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의 방
901호실의 정원은 여섯 명이다. 세 번째 침대의 희 할머니는 관절염이 있다. 손가락 사이가 굽은 채 벌어져 있어 손을 흔들면 단풍잎 같다. 휘어진 손가락 마디에 걸린 세월이 저리 가벼울 수 있을까. 희 할머니는 종일 침상에 누워서 지낸다. 편측 마비가 있어 요양병원이 집이 된 지 오래다.
요양병원의 밤은 고요해야 다음 날이 활기차다. 희 할머니는 요즘 밤낮이 바뀌었다. 엄밀히 따지면 혼자 깨어있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주변 할머니에게 밤새 말을 건다는 것이다. 잠을 못 잔 할머니들은 식반 앞에서 꾸벅이거나 눈을 아예 감고 있다.
오후 두 시, 희 할머니의 눈꺼풀에 잠이 그득하다. 나는 할머니를 깨우기 위해 침대에 다가가 간곡하게 노래를 신청한다. 인내하며 거듭 말하면 듬성듬성한 치아 사이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 집 한 채~~~괴기 잡는 아버지와 따 있다 ~~내 사랑 크레파초스”이즈음이면 노래는 이미 절정에 다다라 주변은 웃음꽃이 팡팡 터진다. 노래 가사의 클레멘타인이 갑자기 크레용도 아닌 듣도 보도 못한 크레파초스가 된 것이다. 다시 가사를 고쳐주며 시켜봐도 할머니의 크레파초스는 불변이다. 나는 손바닥이 빨갛게 되도록 응원을 한다.
이어서 부른 <백발가>의 “나도 어제 청춘이다가 요로콤 늙어따아~~”가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가 내 신상을 캐묻는다. 이참에 장단도 맞춰야 하니 무조건 처자가 된다. 부모형제, 봉급, 사는 곳까지 찰지게 물어보는 할머니가 오늘은 봉급에 꽂혔다. 내게 봉급을 많이 받느냐고 묻는다. 얼마가 많은 것이냐고 되물으니 20만 원이라고 단번에 내뱉는다. 할머니의 최곳값 20만 원이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시집도 가고 집도 사고 맛난 것도 먹고 그야말로 화수분이다. 그래서 나는 졸지에 부자가 되고 할머니는 갑자기 중신어미로 돌변한다. 참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은근한 눈빛으로 물으니 막내아들이란다.
구십 세인 할머니의 아들이면 나이는 뻔한 노릇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 없다.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구구절절 듬성듬성한 치아 사이로 이번엔 노래 대신에 아들 자랑이 한 섬이다. 내용인즉은 집, 돈, 외모는 되는데 여자만 없다고 한다. 할머니의 기억에 아들은 언제나 청춘이다. 한참 말을 잇던 할머니가 상두대 위에 있는 情의 대명사인 초코파이를 달라고 한다. 초코파이는 할머니의 며느리가 사다 놓은 것이다. 며느리는 할머니를 뵈러 올 때마다 평소에 좋아하셨다고 강조했다. 초코파이는 할머니의 입가에서 아들까지 잊은 채 진한 맛을 돋우는 꿀이 되어 흐른다.
할머니는 물까지 마신 후 다시 노래를 부른다. “저 건너 잔솔밭에 뽈뽈 기는 저 포수야 그 짐승 잡지 마라 그 뒤는 몰라~몰라”라고 하신다. 재창을 시키며 다시 듣는 뽈뽈 기는은 이 노래의 달콤한 샘물이 된다. 함께 노래를 듣던 옆 침대의 성 할머니가 나는 포수 모르는데 하시며 얼굴에 근심이 그득해진다. 왜 모르냐고 물으면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다. 성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 이어 칠십 세의 성 할머니의 앞, 구십오 세의 봉 할머니가 “괜찮여~응 괜찮여~”하시며 하회탈 같은 표정을 짓는다. 괜찮여는 요즘 봉 할머니가 하는 거의 유일한 말이다. 이즈음이면 봄 들녘, 노동 후 마시는 막걸리보다 걸쭉한 웃음꽃이 병실에 가득 번진다. 희 할머니의 기분이 더욱더 좋아지면 나는 할머니의 情이 담긴 초코파이를 주변의 할머니에게 심부름한다. 며느리도 일찍이 부탁한 일이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노래를 잘하는 희 할머니는 방의 수호신이다. 옥 할머니가 식사 때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선상님요! 저기 할매가 밥 안 먹었심더”하면서 내게 일러준다. 그리곤 구십이 넘은 옥 할머니에게 “밥 안 먹으면 죽소 어서 드소!”하며 호통까지 친다. 치매로 숟가락을 밀어내는 옥 할머니의 머리엔 꽃무늬 앞치마가 머릿수건으로 곱게 씌어 있다. 식사 때마다 머릿수건이 된 꽃무늬 앞치마는 할머니의 어떤 시절을 불러내는 것일까. 배고픔까지 잊은 채 온화하게 변하는 얼굴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희 할머니의 입담은 다른 보호자에게까지 이어진다. 날짜도 넘나들어 휴무일을 지내고 가도 901호의 소식을 아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병실은 밥의 힘이 보여주는 최고의 현장이다. 할머니들은 밥을 두 끼만 밀어내도 비틀어진 화초처럼 시들시들해진다. 그러므로 끼니는 불로초처럼 소중한 탄성이 된다.
희 할머니가 갑자기 밥을 밀어낸다. 다짜고짜 한잠도 못 잤으니 수면제를 달라고 한다. 식사도 못 할 정도로 잠에 취해 있던 희 할머니는 졸지에 희 할머니가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의사에게 최고의 무기를 내걸고 협상을 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말로 약속을 받아낸 할머니의 배꼽시계가 크게 울린다. “할매요 진짜 안 먹을라고 했는겨?”하니 단풍잎 같은 손을 들며 “저 할매가 내게 호통치게 할 수는 없심더”하며 꽃무늬 앞치마를 머리에 쓴 옥 할머니를 바라본다. 협상가인 희 할머니의 식판은 깨끗하게 비워졌다. 밤이 되기 전 수면제는 할머니의 기억 저 너머로 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할머니들의 이름이 온전히 불러지던 유효기간은 어디쯤일까. 희로애락과 함께 잊히던 이름은 요양병원에서 다시 개인으로 회생한다. 하여 처음 요양병원에 오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한참 동안 생경한 표정을 짓는다. 이름만으로 추억을 불러내던 세월은 유수 같다. 다시 소환된 이름마저 욕심인지 가족이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지워지는 할머니들. 나는 그들의 고요해지는 나날에 연분홍 초대장을 띄운다. 호수처럼 밋밋한 마음에 물수제비로 뜨는 납작 돌이 된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도 된다. 그 씨앗에는 좋은 이웃으로 남게 되는 아들딸도 있다. 흙 없이 덕담만으로 새로 심어진 아들딸은 할머니의 노랫가락에 여름덩굴의 활기찬 줄기로 뻗어나간다. 나는 슬픔의 덩어리로 초점이 맞춰진 아들딸이라는 이름에 안녕을 고한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희 할머니가 좋은 이웃을 향해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든다. 연이어 입술이 달막달막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