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밥상
최봉숙
큰맘 먹고 계족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전엔 일주일에 한 번은 걷던 붉은 황톳길인데 펜데믹 사태 이후 멀어진 산이다.첫봄을 맞은 연둣빛 산은 진달래 산수유가 화사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간혹 보일 뿐 수런거림이 들리지 않는 산은 적막하고 고요했다.축제를 치르듯 북적대던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마스크를 쓰고 오르는 비탈길은 숨쉬기가 버거웠다.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해 산에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불편하다. 혼자 산길을 오르다 보니 산을 좋아하는 친구 J가 생각났다. 역병이 시작된 이후로는 카톡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다.
“목소리라도 한번 들으려고 했어. 설마 전화선을 타고 바이러스가 옮는 건 아니겠지?”
전화기 너머에서 J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밀린 수다를 풀어내다가 쉬이 만나자는 약속으로 전화를 끊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사태는 예상보다 많이 길어졌고 누구를 초대하기도 만나기도 조심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분주함을 핑계로 만남을 미루고 미뤄왔다.
“얘! 안 되겠다. 우리 이러다간 평생 못 만나겠다. 토요일에 무조건 시간 비우자.”
이렇게 의기투합하여 만나기로 한 어느 토요일 아침,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내가 쑥떡 해줄게. 요즘 흔한 게 봄나물이니 점심은 우리 집에서 간단하게 먹자.”
힘들지 않겠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전혀’라고 대답했다.
“하긴 먹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
내 말에 J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그럼,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가는 길에 시장에 들를 테니까.”
“아직도 나를 모르는 친구로구먼. 그런 건 절대 사절입니다. 정히 갖고 오고 싶으면 냉장고에 있는 거나 한두 개 꺼내와.”
정오에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냉장고에 있는 과일 두어가지를 봉지에 담았다. 마스크라는 필터를 장착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마스크를 쓴 친구가 거실로 나와 반갑게 맞았다.
“우리 이거 집 안에서도 써야 하나?”
“나는 괜찮은데 자기가 걱정돼서 그러지.”
J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 열나지 않아. 누구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제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스크를 벗었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식탁에는 봄 들판에서 캐온 갖가지 나물이 세팅되어 있었다. 간단히 먹자던 친구가 차린 밥상은 간소하지 않았다.
“당신은 거실에서 쉬고 있어.”
J의 말에 소파에 앉아 있자니 그녀가 밥상을 들고 나왔다.
“아니, 이게 뭐야? 설마 밥상을 따로 차린 거야? 밥을 따로 먹자고?”
“맞아. 밥은 따로 먹자고. 당신 우리 집에 왔다가 뭔 일 있으면 안 되니까.”
아무리 바이러스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J가 유별나다 싶었다.
“사실은 당신뿐이 아니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친구와 한 달 동안 함께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도 따로 밥상을 차려줬어. 우리 집에 있다가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사실 그 친구와 함께 산에도 가고 싶었는데 그녀가 주저하는 통에 나까지 집안에 갇혀 있었다니까. 내가 나가면 밖에서 세균을 묻혀올까 싶어서 말이지.”
친구의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마음은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했다.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그런저런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리안치된 죄인처럼 집안에서 자발적 은둔을 하고 있다. 시간이 남아돌자 우울감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마치 외딴 섬에 갇힌 것 같다. 각자의 섬에서 인터넷이라는 연결망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요즈음이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줌을 통하여 강의도 듣는다. 외출하느라 준비하는 시간은 벌었으나, 이왕이면 눈길을 마주 보며 공감하고 같은 식탁에 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배기가스, 오염된 물, 쓰레기. 함부로 뱉은 말까지. 견디다 못한 지구가 바이러스를 통해 자체정화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대가로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서조차 마스크라는 필터를 통해서 숨을 쉬는 희한한 세상이 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