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함락 임박… 아프간, 월남 패망 데자뷔
美軍 떠나자, 탈레반이 수도 카불 50㎞ 앞까지 진격… 외신들 “사이공 함락 떠올라”
아프가니스탄 제2의 도시 칸다하르와 제3의 도시 헤라트가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함락됐다고 AP통신이 13일 전했다. AFP통신은 이날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남쪽으로 50㎞밖에 떨어지지 않은 로가르주(州)의 주도(州都) 풀리 알람도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이 파죽지세로 아프간을 장악해감에 따라 조만간 반(反)정부 세력이 수도 카불에 진입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와 타카르 지역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지난 9일(현지 시각) 아프간 수도 카불에 모여 음식을 얻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은 아프간 제2의 도시 칸다하르를 포함해 국토의 65%를 점령했다./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미군의 철수 완료 시한으로 정한 이달 31일을 2주가량 남기고 탈레반이 빠르게 진격하자, 영국 가디언지는 “탈레반의 칸다하르 점령이 확인되면서 아프간이 사이공 함락과 비교되고 있다”고 했다. ‘월남 패망’의 날처럼 수도 카불이 곧 함락되고 아프간 전역이 탈레반 수중에 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비관적 전망이 팽배해 있다는 뜻이다.
아프간 상황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의 가장 긴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며 미군 철수를 발표한 뒤 급격히 악화해 왔다. 미군이 훈련과 장비를 지원한 정부군 약 30만명이 있지만 분열된 아프간 지도부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11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두 달 전 임명했던 군 최고사령관을 급히 교체했지만, 전황을 뒤집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이처럼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자 미 국무부는 이날 현재 4200명 수준인 주아프간 대사관 인력을 대폭 줄여 “핵심 외교 인력만 남기고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카불에는 외교 인력을 보호하는 미군 650명이 있는데, 미 국방부는 철수를 도우려 해병대와 육군 보병대 등 추가 병력 약 3000명을 급파했다. 아프간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에 대비해 미 본토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 있는 병력 약 3500명은 인근 쿠웨이트로 이동할 예정이다. 미군에 협조했던 아프간 현지 통역관과 그 가족 등을 철수시키기 위한 육군·공군의 합동 병력 1000명도 곧 파견된다.
영국 국방부도 아프간 내에 남아있는 자국민 약 4000명의 철수를 위해 병력 600명을 파병한다고 밝혔다. 캐나다도 주아프간 대사관을 폐쇄하고 모든 인력을 철수시키기 위해 특수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난민 36만명 탈출행렬… “여성·아이에겐 지옥 될것”
미군의 완전 철군을 2주가량 앞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재집권을 두려워하는 주민들의 대탈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엔국제이주기구(IOM)는 10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에서 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탈레반의 공격으로 거처를 잃었고, 35만9000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난민 중 상당수는 밀무역 트럭에 몸을 싣고 국경을 넘거나, 탈레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정부군 통제 지역으로 대피하고 있다. 1970년대 월남 패망 후 보트피플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13일(현지 시각) 아동 구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을 인용해 아프간 어린이 7만2000명이 탈레반이 점령한 거주지를 떠나 수도 카불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국민은 탈레반이 재집권하면 여성·어린이 인권을 강도 높게 탄압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년 전인 지난 2001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아프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프간 사람들은 공개 처형과 가혹 행위를 일삼는 탈레반의 공포정치하에 살았다. 특히 여자 어린이는 기본적 교육도 받지 못했고, 여성은 취업 활동을 제한받은 채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탈레반이 떠나간 지난 20년간 아프간의 여성·어린이 인권은 크게 개선된 상태다. BBC방송에 따르면 2017년 아프간의 여자 중학생 수는 350만명으로 전체의 39%를 차지한다. 텔레반 치하의 1999년에는 아프간 전체에 여중생이 한 명도 없었고, 새 정부가 들어선 초기인 2003년에는 240만명이었다. 고등 교육을 받는 여성도 크게 늘어 현재 아프간 대학생의 약 3분의 1이 여성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활발해졌다. 현재 아프간 여성의 5분의 1이 직장을 갖고 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아프간 여성도 수천명이다. 경제력을 갖춘 여성의 가정 내 지위는 높아졌다.
그러나 탈레반이 재집권하게 되면 여성과 어린이 인권 시계는 2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고, 외출할 땐 신체 노출을 피하고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 부르카는 눈 부위까지 망사로 덮기 때문에 니캅(눈 제외 전신 가리는 복장), 차도르(얼굴 제외 전신 가리는 망토), 히잡(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헤어 스카프)보다 훨씬 엄격하다.
