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조영지는 25살 대학교
재학 중에 행정고시에 소년 급제
했다. 세종에서 농림축산식품부 5급
사무관으로 일하던 2023년.
스물 아홉 살의 봄, 기침이 심해 독감을 의심하고 병원에 갔다가
직장암 4기에 간, 폐, 뼈까지 전이
되었다는 있을 수 없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 큰 병원에 진찰받으러 가는
기차 안에서 영지가 담담하게 내가
말했다.
"엄마 저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어요. 저 열심히 살았고, 잘 살았
고, 사랑받고 잘 컸고 행복했어요.
다만 운이 좀 나빴을 뿐이에요"
돌아가시던 그 순간 까지 손녀 딸의
건강을 걱정하셨던 외할머니의
부음(訃音)을 듣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저보다
먼저 가셔서 다행이에요.
할머니께 참척(慘慽)의 고통을
드리지 않아서 큰 위로가 돼요"
할머니의 49재에 내 딸도 하늘나라
로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 거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행복한 기억을 많이
쌓을 거야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후회없도록.
나중에 참 좋은 삶이었고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 거야.
나는 그럴 수 있으니까. '
"사랑하는 엄마, 아빠!
저는 인생을 참 즐겁게 살았습니다.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동생
과도 우애가 깊었고 물려받은 머리
로 열심히 공부해서 하고 싶은 것은 다 이루었어요. 대학도 잘 갔고 행시
도 빨리 붙어서 가고 싶은 회사도
갔고요. 엄마랑 유럽 여행도 두 번
이나 갔다 왔고 매년 친척들과 가족
여행도 다녔고 친구들과도 자주
여행을 다니며 추억도 쌓았고요.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진짜, 완전 럭키 걸이죠.
제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사람으로 큰 것은
순전히 엄마, 아빠가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셔서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요.
어디 가서든 씩씩하고 밝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러니 제가 좀 먼저 떠나더라도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슬퍼하지는
마세요.
저는 가족의 기쁨이고 싶지 영원한
슬픔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좋은 추억들, 좋은 기억
들을 많이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엄마 아빠 첫째 딸로 태어나서 참
행복 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거예요.
항상 사랑해요. 두 분께 감사합니다."
' 내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편지나 더
많이 써야겠다. 건강하게(무사히)
돌아다니고 놀러 다닐 수 있는 시간
이 길기를 바라고 있다. 누누이 말하
지만 아쉬운 건 있어도 후회하는
건 없다.
나는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니... .
음, 그래도 운 좋았던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즐거운 일도 많이 했고, 좋은 추억
들이 많았으니, 그래서 누군가
나중에 나를 생각할 때 슬퍼하기
보다는 좋은 추억 으로 떠올려주면
좋겠다.
내가 있든 없든 세상은 흐르고 삶은
돌아가니까 그게 슬프기보다는 다행
이라는 생각을 한다. 좋은 일 많았으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참 운 좋은 사람이다.'
"Per aspera ad astra"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에요.
이 말처럼 나는 별을 향해 갔을
거예요. 내 여행을 응원해 주세요."
내 딸 조영지 사무관은 2025년
1월 11일 내 가슴에 영원히 빛나는
별을 새기고 별을 향해 돌아오지
않을 멋진 여행을 떠났다.
첫댓글 영지님 글을 읽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언제쯤에나 눈물이 마를까요.
언제쯤에나 눈물없이 추억할까요.
엄마를,
가족을 바라보며 그러지말라는 위로의 미소를 보내는 영지님을 봅니다.
삶을 살아간 태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이렇게도 훌륭한 사람, 저보다 앞서 많은 것들을 깨달은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나이와 상관없이 저보다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이 삶 가운데 겪어왔고 겪고 있는, 앞으로도 겪을 역경 가운데 영지가 일러 준 대로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 하루하루 견디며 이기며 나아가겠지요. 참 귀한 영혼을 가진 영지의 별 세상에서의 또다른 삶도 행복하기를, 다시 만날 가족들의 삶 또한 그러하기를 빕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랑을 주고 별을 향해 여행을 떠난 딸, 조영지 사무관이여~
영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함에 슬픔만이 아님으로 승화, 일으켜 세워주네요.
엄마의 가슴에 새겨진 빛나는 별, 영지, 엄마와 온 가족의 삶을 빛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영지의 영혼이 하느님의 옷자락 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