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송 영화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개인적 감상문 올려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프리터로 추정되는 철부지 동생과 요양원에 들어갈 어머니까지 책임져야 하는 42살의 솔로남 월터는 16년째 일해오던 잡지사가 웹진으로 바뀌며 직장마저 불안해집니다. 같은 직장의 신입 사원을 짝사랑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기약없는 바람일 뿐이죠. 그런 와중에 마지막으로 발행될 폐간호 잡지 표지로 쓰이게 될 유명 사진작가의 필름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월터는 바로 그 필름을 현상/관리하는 책임자였고요. 그는 결국 사라진 한 장의 필름을 찾아 어디 있는지도 모를 사진사 '션 오코넬'을 찾기 위한 여정에 오릅니다.
영화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잡지사가 사진으로 유명한 'LIFE'지에요. 일단 다들 아시다시피 '라이프'는 실존 잡지입니다. 실재로도 사진이 중심인 잡지였고 1936년 창간 이후 포토저널리즘 분야를 개척한 잡지라고도 평가받는다고 하네요.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실재 '라이프'의 폐간은 70년대였다는 정도일까요.
(아래 링크에서는 1972년 폐간이라고 나오는데 검색해보면 이후에도 라이프 잡지 이미지가 제법 있습니다. 현재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인터넷 플랫폼으로 발간된다고도 하고요. 아마도 폐간-복간-폐간을 했던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역대 라이프지 표지를 모두 볼 수 있는 사이트링크, 1972년 특집호 다음이 1979년인 걸로 보아선 추측이 맞는 듯)
'인생'이란 이름의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월터의 직무는 '네거티브 애셋 매니저'입니다. 여기서 네거티브란 네거티브 필름, 즉 현상을 거쳐 얻어진 음화 필름을 뜻합니다. 하지만 직역하면 '부정적인 자산 관리자'란 뜻도 가능하죠. 디지털 시대에 필름 카메라는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고 심지어 대형 필름 제작사들도 속속 생산을 중단하는 현실 속에서 네거 필름 관리란 직책 자체가 시한부 적인 삶이기에 부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 속 월터의 '삶(life)' 역시 네거티브 합니다. 그는 42살에 제대로 연애도 못한 채 부양이 요구되는 두 가족의 삶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급사 이후 그는 꿈이나 미래를 포기한 채 생존하기 위한 삶을 살아온 남자죠. 그렇게 사내의 맘 속에 묻어둔 꿈은 그래서 넘쳐 흐르는 물처럼 종종 그의 삶을 침범합니다. 영화 속 월터는 수시로 백일몽에 정신을 빼앗기는데요. 영화의 전반부에서 이런 그의 캐릭터를 수시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얄미운 직장 상사의 놀림에 '저 자식을...'이라고 생각하다 결국 두 사람이 영화 속 초인처럼 도심을 날아다니며 치고 박는 백일몽에 빠져드는 거죠. 그리고 이런 백일몽은 그의 일상에 종종 불편함을 줄 정도입니다. 쉽게 말해 그는 현대적 '위기의 남자'에요. 가족도 없고, 꿈도 없고, 자기의 삶도 없이 백일몽을 마약 삼아 하루를 연명하는데 심지어 직장마저 없어지게 생긴 거죠. 그런 가운데 사라진 션 오코넬의 25번재 필름은 그의 삶에 전환을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기억나는 여행지가 (아마도) 출장차 갔던 피닉스고 두번째로 기억나는 곳이 그 와중에 들렀던 경유지이고, 평생의 기억이 파파 존스와 KFC 아르바이트와 지금의 직장에서의 16년간 경력인 소심한 사내가 어느날 갑자기 필름 한 장을 찾겠다고 앞뒤 안 가리고 그린란드로 훌쩍 떠나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마치 그의 백일몽 같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은 그림을 보는 것 같고, 그 속에서 겪는 사건들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극적인 것들이지요 (만취한 남자가 조종하는 헬기에 올라타거나 상어와 싸움을 벌이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분화 직전의 화산 밑으로 들어가는 식이요) 그리고 이런 여정을 통해 남자는 당연하게도 변화합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화의 극적 긴장은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조금 느긋한 템포로 천천히 이야기를 펼쳐 놓습니다. 감독이 주연 배우인 벤 스틸러 본인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트로픽 썬더'나 '주랜더' 같은 이전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모습히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론 적절히 완급을 조절하면서 대자연의 풍광을 멋지게 잡아낸 연출이 좋았지만 예고편이나 연출자의 이름을 보고 요절복통 코미디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분명 벤 스틸러 특유의 코미디가 녹아있는 영화이지만 그보단 잔잔하게 한 남자의 인생의 변곡점을 그려내는 드라마가 강한 영화입니다. (이제 이 아저씨도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요. 조금 섭섭...)
