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이태기
그해 가을은
압축된 채 내게로 왔었다
“이거 너 줄게”
가을 같은 아이가 내민 건
코팅된 조그만 꽃이었다
색깔 없던 설렘은
그날 색깔이 정해졌고
강의실 책갈피는 연보라로 웃었다
그렇게 가을과 설렘과
소망은 동색(同色)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이란 코팅되지 않는 것인지
생화는 지고
그날만 연보라로 코팅된 채
오래도록 책갈피에 남았다
한순간의 경험이 오래 묵히고 오래 발효되어 잊히지 않으면 추억이 됩니다. 아름답게 기억되지요. 이태기 시인의 시, 「들국화」는 사랑의 ‘추억’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책갈피에 고이 눌러진 ‘들국화’를 가을을 닮은 아이(소녀)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들국화는 ‘코팅된 조그만 꽃’이었습니다. ‘코팅된 꽃’은 시들지 않고 빛깔과 모양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시인의 ‘사랑’이 영원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해 가을은/압축된 채” 시인에게로 온 것입니다. 여기서 ‘압축된 채’라는 말속에서는 책갈피 속 곱게 눌러진 들국화를 직접 표현한 말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받은 꽃 선물의 경험이 그해 가을의 전부였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소녀에게 받은 ‘들국화’가, 다시 말해 소녀로부터 받은 사랑이 그해 가을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이런 시인의 정서는 그 다음 연에 이어집니다. “색깔 없던 설렘은/그날 색깔이 정해졌”습니다. 들국화의 색깔의 사랑이었습니다. 즉 “연보라로 웃었”습니다. 마침내 “그렇게 가을과 설렘과/소망은 동색(同色)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의 추억, 한 번의 설레는 경험, ‘연보라’색의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연에서 반전이 있네요. 압축되고 코팅된 들국화와는 달리 “그러나 마음이란 코팅되지 않”아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화는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화’는 살아있는 꽃을 말하지만 두 사람이 나눴던 ‘사랑의 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생화’는 ‘코팅된 꽃’과 다릅니다. 시들기도 하지요. 사랑도 생화와 같습니다. 소녀가 떠나간 것을 암시하고 있네요. 이별한 사랑은 비극적이지만 사랑의 추억은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추억은 코팅된 꽃과 같습니다.
첫댓글 사랑과 추억을 이렇게 예쁘게 또 아픔을 승화시키는 감동적인 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좋은 글 감사히 읽습니다.
소리와느낌
톡
톡
톡
삐이익
삐이익
어린 아이 손
물 잠거는 소리
조용
~~~
삐이익
꽝!
감사합니다.
늘 읽을때마다.
고개가 갸우뜽?
이태기 님 시는 깜작 깜작이야
가슴 놀래키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소리없이 피는 꽃
행여나 누가볼까
하얀가슴 파랗게 물들이는
너는 가을속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