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수고길쌈 끝났느니 강강수월래
월래대로 놀아보세 강강수월래
래년에도 풍년들게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옮긴 글] 강강술래(강강수월래)
추석을 전후해서 부녀자들이 노래와 함께 추어 온 군무(群舞). 기원은, 일설에는 이순신 장군이 군졸이 모자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마을 부녀자들을 남장시켜 우수영 ‘옥매산’을 노래를 부르면서 빙빙 돌게 해서 이 광경을 멀리서 바라본 왜군이 장군에게 수만 병력이 있는 줄 알고 겁을 먹고 후퇴했다 한다. (임동권: <한국의 민요>)
호남ㆍ영남지방에서 유행된 원무(圓舞) 형식의 민속무용. 매년 정월 대보름이나 8월 한가윗날에 여자들이 일정한 곳에 모여 손을 잡고 둘러서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며 노는 놀음이다.
이 유희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순신(李舜臣)이 왜군과 해전(海戰)을 하였을 때 적군에게 위세를 보이고 적군이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곳곳마다 불을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국난(國難)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심(民心)을 통일화는 수박에 없다 하여 이 노래를 지어서 처녀, 또는 소부(少婦)로 하여금 부르게 하였다는 설이 있다.
‘강강(江江)’의 ‘강’은 ‘주위(周圍)ㆍ원(圓)’이라는 호남지방의 방언(方言)이며, ‘술래’는 ‘순라(巡邏)’라는 말로서 경계하는 뜻으로 당시의 구호였다. 4ㆍ4조로 된 노래로 특히 미운(尾韻)에 묘미가 있다. - 이홍직 : <국사대사전>(1975) -
전라남도 남해안 지방 부녀자의 특유한 유희(遊戱)이다, 추석날 밤에 곱게 단장한 마을 부녀자들은 수십 명씩 모요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어노는 전래의 놀이이다.
남자는 전혀 관여할 수 없는 강강술래는 부인들 또는 소녀끼리 따로 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는 젊은 아낙네와 처녀가 함께 섞여 놀기도 한다.
목청 좋은 사람이 원의 중앙에 들어가거나 맨 앞에 서서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수월래’ 하고 후렴을 하면서 원무(圓舞)를 한다.
이때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리게 춤을 추다가 차츰 빨라져서 중머리ㆍ중중머리ㆍ자진머리로 변하고 선도자의 능력에 따라 변화 있는 춤으로 발전하다가 힘이 지치면 끝난다.
이 유희의 유래는 충무공이 임진왜란 때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지었다고 하며, ‘강강수월래는 ‘强羌水越來’ 또는 ‘强羌隨月來’라 하기도 하나, 진가(眞假)는 모르겠다.
여기에 재미있는 것은 전라도의 ‘강강수월래’와 경상도의 ‘캐지나칭칭나네’는 동교이색이라는 점이다.
‘캐지나칭칭나네’는 ‘倭將淸正오네’라고 하여, 역시 임진왜란에 근거를 둔 것도 이상하지만, 그것은 지엽(枝葉) 문제로 하고, 다 같은 부락 무용인 것이 주목할 점이다.
다만 ‘강강수월래’는 여자의 것이요, ‘캐지나칭칭나네’는 남자의 것임이 다르다.
그리고 전자(前者)는 아직 일동의 율동유희(律動遊戱)의 테두리에 있고, 후자(後者)는 벌써 무용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 다르다. - 임동권 외 : <한국풍속지>(1972) -
강강술래는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부녀자들의 집단놀이로 주로 전라남도 해안지방에서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행해졌다.
중요무형문화재 8호.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우리의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의병술로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을 돌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원시시대부터 1년 중 가장 달이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쪽 하늘에 둥근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여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며 둥근 원을 그려나간다.
목청 좋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 맨 앞에 서서 메기는 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하며 받는 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늦은 가락으로 나아가다 노랫소리도 빨라지고 춤도 빨라져서 나중에는 뛰는 것처럼 동작이 빨라진다.
일반적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원무(圓舞)를 추다가 흥이 나면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가 춤을 추는 남생이놀이를 비롯해서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등으로 변화를 주었다.
강강술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 구성지고 활기찬 한마당을 이룬다.
