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선사들 중에는 특출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황도오(748∼809)와 제자 용담숭신(782-865) 선사는 임제 황벽 조주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흙속에 감추어진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두 스님의 이야기는 <조당집>에 실려 있는데, 오늘 우리 공부하는 이들에게 삶과 수행에 대해 다시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용담스님은 출가 전에는 집안 대대로 떡을 만들어 파는 떡장수였습니다. 이름이 신(信)인 이 떡장수의 이웃 마을 <천황>에는 도오스님이 주석하고 있었습니다. 천황도오스님은 천하의 도인으로 알려졌지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참선만 할 뿐, 대중에게 일체 법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떡장수 신은 공덕을 짓기 위해 끼니 때마다 도오스님에게 호떡 10개를 공양했습니다. 이렇게 몇 해를 공양했는데, 공양할 때마다 도오선사는 떡 한 개를 신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날마다 이렇게 습관처럼 떡을 주고 받았는데, 하루는 신에게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신이 도오선사에게 물었다.
“제가 준 떡을 왜 도로 돌려주십니까?"
그러자 선사가 대답했다.
“네가 가져온 것을 다시 네게 돌려주는 데 무슨 잘못이 있는가?"
- 조당록 5권 용담편 동국역경원 (월운스님 역) 참조
- 아래에 인용한 글은 모두 같은 출처입니다.
도오선사의 말에 떡장수 신은 가슴이 뜨끔해졌습니다. 자기가 만든 호떡을 보시해서 공덕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 떡이 다시 자기에게로 되돌아왔으니, 주고 받는 것이 끊어진 것입니다. 떡장수 신은 갑자기 앞이 막막해진 것은 아닐까요? 마침내 떡장수는 출가를 해서 도오선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도오선사는 신에게 숭신(崇信)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네가 가져온 것을 네게 돌려주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되묻는 도오선사의 말은 참으로 도오선사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부처에게서 나온 것은 부처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스승에게서 나온 것은 스승에게 모두 돌려주어야 합니다. 도오선사는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는 본래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도오선사의 말처럼 일체법을 온 곳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부처의 말을 비단에 새겨 넣어 팔아 재물을 모으고, 스승의 법문을 자기 살림인양 쓰면서 명예를 구하는 수행자가 적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좋은 제자로 알려질 수는 있어도, 자기의 성품을 밝히는 공부자리에서는 틀린 일입니다. 남의 살림을 익히면 박학하다고 칭송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해탈의 길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부처와 스승에게 받은 것을 모두 돌려주고, 주고 받는 것이 끊어져야 자기를 위한 진정한 공부가 시작됩니다.
숭신스님은 도오선사를 여러 해 모셨지만, 스승이 말이 없기는 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스승을 시봉한지 몇 해가 지난 뒤에, 마침내 숭신은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제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니 소원은 풀었습니다. 다만, 아직 스님으로부터 심요(心要)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제게 심요를 가르쳐 주십시오.”
도오선사가 대답했다.
“네가 내게로 온 이래, 일찍이 너에게 심요를 보여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디가 스님께서 저에게 심요를 보여주신 곳입니까?”
“네가 차를 가져오면 나는 차를 마시고, 네가 밥을 가져오면 나는 밥을 먹고, 네가 인사를 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으니, 어디가 그대에게 심요를 보이지 않은 곳인가?”
용담스님이 고개를 숙이고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천황이 말했다.
“보려면 당장에 봐야지 (견즉직하 見卽直下), 생각하려들면 어긋난다.”
이 말을 듣자, 숭신이 문득 그 참 뜻을 깨달았다.
도오선사의 한 마디에 숭신스님의 눈이 열렸습니다.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의 앞 소식을 본 것입니다. 숭신스님은 지금 얻은 이 깨달음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가야(保任) 처음부터 끝까지 걱정이 없겠습니까?”
천황선사가 대답했다.
“성품에 맡겨 무심하게 다니며, 인연 따라 걸림없이 지낼지언정 (임성소요 수연방광 任性逍遙 隨緣放曠), 선(禪)에 안주하거나 정(定)을 익히지 말라 (불요안선습정 不要安禪習定). 성품은 본래 거리낌이 없으니, 귀를 막거나 눈을 감을 필요도 없다. 신령한 광채가 환하게 빛나지만 어리석은 듯 어눌한 듯하여, 행(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지 말라. 오직 범부의 마음을 다해 그칠지언정, 별달리 성스러운 견해가 없다 (단진범심 별무성해 但盡凡心 別無聖解). 그대가 능히 그럴 수 있다면 무슨 근심 될 일이 있으리오.”
숭신스님은 스승 도오로 부터 선(禪)의 심요(心要)를 얻고 나서는, 매사에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조당집>은 스님의 경지를, 마치 객지에 떠돌던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와 다시는 집을 나설 생각을 그만둔 것과도 같고, 가난한 이가 보배 창고를 차지하여 부족하거나 더 이상 구하는 바가 없게 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스승 도오는 범부의 마음을 다해 그치면 그만이지, 다시 지키거나 얻어야 할 견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숭신스님은 그후 용담(龍潭)이라는 지방에 주석하여, 세상에서는 '용담선사'라고 불렀습니다.
용담선사는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세상사람들이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선에 대한 날카로운 경지를 드러낸 적도 없어서 수행자들이 변변히 물을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스님의 삶과 수행은, 말할 것도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낸 스승 천황도오선사에게서 유래한 것입니다. 용담선사는 선(禪)을 닦지도 않고, 고요함(定)을 익히지도 않으며, 어리석은 듯 어눌하여, 귀신도 그 흔적을 찾지 못합니다. 차 마시고 밥을 먹는 일상의 삶이 그대로 대기대용(大機大用)입니다. 노자는 일찍이 '수레를 잘 모는 자는 길에 자취를 남기지 않아 남이 종적을 헤아릴 수 없으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남들이 시비를 삼을 티를 남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취가 없는 수행속에는 소박하고 고요한 평화가 흐릅니다. <조당집>에는 마지막으로 용담선사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어떤 스님이 용담선사에게 물었다.
"상투 속의 여의주(如意珠: 자기의 성품)를 누가 얻습니까?"
"품에 넣고 애지중지 하지 않는 이가 얻는다 (불상완자득 不賞翫者得)"
"여의주를 얻으면 어디에다 둡니까?"
"장소가 마련되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을 끌어들일 방편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상한 게송이 뜨고 몽둥이와 할이 난무하는 것은 얼굴을 찌프리게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법을 전해야 하는 입장을 감안하면 한 쪽 눈을 감고 보아야 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주위를 보면, 수행은 점차 하나의 형식이 되고 있습니다. 수행을 할수록 가족과 멀어지고, 세상과 담을 쌓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행자의 권위의식도 문제입니다. 이 모두 여의주를 따로 보관하려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황도오의 스승 석두희천 선사는 풀로 엮은 자신의 암자가 비록 작지만, 누워서 사지를 뻗으면 온 법계에 꽉 찬다고 노래했습니다. 여의주를 보관하려면 하늘과 땅이 오히려 좁습니다. 품에 넣고 애지중지 하는 자는 여의주를 얻을 수 없다고 한 용담선사의 말은 수행과 삶의 장벽을 단번에 부수어 버립니다. 천황과 용담선사의 행적은 밥 하고 청소하며 회사 다니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여운 2016.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