없게 되자 인조가 굴욕적 항복을 하게 된다.
병자호란 대패의 원인
임진왜란에서의 국력상실, 이괄의 난으로 인한 북방군의 감소, 오합지졸의 군사, 수성위주의 방어전술, 최고 지휘관의 무능
강화도 도하 실패, 남한산성 내부에 비축된 식량 부족, 청에 의한 강화도 함락, 구원군의 지속적인 패배로 인한 사기 저하로
항복하게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