사라진 필름에 얽힌 이야기의 미스터리적 구조 역시 헐겁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충분히 긴장감을 유지시킵니다. 특히 필름의 정체가 밝혀지는 후반부의 반전은 의도가 빤하긴 하지만 명확하고 분명한 메시지와 함께 짠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고요. 중간 중간 툭툭 던지는 단서들이 조합되고 정리되는 후반부는 미스터리적 요소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그린랜드, 아이슬랜드, 히말라야로 이어지는 여정의 풍광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라이프'지를 소재로 삼는 영화인 만큼 이 역시 의도적으로 힘을 준 게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대자연 그 자체가 가지는 힘은 무시할 수 없죠. 영화가 전체적으로 영상미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거 다 재껴놓고 그림만 보더라도 충분히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백일몽으로 대변되는 초반의 월터가 스스로 만든 울타리를 깨고 그린란드로 달려가는 장면인데요. 영화속 재수없는 상사가 그를 놀리며 부른 노래이자, 동시에 그의 짝사랑 셰릴이 '그 노래의 진짜 가사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라고 했던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가 흐르면서 월터가 그린란드고 가기 위해 달려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때 배경으로 라이프지의 사진들이 넘어가다 마지막에 월터가 표지 모델을 장식한 '상상의 컷'이 등장하는데 그의 모습이 우주비행사, 즉 Major Tom이죠. 그가 껍질을 깨고 로켓에 몸을 실듯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한 컷으로 재치있게 보여주는 장면이자 음악과도 적절하게 어울리더군요.
벤 스틸러 1인 캐릭터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이지만 조역들의 개성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영화입니다. 거의 특별출연 수준인 숀펜 역시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역할로 나와서 할 일만 딱 하고 빠지고요.
몰랐는데 1947년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원작은 백일몽 자체에 중심을 둔 미스터리가 강조된 코미디인 듯 보이네요.
+
한글 제목은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만듭니다. 그 자체로 꽤 그럴듯한 제목이긴 하지만 원제가 가지는 중의적인 느낌이 완전히 날아가버렸으니까요. 하지만 한글 제목으로 그 맛을 살린다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죠.
첫댓글 이런 내용이었나요??? 으.. 멘탈치료가 필요한걸까..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도식적이었다는거, 제목이랑 예고 등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실제 영화가 많이 다르다는거만 빼면 따뜻하고 편안한 영화여서 좋았습니다.
영화 다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친구에게 화를 관객을 봤는데ㅋㅋ 학생보다는 사회생활을 하거나 나이가 좀 있는 관객들이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불호가 상당할거라 예상되네요.
코미디영화를 잘 안보는 저에게는 과하지 않은 코미디라 더 좋았네요.
참고로 현재 부산에서 라이프 사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가보세요~저도 조만간 가볼 예정.
그나저나 숀펜이랑 벤 스틸러...원래 그렇게 늙었었나요?ㅠㅠ 같이 늙어가는 이 느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