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각인된 엉겅퀴는 두려움이다. 어릴 적 약으로 쓰일 엉겅퀴 뿌리를 캐러 다니면서 날카로운 잎줄기 가시에 숱하게 찔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목장갑 하나 없던 시절 어린 아이의 손으로 파고드는 엉겅퀴 잎사귀 가시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런 엉겅퀴였지만 여름날 들녘에 피어나는 엉겅퀴 꽃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매력적인 자주색이었다. 장마가 갓 끝난 푸른 들녘엔 피는 꽃도 드물 터. 그 푸름 사이로 다른 풀들보다는 한 뼘 정도는 키가 큰 엉겅퀴 꽃이 주변 색과 대비되는 보랏빛 붉은 색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매혹적인 기억.
▲ 엉겅퀴
▲ 고려엉겅퀴(곤드레나물)
▲ 곤드레나물로 불리는 고려엉겅퀴 꽃.
그 기억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 내 살고 있는 동네의 가을 들녘. 보랏빛 엉겅퀴 꽃이 넓은 밭을 가득 메우고 있다. 취나물 밭으로 알고 있던 곳이다. 내가 아는 취나물, 아니 정확하게 섬쑥부쟁이 꽃은 하얀 색이다. 쑥부쟁이 꽃과 생김새는 흡사하지만 크기가 좀 작을 뿐인 하얀색 꽃. 그런데 보라색 꽃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자세히 들여다 보니 꽃 모양은 엉겅퀴와 비슷하지만 잎 모양이 다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엉겅퀴 꽃은 여름에 핀다. 일 년 중 가장 뜨거울 때 피어나는 꽃으로 알고 있는데 벼가 익어가는 누런 가을 들판에 피어나는 엉겅퀴 꽃은 어딘가 어색하다.
며칠 동안 의문을 품고 있다가 관련 자료를 찾으니 쉽게 의문이 풀렸다. 취나물을 재배하던 이 밭이 언제부터인가 곤드레나물을 재배하고 있었던 것. 곤드레나물의 정식 명칭은 고려엉겅퀴다. 표준식물목록에서 곤드레를 찾으면 나오지 않는다. 엄연히 곤드레나물이라고 불리고 있는 식물을 왜 고려엉겅퀴(아마도 한국 특산종 엉겅퀴라는 의미일 것이다)라 명명했을까? 곤드레가 터무니없는 지방 방언이 아니라 같은 초롱꽃목 국화과 식물인 민들레에서 알 수 있듯 곤들레에서 곤드레로 변화한 것이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추론하자면 식물은 대개 생식기관인 꽃으로 계통을 분류하니까 엉겅퀴와 꽃 모양이 비슷한데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걸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 이른 봄의 고려엉겅퀴(곤드레나물)
▲ 곤드레나물 재배 모습. 일 년에 일고여덟 번을 수확한다.
어쨌거나 정선곤드레라 불릴 정도로 정선을 비롯한 강원도 산간지역의 특산물로 취급받는 곤드레나물이 왜 남도 땅끝 바닷가 마을에서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이곳 들판은 하얀 꽃 일색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를 보라색 꽃들이 야금야금 파고들고 있다. 고려엉겅퀴나 섬쑥부쟁이나 지금이 한창 꽃이 피고 씨앗이 영글 때인데 대충 주변을 둘러 보니 이미 보라색이 하얀색을 압도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얼마 안 가 곤드레나물 천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웰빙 바람에 편승한 봄나물 대량 재배의 현장이다. 베고 나면 비료 주고 농약 치고 다시 베고 말리고... 일 년에 일고여덟 번을 수확한다. 이렇게 상품화된 곤드레나물은 전국의 마트에 진열되고 음식점으로 팔려나간다.
웰빙 먹거리의 현주소다.
첫댓글 감사이 잘 듣고 갑니다.엉겅킈 참 긔한 식물 이네여 감사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고려엉겅퀴였군요..
우리이름을 찾아주셔서감사합니다..
웰빙하는데 농약치고 거름듬뿍줘서 키운 나물이 웰빙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 년에 열 번 가까이 수확하는 웰빙먹거리(?)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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