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 춤추는 동래
피리소리가 흐르자, 양팔을 좌우로 펼치고 한 발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내 날렵한 버선코가 하늘을 향하자, 다른 발이 뒤꿈치가 들리며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하다. 펄럭이는 흰 소매는 날개 같고, 돌아설 듯 머뭇거리다 핑그르르 제자리를 도는 품새가 한 마리 새라도 된 듯하다. 과연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인가, 멋 좀 부릴 줄 아는 한량인가?
글쎄, 부잣집 종손으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기방출입이 잦았다고 했다. 아쉬울 게 없으니, 물 쓰듯 인심도 쓰고 다니셨다고 했다. 본마누라는 하동에 두고 진주, 순천, 부산에도 갈 곳을 만드셨으니, 인생 자체가 풍류였음은 세상물정 모르는 삼척동자도 짐작이 가능하리라. 그런 할아버지는 어느 날 맏손녀인 내가 외발로 서서 발레리나를 흉내 내자, 내 조막손을 붙잡고 온천장으로 데려가셨다. 내 나이 다섯 살 적의 일이니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널따란 다다미방으로 초대된 춤꾼 할아버지의 ‘외발서기사위’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똑바로 선 자세에서 오른발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양팔을 수직으로 어깨선까지 올리며 두 팔은 둥근 해라도 모시듯 쳐들었던 춤사위. 그리고는‘무릇 외발서기는 뒤로 다리를 쭉 찢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리 하나로도 꼿꼿하게 서 있는 학처럼 하는 거란다.’라던 할아버지의 한 마디 역시 여전히 내 귀가에 쟁쟁하다.
학, 두루미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겨울철이 되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는 철새다. 어느새 수 십 번의 겨울이 들고 나는 동안 본처와 후처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던 할아버지의 삶도 막을 내리고, 나 역시도 찬바람이 불면 야외온천탕이라도 찾아가 몸이라도 지지고 싶어지는 반백 살의 나이를 훌쩍 지나왔다. 특히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기어이 목욕 가방을 들고 나서게 된다.
스파윤슬길이란 이름이 낯설다. 인공 실개천을 따라 걷다 양말을 벗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 족욕탕에 발을 담가본다. 발끝부터 간질간질하면서 금세 나른해진다. 유난스레 습지가 많아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학이 무리지어 겨울을 났다는 이곳에서 온천수를 찾아낸 것도 다름 아닌 학이라는 전설이 떠올랐다. 학소대, 학암, 학란 마을 등등, 유난스레 ‘학’자가 들어 있는 지명이 많은 걸로 볼 때는 그럴싸하지만, 이는 발을 서늘하게 두는 걸 좋아하는 학의 성질과는 모순된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갓 쓴 선비들이 찾아들어와 푸른 청학이 되었다던 청학동에 얽힌 전설에 비하자면, 마냥 믿기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수면 안쪽과 바깥 온도 차이 때문에 눈앞이 뿌옇다.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그 모습에서 외발로 만년을 건너 온 내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열여덟 나이에 종손 며느리가 되었지만, 남편은 진정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모질게 마음먹고 어린 아들을 부산으로 유학까지 보냈지만, 울며 떠난 아들도 당신 품의 따뜻함을 잊고 더 먼 대처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이웃들이 남편 복도 자식 복도 지지리 없다며 수군거려도 당신은 촌구석을 떠날 수 없었다. 때가 되면 철없던 철새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박한 믿음 하나에 기대어 텅 빈 집을 지켜냈다.
할머니는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다리가 길었다. 얼굴까지 자그만하니 발레리나의 조건을 타고난 셈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이미 할아버지의 손에 끌려 동래온천장에서 학춤을 본 적 있던 나는 단정하고 꼿꼿한 당신의 자태가 마치 한 마리 학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편히 속내를 터놓고 어우렁더우렁 어울리는 성품이 아니셨기에, 손녀인 나조차도 어린마음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군무에는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백학 같다고나 할까, 고고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여러모로 수더분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자주 듣던 나는 그런 할머니를 닮고 싶다가도 지나치게 삼가고 꺼리는 신독(愼獨)의 모습에 질려, 몇 번이나 학을 뗀 적이 있었다. 그 중 낙상으로 다친 다리를 수술한 후, 관절을 움직여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간병인의 도움 따위는 받고 싶지 않다며 뻣뻣하게 펴고 지내시다 결국엔 뻗정다리가 되었을 때도 그랬다. 심지어 내 부축까지 마다하고, 혼자 힘으로 외발서기를 하려 애 쓰시는 모습에서는 평생 내외의 쏠림 없이 삶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버텨온 안간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설령 백학(白鶴)도 다리를 다치면 도움을 청하려고 우는 모습을 보일 텐데, 당신 홀로 깔끔하고 고고한 척하는 태도는 밉다 못해 차라리 안타까웠다.
때로는 독무로 때로는 쌍무가 되어도 좋은 것이, 심지어는 춤꾼과 구경꾼이 따로 없이 섞이어 어우러져도 무방한 것이 동래학춤이다.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 춤의 유래에 따르자면, 소리꾼의 구음에 맞춰 흰 도포의 소맷자락을 너풀거리며 마당으로 뛰어나온 건 여느 집 아낙도 춤판의 남사당패도 아닌 갓 쓴 선비였다고 하니 막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물며 그 선비가 선보인 일자사위니 돌림사위니, 옆걸음사위니 하는 춤사위는 어느 정도 규정되어 있으되 자유분방한 즉흥성까지 허용되었다고 하니 기실 우리네 삶을 닮은 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은 마을로 날아드는 학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 길고 긴 다리를 휘저으며 하강하는 모습을 흉내내보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족욕통 속에 담근 발을 휘저었다. 퉁퉁 분 발가락이 외씨보선처럼 하얗다. 어디선가 자진모리를 치면서 악사들이 등장할 것만 같다. 그러면 맨발로 일어나 나도 살짝 어깨를 들어 올리면서 리듬을 탈 것만 같다. 그래, 지금 내가 있는 이 스파윤슬길 어딘가에서 반 백 년 전에는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었다. 허름한 온청장에 딸린 낯선 다다미방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그곳이 어딜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봤다. 가족탕이 있던 온천장이라고만 기억날 뿐, 외관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찾는 건 금세 포기했다. 그날 춤꾼을 불러들여 맏손녀인 내게 제대로 된 동래학.춤을 보여주신 할아버지가 한량이면 어떻고 선비면 어떤가. 비록 당신께서는 동서남북으로 책임질 마누라와 식솔들을 만들어 놓고 철철이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녔어도 당신만의 행복한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셨는데......,
그래, 가끔은 나도 새처럼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면 오히려 한 발로 똑바로 서서 다른 쪽 다리를 접어 발끝이 사타구니에 닿게 한 뒤 깊은 호흡을 한다. 나무를 뜻하는‘브륵샤사나’라는 요가 동작이다. 그러면서 한쪽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된 만년의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외다리서기를 실패한 걸까? 어쩌면 할머니는 학처럼 사셨던 게 아니라 학을 기다리는 소나무처럼 사셨던 걸 아닐까?
생각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만 일어나야겠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백발노인도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저 만치 걸어가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기우뚱기우뚱 걸어가는 모양새가 뽀얀 물안개 속에서 쓸쓸하게 너울거린다. 하지만 그새 한쪽으로 살짝 기운 어깨선 밑으로 날개라도 돋아났는지, 어느 틈엔가 거리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벌써 길을 휘어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