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기타
박성실
지난봄, 대학 강의실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이사했다. 새 학기가 될 때쯤이면 주택 담장이나 전신주마다 원룸 임대 홍보물로 뒤덮이는 동네이다. 주변엔 대학교와 종합병원이 가까이 있고 대중교통도 사방으로 잘 연결되어 임대수요가 제법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몇 년 사이에 골목마다 다세대주택이 더 빼곡하게 들어섰다. 꽃샘추위에 이삿짐을 싣고 오가는 소형 트럭과 종종거리며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개강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급하게 이사했는지 후미진 구석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채 버리고 간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옷이나 책, 망가진 의자…, 심지어 둘둘 말린 담요까지. 한때는 누군가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켜 준 물건이었을 텐데…. 마음이 떠난 후 아무렇게나 버려진 존재의 뒷모습이 더욱 처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다 전신주에 기대 선 기타 한 대에 눈길이 멈췄다. 뻘쭘하게 서 있는 원목 색의 통기타. 긁힌 자국이 있었지만 망가진 것 같진 않았다. 다가가 살펴보니 줄이 하나 끊어진 상태. 가만히 튕겨보았다. 소리가 맑진 않아도 제법 울렸다. 새 주인을 찾아 누군가의 가슴도 울려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때마침 어느 작은 창문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변성기를 갓 지난 소년의 발라드가 불안정하게 들렸다. 기타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코드를 짚는 화음도 어설펐다. 노래를 부르다가 틀리면 다시 부르곤 하는 소리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나 트럭 행상의 외침과도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다양한 삶의 소리가 있는 골목길 풍경을 뒤로 남긴 채 돌아오는데 왠지 그 기타가 자꾸 눈에 밟혔다.
어느 날 저녁밥을 짓고 나니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너무 더웠다. 그의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아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주변 골목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대학 운동장까지 가게 되었다. 한강 쪽에서 불어와 언덕마루로 휘몰아치는 골바람에 혼곤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종일 쌓인 피로가 풀린 듯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기타가 눈에 띄었다. 화들짝 놀라 뛰어 들어갔다. 기타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살폈다. 다행히 상처 없이 말짱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마른 수건으로 기타를 조심스레 닦으며 생각하니 그 정황이 짐작됐다. 피아노 위, 벽에 기대어 서 있던 것이 세찬 맞바람에 쓰러져 내던져진 것이었다. 기타를 다시 제 자리에 세워 놓았다. 삼십여 년 동안 지키고 있던 그 자리에.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로 표현되던 우리 세대의 젊은 날은 마음까지도 늘 허기졌었다. 내겐 그것도 사치였어, 1970년대의 추억을 되새길 때면 그가 신음처럼 내뱉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고 끼니마저 걱정하게 된 상황이었기에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전공을 권유받을 정도로 미성에 음감까지 갖추었던 그였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을 키우기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보장되는 쪽으로 전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훗날 어렵사리 마련한 클래식 기타를 독학으로 연주하면서 목마른 감성을 해갈하며 스스로를 달랬다고 했다.
결혼 후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르고 친구들과 어울려 화음도 맞추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 신비롭고도 애절한 선율에 심취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남편이 반주하며 두 아이를 데리고 동요를 부르던 장면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도 하며 함께 즐기는 것만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시절이었다.
우리의 일상이 점점 분주해지자 기타는 피아노 위에 놓인 채 비스듬히 벽에 기대 서 있게 되었다. 그는 이따금 쌓인 먼지를 닦아주며 잊지 않았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엔 자신의 마음도 닦는 듯 엄숙해 보였다. 기타 케이스에 넣을까 하다가도 그것을 바라보면 피아노와의 이중주가 들리는 듯해 멈추곤 했다. 갈수록 멋진 듀오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침묵 속에 들려오는 소리가 텅 빈 가슴을 울려 서걱거리는 마음을 더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느새 줄감개에 푸르뎅뎅하게 녹이 슬어 있었다. 그것이 뻑뻑하지 않도록 기름칠을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낸 결과였다. 여느 때처럼 무심하던 어느 날이었다. ‘탁!’ 어디선가 줄이 강하게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여운을 따라가 보니 근원은 바로 기타 줄이 아닌가!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고 시위라도 하는 것일까? 언제라도 그의 가슴에 안겨 멋진 연주를 들려주리라 믿었었는데…. 그것은 손길을 기다리게 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깨우쳐 주는 소리였다. 끊어진 1번 줄은 제가끔 헤드와 브리지 쪽으로 말려 있었다. 그 모양새는 마치 등 돌린 채 누워 있는 부부의 모습처럼 보였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그날 이후 둘이서 갈등으로 팽팽한 긴장의 시간이면 불현듯 그 소리가 경고음처럼 들리는 듯했다. 한 줄이 또 끊어졌다. 그는 볼썽사납다며 나머지 줄을 모두 빼버렸다. 결국,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줄이 없는 기타. 그것은 울대가 없어 울 수 없다는 한 마리 황새와도 같았다.
악기의 몸체가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그의 낯빛도 차츰 윤기가 줄고 탄력을 잃었다. 기타 연주와 아이들 노랫소리가 담긴 테이프는 이제 늘어져서 소리를 제대로 재생할 수 없다. 가장이라는 어깨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그의 맑던 성대와 미끈하던 손가락에 결절을 얹어 주었고, 그의 낡은 기타는 달아나기만 하는 시간을 붙잡지 못한 채 지금껏 망연히 서 있다.
그날따라 골목길에 버려져 있던 기타의 잔영이 자꾸 어른거렸다. 기타 목에 끈을 엮어 벽에 박힌 못에 걸어 주었다. 여전히 침묵하며 피아노 위에 서 있는 자세가 적이 안정돼 보여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가슴 깊숙한 곳에선 곡진한 소리가 처연하게 울리고 있었다. 우리의 푸르렀던 날을 기억하는 그대! 한때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준 것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지만, 이제 다시 온몸을 떨며 울리는 소리를 듣고 싶구나. 서 있는 기타여!
첫댓글 줄이 없는 기타에서 아련하고 서글픈 음이 흘러나오는 듯합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박성실 '실꽃'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