놀이는 늦은강강술래로 시작하여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변화하면서 발놀림이 빨라지고 흥이 절정에 이르는데, 이중 가장 아름답고 여성놀이다운 멋이 깃들여 있는 것이 늦은강강술래이고, 중강강술래는 해남과 진도지방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강강술래는 여성의 놀이가 적었던 때에 활달한 여성의 기상을 보여준 민속놀이의 하나로 민족정서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문화재청)
전라도 지방에 전하는 민속놀이. 음력 8월 한가윗날 달 밝은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다.
목청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선창을 부르면, 일동은 합창으로 후렴을 부르며 춤춘다.
【유래】임란 때 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할 때 적의 군사에게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함과 왜군이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전지(戰地) 부근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 지대의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노래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싸움에 끝난 후 부녀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 덥도 춥도 않은 한가위를 택해 연례행사로 행했다.
【어원】한자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가 아니라, 우리말의 ‘강강’의 ‘강’은 ‘주위ㆍ원’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다. ‘술래’는 한자어의 ‘순라(巡邏)’에서 온 말로, ‘경계하라’라는 뜻이다. ‘주위를 경계하라’라는 당시의 구호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순래’가 ‘수월래’로 들리는 것은 진양조로 목청을 늘여 뺄 때 ‘수월래’로 들리기 때문이다. (최상수)
호남ㆍ영남 중에서 특히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되는 ‘춤노래(무용가)’의 하나. 달이 휘영청 밝은 정월 대보름날이나 8월 한가윗날에 마을 부녀자들 여럿이 모여, 서로 손을 잡고 원형으로 둘러서서 강강술래의 노랫말을 되풀이하며, 떼춤(群舞)을 추며 돌아간다. 처음에는 중중모리장단으로 슬슬 나가다가 나중에는 자진굿거리의 빠른 속도로 춤과 노래가 바뀐다.
이 민속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적군에게 위세를 보이고 적군이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곳곳에 불을 놓고 이 춤을 추게 했다는 설로서 목포․남해도를 발생지로 본다. ‘강강’을 ‘강강(江江)’이라 보고 또 ‘강’은 주위, 원(圓)이라는 호남 지방의 방언이다.
둘째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통일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이 노래를 지어 부녀자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다는 설이 있으며 역시 목포와 남해도를 발생지로 본다.
세 번째는, 고려시대에 진주의 어느 산골의 농부 김수월이 진주 목사에게 사랑하는 아내 세루홰(沙里花)를 빼앗겨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했는데, 그의 원혼(寃魂)을 위로하기 위한 굿에서 발생했다는 설로서, 진주를 발생지로 본다. ‘술래’는 ‘순라(巡邏)’라는 말로서 경계라는 뜻의 군호라고도 하고, 또 ‘강강’이 굿할 때의 징소리인 ‘꽝꽝’에의 변음이며, ‘수월래’는 ‘수월’의 변음이라고 한다. 강강술래가 강강수월래로 기록되어 온 것은 이 곡이 가락을 길게 빼어 부를 때 진양조가 되므로, ‘술래’가 ‘수월래’로 들린 것이라는 설이 이론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무 외에 고사리꺾기ㆍ기와밟기ㆍ쥐잡기놀이 등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사설은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고,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 붙이는 수도 있다.
그 기본형은 다음과 같다.
1. 산아 산아 추영산아 (후렴) 강강술래(수월래)
2. 높이 떴다 백두산아
3. 잎이 피면 청산이오
4. 꽃이 피면 화산(花山)이요
5. 청산, 화산 넘어가면 우리 부모 보련마는
6. 남의 부모 명자씨는 책장마다 실렸는고
7. 해는 지고 달 떠온다
8. 하늘에는 베틀놓고
9. 구름잡아 잉어(잉아) 걸고
10. 달은 잡아 북 만들고
11. 별은 잡아 무늬 놓고
l2. 째깍째깍 잘도 짠다
13. 그 베 짜서 무엇하나
14. 우리 오빠 장가갈제
15. 가마 휘장 두를라네
16. 하늘에는 별이 총총
17. 대밭에는 대가총총.
영남ㆍ호남 해안지방과 도서지방에 널리 분포된 민속놀이 또는 민요. ‘강강수월래’라고도 한다.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목포ㆍ무안ㆍ해남ㆍ영광ㆍ장흥ㆍ순천ㆍ화순 등 해안일대와 완도ㆍ진도와 같은 섬에서 성행하였다.
