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아니 3분만 더!
정확히 오전 10시 27분 송정역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27분은 내가 예약했던 ktx(용산역 발) 발차 시각이다. 아슬아슬하게 놓치고만 바로 그 안타까운(?) 시간이다.
오늘은 서울로 손녀 담이를 보러 간다. 다른 때(항상 1시간 전쯤 집에서 출발한다)보다 20분 더 빨리 집을 나섰다. 오늘 서울행은 나 혼자이기에 시간에 더욱 민감했다. 장거리 외출은 대부분 남편과 같이하던 터라, 시간 개념 철저한 남편 덕분에 시간 실수가 거의 없다. 나 또한 남편을 만나 시간 약속에 믿음을 얻게 되기도 했다.
봄비가 내리고 있다.
목적지를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곧장 왔다.
'송정역에 너무 빨리 도착하겠는데~~'
행선지가 주로 학교인 급행 시내버스엔 개학 날이어선지 학생들로 붐볐다.
꺼내놓으면 별것이 아닌 것들을 등에 지고 손에 들고 우산까지 챙겨 드니 번잡스럽다. 자연스레 사람도 버스도 굼뜨다.
뒷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오늘 일정을 체크하며, 폰 속의 뉴스에 열중했다.
대광여고를 지나 백운동 로터리에 진입, 길게 늘어선 차량으로 신호대기가 몇 번 바뀌어도 버스는 움직임이 없다.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다. 다음 정거장은 남광주농협 정류소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인 남광주역까지만 가면 된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다. '여기서 내려 택시를 타야 하나?' 만약 여기서 택시를 탄다면 역시 백운동 체증이 문제다.
'어떡하지? 내려 말어?'
나의 우유부단함은 경우를 막론하고 고집이 세다. 다행히 백운동을 벗어나니 남광주농협까지 예전 속도대로 운행, 조마조마했던 가슴이 휴~ . 이 상태로라면 열차를 놓치지 않을 거 같았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 남광주역까지 신호만 잘 풀리면 문제가 없겠다.
남광주농협을 지나자 웬 일?! 또 정체다.
가슴이 콩닥콩닥, 이러다가 정말 열차를 못타는 거 아냐?
신호는 왜 그리 늦게 바뀌는지. 초조가 극에 달했다.
작년 창원에서 조카 결혼식 때 창원 버스를 놓친 기억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운전을 썩 좋아하지 않아 먼 거리 여행은 주로 대중교통을 선호하는 남편과 나는, 창원에서 행하는 조카결혼식에도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당일, 남편과 나는 창원행 버스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고속버스터미널행 시내버스가 전광판에 뜨지 않은 걸 보니 금방 지나갔으려니 생각하고 일단 다음 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워낙 넉넉한 시간을 두고 있었기에 의연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버스 도착이 좀 늦어, 택시를 탈까 말까 선택을 망설이고 있는데, 남편이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고속 터미널에 도착하면 5분 정도의 여유가 있겠다고 한다. 시내버스를 타기로 결정.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정차 때마다 시간을 들여다보며, 만약을 대비해 택시를 탈 시간, 정류소까지 체크해 갔다. 목적지 절반이나 왔을까 터미널 도착시간이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시간, 상황판단이 정확한 남편인지라 낭패는 없겠지, 믿었다.
그런데 터미널 정류소를 바로 앞에 두고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혼잡했다. 급기야 예도(禮道) man 남편이 체면을 불사하고 기사님께 다가가 하차를 간청, 정류소가 아닌데 승객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눈 뻔히 뜨고 도둑맞는 기분이랄까~
체념이 쉽게 되지 않은 남편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삼십육계 터미널을 향했다.
창원행 출발 버스 시간보다 2~3분 늦게 도착하니 이미 떠난 버스는 뒤태도 보이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어리석음을 자처한 우리 부부, 환불 수수료에 집까지의 택시비, 결국 자가운전으로 창원행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는데 두 번이나?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잠깐 놓친 판단으로 치른 댓가, 교훈이 적잖은데.
하여튼 신호만 잘 받쳐주면 열차 시간에 닿을 것 같다. 마지막 정거장 남광주역이 바로 코 앞이다. 웬걸 빨간 신호에 걸리고 만다. 이젠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탈 도리밖에 없다. 택시로 간대도 빠듯할 시간이다. 근데 택시는 바로 잡히려나. 정거장에서 내리자마자 횡단 보도를 건너 택시를 기다리는데, 건너편엔 빈 택시가 어찌 저리도 많은고.
발은 동동, 입에서는 절로 '어떡해 어떡해 에구에구...'
정신없이 안달하는 나를 힐끗 돌아보는 몇몇 행인.
1분의 속도가 이렇게 빠른 줄, 1분이 이렇게 소중한 줄, 금딱지에 비할 바인가.
'빵빵!'
꿈결인가?
아주 조심스럽게 내 등 뒤에서 울리는 경적. 구원의 차량에 허기진 사람 마냥 허겁지겁 올랐다.
'감사해요!'를 연발한다. 예술인 같은 반백에 온화한 말씨의 기사분을 뵈니 해결사를 만난 듯, 열차 출발시간을 말씀드리자 "가능해요, 지름길로 가도록 할게요."
구세주가 따로 있나. 세차게 요동치던 심장박동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백운동을 피해 샛길을 택해 가는데 방해꾼이 많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기사님이 불안한 어조로 네비를 켜시더니 열차 시간보다 3분 정도 늦게 도착하겠단다. 안 되겠다. 딸에게 전화를 해서 다음 시간 열차로 티켓팅을 하게 했다. 늦어도 1시까지는 담이를 내게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사위가 걱정됐다. 늦게 출근한 만큼 늦게 퇴근하는 사위에게 미안했다. 열차 출발 시간을 40여 분 늦추고 나니 풍랑이 지나간 듯 평정이 왔다.
기사님께도 여유롬을 건넸다.
외곽도로로 나오니 교통체증이 전혀 없다. 수월한 교통 상황으로 송정역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27분. 원래 출발하려던 열차 시각이지만 플랫폼까지 가는 시간을 더하면 3, 4분 지각이다. 평소 하잘것없이 여겼던 3, 4분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우두망찰 생각에 빠졌다.
우유부단, 결정장애로 초조 긴장을 자초한 내게 화가 났다.
효율 없는 경제관념, 절약을 신념처럼 맹신함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작은 것에 매달려 큰 것을 허실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삶이 참 초라해하게 느껴졌다.
이게 내 본 모습인걸,
나 다운 걸,
또 한 번 증명이 되니 너무 부끄러웠다.
5분 아니 3분의 시간 앞에 경건히 나를 세운다.
내게 깨우침을 준 고마운 시간,
앞으로 내 삶의 지렛대가 될 것이다.
5분 아니 3분만 더!
첫댓글 저는 표를 반대로 예매한적있어요.ㅠ
'난감하네~~'ㅠㅠ
저도 해봤지만, 안타까움에 덩달아 가슴 졸이며 어떡해,어떡해 했네요.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했을까요.
약속에 늦는걸 극도로 싫어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어그러질때가 있어요.
맘과 뜻대로 돼주지않는 세상인거죠.
놀란 가슴 토닥토닥 달래주세요~~
오래전에 일행과 용산을 가는데 기차 5 걸음 앞에서 놓친 적이 있었답니다. ㅋ ㅋ
기차를 놓쳐 본 사람은 공감 백배 입니다. 그 날 도로가 복잡했어요.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