미셸 바첼렛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여성이 남성의 허락 없이 집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하면 가정에서 일련의 폭력을 낳게 된다”고 했다. 남편이 아내를 소유물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쉽게 폭력을 휘두르고, 발이 묶인 아내는 경제 활동이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탈레반 치하에서 자유 연애와 결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WSJ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탈레반은 북부 타하르주의 루스타크 지역을 점령하고 이 지역 주민들을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불러 모은 뒤 “15세 이상의 모든 소녀와 40세 미만의 과부는 반드시 탈레반 군인들과 결혼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여자 아이들의 교육권은 완전히 박탈된다. 탈레반은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은 필요 없다며 학교에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레반은 최근에도 새로운 지역을 점령하면 가장 먼저 학교를 장악하고, 여학교는 문을 닫거나 아예 불태운다. 지난 5월 9일 수도 카불 시내 여학교 3곳에 대규모 폭탄 공격이 발생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현지 언론은 이 사건의 배후가 탈레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탈레반이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인명 피해도 심각하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에 따르면 올 1~6월 아프간 사상자 수는 5183명(사망 1659명)이었는데 사상자의 약 32%가 어린이였고, 여성은 14%였다.
탈레반 치하를 경험하지 않은 아프간의 신세대가 탈레반 재집권 이후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BBC는 “현재의 아프간 젊은이들에게 탈레반 체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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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 타먹는 ‘유령 군인’ 아프간軍, 탈레반에게 속수무책
미국이 지난 20년간 약 100조원을 들여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의 정부군이 독자적인 전투가 불가능한 오합지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 시각) “아프간 정부군을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강한 군대로 키우려 한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시작하자 탈레반은 총공세에 나섰고, 아프간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주요 도시들을 내줬다. 아프간 서부 최대 도시인 헤라트를 비롯해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주도 34곳 중 18곳이 탈레반에 장악됐다. 수도 카불도 미군 완전 철수 후 한 달 내에 탈레반에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의 장부상 숫자는 탈레반 반군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임금을 받는 아프간 정부군(ANDSF)은 30만699명이다. 반면, 탈레반 반군의 핵심 전투대원은 6만명으로 추산되고, 각 지역에 퍼져 있는 대원과 지지자들을 다 포함해도 20만명을 넘지 않는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프간 정부군은 연간 50억~60억달러(약 5조8000억원~7조140억원) 규모의 예산을 사용한다. 미국이 ‘아프간군 기금’(ASFF)으로 지원한 자금만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750억2000만달러(약 87조6983억원)에 달한다. 무기와 장비, 훈련비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쏟아부은 돈은 830억달러(약 97조270억원)라는 분석도 있다.
병력과 물자에서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을 압도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정부군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NYT는 아프간 정부군에 유령 병사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임금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병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의 실제 병력은 등록된 숫자의 6분의 1 수준으로 탈레반 반군 숫자보다 훨씬 적다는 분석도 있다. NYT는 “정부군 장교들도 실제 병력이 장부상 인원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아프간 정부군이 미군 철수를 앞두고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미국이 철군을 발표했을 때 탈레반은 동력을 결집하기 시작했지만 아프간 정부군 안에서는 정부를 위해 싸우는 것이 목숨 걸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졌다”고 전했다. 미국 민간싱크탱크 CNA의 조너선 슈로든 박사는 “탈레반의 결속력이 아프간 정부군보다 훨씬 강고하다”고 했다.
탈레반이 지난 몇년간 안정적인 자금줄을 만들고 전략을 가다듬으면서 전투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엔은 탈레반 연간 수익 규모를 3억~16억달러(약 3500억~1조 8700억원)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중 60%가 마약거래에서 나온다. 탈레반은 최근 몇 년간 아프간군 시설들을 접수하며 미군이 아프간군에 지원한 무기와 장비도 확보했다.
탈레반의 전략이 정교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1994년 남부 카다하르를 중심으로 결성된 탈레반은 남부와 농촌지역을 장악하며 세를 키워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부와 북부 대도시를 먼저 공격했다. 반(反)텔레반 정서가 강하거나 지역군벌의 영향력이 커 자신들에게 불리한 지역부터 기습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탈레반 대원들은 사복 차림으로 민간인과 뒤섞여 있다가 정부군을 공격한 뒤 은신처로 피하는 게릴라 전법도 구사한다.
이벌찬 기자 bee@chosun.com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33770
카불 함락 '초읽기'…탈출지원 美軍 증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90%를 장악하고 마지막 남은 최대 도시이자 수도인 카불을 향해 진격 중이다.
1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2~3대 도시를 비롯해 북부 요충지인 마자르이샤리프뿐만 아니라 카불과 인접한 동쪽 낭가르하르주 주도 잘랄라바드마저 손에 넣었다. 탈레반은 카불 남쪽 11㎞ 지점에서도 정부군과 교전하며 포위망을 좁혔다. 카불 함락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카불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직원과 현지인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기존 계획보다 1000명 증원한 총 5000명의 미군을 임시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달 말을 목표로 완전 철군을 전개하다가 아프간으로 병력을 긴급히 다시 보내는 것이다. 전투 목적은 아니고 외교관과 민간인 대피 지원 임무에 속도를 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1조달러(약 1100조원)를 아프간에 쏟아부었다"며 "다섯 번째 대통령에게 전쟁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며 철군 의지를 재확인했다. 또 탈레반을 향해 "미국 요원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면 강력하게 군사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대사관은 대대적으로 철수하면서 직원들에게 민감한 서류와 전자제품를 파쇄하라고 지시했다.
아프간 주민들은 동요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올해 탈레반을 피해서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인을 40만명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80%는 여성과 아동이다.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1/08/79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