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바꾸기 / 김덕림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더 노력해야지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큰 병원에, 환자가 몰려 예약을 하고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유명한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4개월의 진료에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더 치료를 해보자는, 그래서 좀 기다려보자는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고 매정하게 단호한 어조로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바로 전에 “가스 경보기 다시고, 냉장고에 음식 오래두지 마시고(식구들 상한 음식 먹일 수 있으니)그렇게 사시면 됩니다.”라는 말씀도 했었다.
2009년 어느 날 이 세상에서 냄새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더 이상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후각세포가 죽었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귀가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말을 못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은 더더욱 아닌데 뭐 대수야 했다. 냄새 못 맡는다고 누가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을 테고 어디를 다니는데 불편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의사소통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니 그리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2009년 지구촌이 술렁이고 있었다. 신종플루가 유행한 것이다. 맥시코에서 등장하여 미국으로 퍼진 후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상륙한 것이다. 4월 첫 환자가 발생했고 감염자는 속출했으며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전 국민은 손씻기 운동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손 세정제가 귀하신 몸이 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그때였다. 환절기 감기려니 했는데 열이 펄펄 끓었다. 여느 감기와 달라 조금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치료 후 나았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무엇을 먹든 어디를 가든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료한 병원에 갔더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란다. 그래서 급히 달려간 대학병원에서는 한 달 만에 치료를 끝내면서 후각 상실로 진단을 내렸다. 그냥 그렇게 살려고 했다. 외관상 크게 표시 나는 것이 아니기에 견딜 만했다. 난 그래도 오감 중에 겨우 하나를 잃은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허물러지는 육신과 영혼으로 인해 아파하고 절망하고 있는가.
그러나 온 세상을 품을 것 같던 너그러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후각 상실 후 겨우 두어 달이 지나서일까. 여기저기서 냄새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들에 노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객님, 이 제품은 어때요? 향도 좋고요.”라며 제 기능을 잃어버린 코에 들이대는 화장품 가게 판매원 앞에서 난 난감했다. 생일기념 할인문자를 받고 간 미용실에선 허브 제품으로 손 마사지를 해 준단다. 어느 향으로 할까를 묻는 직원에게 아무거나 다 좋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하나하나 코 끝에 갖다 대며 향이 어떠냐고 고문(?)을 하는 미용사가 미웠다. 또 지인들과 분위기 좋고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식당을 들어설 때 시장기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동행한 이들이 감탄하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당황스러웠다. 어느 날 저녁상 앞에 앉으신 팔순 시어머님께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하시니 나는 또 우울했다. 제 연세에까지 갖고 가는 기능을 이제 막 오십을 넘긴 나는 지키지 못했다는 데에 좌절했다.
그 무렵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한 여고 동창생은 자기 언니도 나와 같은 증상이었는데 서울 큰 병원 고명한 의사 선생님께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다닌 그곳에서 난 후각의 사형선고를 받았고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겨우 하나를 잃었음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감 중 아직 네 개나 남아 있음을 나 자신에게 세뇌시키며 상실의 아픔을 달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가장 효과적으로 상실에 대처할 수 있다.’는 필립 시먼스의 말을 가슴에 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동안 3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무섭게 빠른 세월 앞에서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후각 또한 어쩌면 그 일들의 시작일 뿐이다. 너무 애통해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후각을 회복하려 한다. 후각을 잃으면서 미각도 같이 잃을 수 있으며 치매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두려웠던 순간들은 뒤로 하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후각을 시작으로 미각, 청각 등 감각을 한 둘 잃어간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미지의 공포에 인류는 무기력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는 이 영화의 제목은 작년 말 개봉한 <퍼펙트 센스>이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감각을 하나씩 잃어갈 때마다 당황하고 난폭해지고 좌절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할 수 있음은 모든 감각을 넘어서는 완벽한 감각인 사랑이 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오감 중 가장, 우수하고 가장 본능적이라는 후각을 잃은 나 역시 기대해 본다. 이제까지 내 기억 속에 혹은 내 마음속의 창고에 저장된 냄새 또는 향기들은 사랑이라는 열쇠로 인하여 다시 세상으로 꺼내질 것이다.
이제 나의 오감은 사랑,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