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6일 (달날)
달날 아침 9시 30분.
주차장에 한 대의 차도 없다.
이런 적 처음이지 싶다.
운동장도 고요가 가득하다.
쵸코도, 꼬꼬댁들도, 심지어 꽥꽥이 거위마저
대문을 열고 차 머리를 들이미는 나에 대해
일말의 관심을 거둔 채 각자의 아침열기 중이다.
말씀과 밥의 집.
뒷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선다.
"똑똑! 제발 나 있을 땐 나오지 말아줘."
서생원님들께 드리는 나의 간곡한 기도.
(기도는 이뤄졌다!)
이번 주 천지인과 함께 하는 밥상.
오늘 메뉴는 들깨시래기국에 달걀토마토 볶음.
무청 시래기가 회랑에 좌우로 걸려있다.
누군가가 지난 겨울 갈무리 해 두었겠지.
근데 높게도 걸려있다. 우씨.
까치발 폴짝폴짝!!
머리에 마른 시래기 가루 잔뜩 덮어쓰고서야
겨우 원하는 양의 시래기 득템. ㅠㅠ
(누가 봤으면 또 시트콤 또 찍는다 했겠다)
오늘도 다진 마늘이 없다.
딱 오늘 국에 넣을 양만큼만 유리병 벽에 붙어(!)있다.
왜! 왜! 나 올 때만 마늘이 쇼트냐고....
안 다진 생마늘도 없단다.
들깨가루, 된장, 마늘, 고춧가루, 들기름 넣고
한 시간 이상 푹푹 삶은 시래기 조물조물.
(나중에 냉동실 열어보니 푸른솔이 작년에 삶아놓으신
배추 우거지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ㅠㅠ)
멸치다시 육수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OK.
오늘의 도움천사 바람빛 등장.
어젯밤에 보고 또 보니 반갑다.
이제 우리 둘 다 여유롭다.
달걀토마토 볶음 도전.
스컹크와 삼남매. 물빛이 정성껏 키우신 토마토를 아낌없이 주셨다.
달걀은 우선 우리집에 있는 열 여섯 알을 가져왔다.
모자란 건 우리 꼬꼬들한테 취할 요량이었으나
암탉이 알을 품고 노려보고 있어 결국 포기.
(결국 양이 모자랐다. ㅠㅠ)
원래는 달걀토마토'볶음'이었으나,
토마토에서 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걸 잡지 못 해
결국 정체불명의 '퓨레'로 급변침.
밥당번(어진. 찬. 금강. 은성. 다겸)들의 시식평.
"비쥬얼은 쫌 그런데 맛은 괜찮네요."
"철(Fe) 맛이 나요."
"양이 턱도 없어요!"
고심 끝에 떡국떡으로 양을 늘이자고 모의,
찬이가 가장 격하게 쌍수를 들어 환영.
정오가 되자 하나 둘 씩 들어온다.
왕산이 개구장이 얼굴로 들어 와 물으신다.
"오늘 메뉴 뭐예요?"
애들하고 질문이 똑같다.
점심 밥모심 끝나니 또 물으신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그렇지. 뭘 먹는지가 가장 중요할 때도 있지.
밥모심 시작 전,
다하지가 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주목을 요한다.
닭 주기로 약속했던 남은 밥을 며칠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도 치우지 않고 배식대에 올려놓았던 것.
아이들도 잘못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이면 치워져 있을까...
나온 김에 나도 조심스레 한소리.
사실 공양간에선 말없는 약속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날 음식은 그날 먹은 사람이 마무리 해 줬으면 한다.
"조금 남았는데 아까우니 냉장고에..."
"중등 애들 먹으라고 하지 뭐."
"오늘 저녁 모임 있으니 그 때...."
이렇게 남겨진 반찬들이 자칫하면 냉장고에서 썩어간다.
지금 작은 냉장고엔 먹다 남긴 김치들만 통이 네 개다.
누군가 술안주로 먹다 넣어 둔 말라비틀어진 상추에,
얼어서 먹지도 못하게 된 오이무침까지...
냉장고는 신이 아니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우선 음식하는 사람은 양을 잘 조절할 일이다.
오늘도 들깨시래기국도 많이 남았다.
주말에 남은 떡국, 미역국, 콩나물국까지...
(바람빛은 결국 점심 때 그 떡국을 드셨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새로 국 끓이지 말고
남은 국을 먹자보자하니 아이들도 순순히 동의한다.
그래서 멸치볶음만 해 주고 오려는데
옆에서 금강이가 "우리 엄마는 아몬드 넣어주는데.."
어진이도 맞장구. 결국 볶은땅콩도 추가해서 완성.
마무리 하고 나오는 길에 힘껏놀기 중인
심지호, 하지영, 오찬영, 김주원, 장서윤을 꼬득여
내일 반찬용 냉이를 캐게 했다. 좋댄다.
그런데 우리밭엔 냉이꽃이 너무 올라와
댕댕이네 밭까지 원정 (서윤인 기권).
"우리 중등 언니오빠들 반찬 할 냉이 캐러 왔어요~"
닭장 짓다 쉬고있던 한결파 뒤집어진다. 귀여워 귀여워!!
조막만한 손으로 냉이를 캐며
누가 나한테 고백했는데 찼다는 둥,
비밀인데 우리 엄마가 물빛한테 소문냈다는 둥...
아홉 살 소녀들의 꽤나 진지한 수다가 이어진다.
댕댕이가 내다 준 시원한 오미자차 마시고 마무리.
"우린 친구야! 건배~"
저녁 무렵 달나무 김계수 선생님 내외께서
달걀 60알을 우리집까지 전해주고 가셨다.
만 원밖에 안 받으신다.
두 분 다 감기몸살이 심하시다.
쾌차하시길.
오늘 일기 끝.
참! 내일은 무지개가 도움천사 예약 전화.
※ 댕댕이랑 얘기하여 마늘은 내가 추가 구입하기로.
※ 농사모임에서 마늘, 양파, 대파는 안 끊기게 농사 지어주시면...
※ 떡국떡이 아주 많이 남아 있음
첫댓글 대파는 봄에 심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