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nam Oh
다시 막간을 이용하여
<자전적 고백> 시리즈을 올리는데 어느 신문사가 자기들의 신문에 그 글을 싣도록 해달라고 하고, 덧붙여 자기들 신문에 글이 나온 다음에 페북에 올려 주면 좋겠다 하여 지금 일단 멈추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막간을 이용하여 다른 종류의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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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님의 선생님인 다석 류영모 선생을 두고 “기독교 종교혁명가로 볼 것인가 기독교를 벗어난 사상가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어느 단톡방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솔직히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 거들라고 하여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그가 기독교로 시작했으니 그를 기독교인이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는 20대에 오산학교를 떠나면서 정통 기독교의 울타리를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혁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보다 기독교가 주는 전통적 신앙관을 더 이상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라 봅니다. 그의 사상의 지평이 그 울타리를 넘어서 확대된 것이지요. 하느님이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냈다고 하는 요3:16을 하느님이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그의 씨앗을 심으신 것이라고 한 그의 풀이만 보아도 그것이 기독교 성경절을 인용했지만 정통적 기독교 생각에서 벗어난 것이라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간직했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만은 기독교 울타리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는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대신 그 너머의 ‘속내’를 보려고 했습니다. 사람(l)이 땅(ㅡ)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십자가라는 해석, 올라간 예수를 내려오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라갈 생각을 해야 된다는 재림 해석, 대신 죄를 속해준다는 대속 대신에 스스로 죄를 없애야 한다는 자속 신앙 등은 기독교적이라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만 읽은 것이 아닙니다. 도덕경도 읽고 불경도 읽고 톨스토이도 읽었습니다. 무엇을 읽던 그는 그의 사유를 통과해서 얻은 결론을 나름대로 우리말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그를 기독교인으로 혹은 기독교를 혁명하려 한 기독교인이라 한정해서 규정하는 것은 어딘지 어패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제가 북미 학생들에게 세계종교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저보고 저의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너희들은 내 종교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어보면 불교를 가르칠 때는 불교인 같고, 노장을 가르칠 때는 도교인 같고, 기독교를 가르칠 때는 기독교인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잘 보았다. “나는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지만 지금 나의 종교는 일종의 ‘메타 종교적(meta-religious)’이다”하는 식으로 농담반진담반으로 대답합니다. 꿀벌이 어느 한 종류의 꽃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기 주위의 꽃들에서 꿀을 따듯 한다고 할까요. (꿀에도 유채꿀, 아까시아꿀 하는 것을 보면 벌들이 어느 한 종류의 꽃에서만 꿀을 따는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이 비유은 out입니다.^^)
저는 어쩌다가 특정 기독교 교파에 속한 집에서 자라 그 교인이 되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일찌감치 그 교파는 물론 기독교도 떠났고, 학위를 받고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는 그 교파나 기독교가 설정한 가르침의 울타리 안에서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진해서 교적 탈퇴를 시청해서 지금은 아무 종교에도 정식으로 속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저는 캐나다에서 퀘이커 모임에 자주 참석하고 밴쿠버 한인 캐나다연합교회에도 출석하여 그 교회 교인명부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LA 형님 댁을 방문하면 형님 따라 옛날 그 교파 교회에 가서 옛친구들도 만납니다. 연세대, 감신대, 한신대, 서울신대, 장신대 같은 신학교에 가서 강연도 하고, 불교 사찰에도 참석하고 거기서 설법도 하고 강연도 하고 참선도 하고 백팔배도 합니다. 천도교에 가서 여러 번 강연도 하고 같이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도 외우고 원불교 원음방송국에 가서 2년간 매주 방송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남녀 평등을 강조하고 복비는 것을 미신이라 하여 거부하는 성덕도라고 하는 이색적인 한국 종교 모임에 가서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본 그 종교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를 저 자신도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형편입니다. 아마 믿음이 좋다는 기독교인들은 제가 기독교인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이 믿는 식의 신을 믿지 않는다고 ‘무신론자’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불려도 저는 상관할 것 없습니다. (최근 캐나다 연합교회 Gretta Vosper라는 어느 여목사님은 스스로 자기를 ‘무신론자’라 공표했지만 교단에서는 이와 관계 없이 목회를 계속하게 허용했습니다.)
제가 <예수는 없다>를 써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믿는 ‘그런 예수는 없다’고 하면서 제가 새롭게 이해한 대로의 기독교를 전하려 한 것이었는데, 물론 의외의 환영을 받기도 했지만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에게서는 기독교인이 쓴 글이라 볼 수 없다고 배척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책에서 정통 근본주의 기독교의 신관, 기독론, 성서해석방법, 선교론 등을 모두 “애정을 가지고” 뒤집어엎으려 했습니다. 부제가 “기독교 뒤집어 읽기”이고 영어로 Reading Christianity Inside Out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꿈에도 혁명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자전적 고백’ 시리즈에 자세히 언급됩니다.)
이와 같은 저의 정체성을 이 토론방에 계시는 분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하실지 궁금합니다. 꼭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저를 어떻게 규정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자신은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죽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장례 주례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그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아하! 모임’ 사람들이 농담삼아 자기들이 맡아 하겠다고 했지만, 캐나다에서 죽으면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물론 캐나다에도 ‘길벗모임’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저를 종교적 무국적자나 다국적자 혹은 경계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히 다석 선생님과 저를 대조하다니. 그러나 다석 선생님이 기독교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저의 입장과 비슷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이름에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장미라고 하는 그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향기는 마찬가지.”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든 산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가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In the depth of every living religion there is a point at which
the religion itself loses its importance.)
- Paul Till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