정월 대보름, 8월 한가위와 같은 연중행사 때, 달 밝은 밤 부녀자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과 노래를 함께 하는 강강술래는 소리춤의 하나로 원무형태(圓舞形態)의 춤이다.
세시풍속과 관련된 점으로 미루어 그 발생을 조선시대로 짐작할 수 있다.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강강수월래(江江水越來)라 하여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놀이로 창안했다고도 하고, 마한 때부터 전승된 가장 오래된 민속춤의 하나라고도 한다.
또한 달을 맞이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의식에서 나왔다고도 하며, 한자어로 의미를 붙여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에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는 이야기도 있다.
강강술래는 흥(興)과 사기(士氣)를 돋우는 춤으로, 춤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고 여흥으로 다른 소리춤과 놀이 등을 즐긴다. 놀이의 종류는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좌수영 일대에 전승ㆍ연희되는 놀이로는 늦은 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남생이놀이), 고사리꺾자(고사리꺽기), 청어엮자(청어엮기), 청어풀자(청어풀기), 기와밟기, 문열어라, 덕석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가마등, 도굿대당기기, 수건찾기, 품고동, 봉사놀이 등이 있다.
이 같은 여흥놀이에는 담넘기ㆍ덕석몰이ㆍ고사리꺾자ㆍ여물썰기ㆍ기와밟기와 같은 농경모의(農耕模擬)의 춤과 남생아 놀아라, 바늘귀 끼기와 같은 성모의(性模擬)의 춤, 청어엮자와 같은 풍어모의(豊漁模擬)의 춤이 있다.
문지기놀이ㆍ쥔쥐새끼놀이 등의 군사놀이와 노르시름ㆍ행기돌기ㆍ콩동방동과 같은 체력단련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강강술래를 비롯해 여흥놀이로서 소리춤과 놀이를 하면서 밤새도록 논다.
강강술래의 편성은 선도자(先導者)의 앞소리와 춤꾼들의 받는 소리가 융합된 응답식 소리로 연희하거나, 돌림소리꾼의 앞소리와 춤꾼들의 받는 소리로 연희하는 수가 있으며 구성은 원무(圓舞)나 나선무(螺旋舞)로 진행된다.
이밖의 소리품이나 놀이는 원형을 비롯하여 1렬행렬형(一列行列型)ㆍ2열대립형ㆍ개인놀이형이 있다.
강강술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그 춤의 성격이 규정된다.
강강술래가 남성 유혹, 여성의 한(恨), 달과의 대화, 풍자, 효도사상, 인정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달에 대한 동경에 있다. 율동적인 면에서는 활달하고 전투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모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강강술래는 떠는 목, 평으로 내리는 목, 꺾는 목의 3음음계로 이루어진 계면조이다.
이 놀이는 진양조로 하는 ‘느린(늦은) 강강술래소리’ 또는 ‘진강강술래’에 맞추어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돈다.
이때 진양조 선소리(진도지방에서는 설소리라 함)로 매기고 '강강술래'라고 받는 소리를 한다. 중모리조로 ‘중강강술래소리’를 하면서 손과 발을 맞추어 원을 그리며 걸어간다.
이어서 자진모리조로 ‘자진강강술래소리’를 부르면서 손과 발을 힘차게 구르며 뛰고,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 가운데 ‘중강강술래’는 진도지방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승전한 중의 한 전투에서 왜적을 물리친 날 저녁 병사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장군은 배마다 많은 술을 배급했다.
“오늘 저녁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모두 마시고 즐겨라.
내가 노래를 지어 가르쳐 줄 터이니 밤새도록 칼날로 뱃전을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르고 놀면 재미있을 것이다.”
다른 전투에서는 승전한 뒤에 긴장이 풀릴까 해서 더욱 엄하게 통솔하였는데 뜻밖에도 너그럽게 주연을 베푸는 까닭을 병사들은 알 수 없었지만, 우선 기쁜 나머지 앞뒤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낮 전투에서 참패한 왜구들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기습을 감행하여 설욕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 휘하의 병사들이 주연을 벌이자 그들은 쾌재를 불렀다. 때마침 달은 밝고 안개는 짙은지라 하늘이 도우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왜구들은 야습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순신 휘하의 병사들은 마냥 술을 들이키며 ‘강강수월래(강한 오랑캐들이 물을 건너 온다.强强水越來)’를 부르며 후렴을 되풀이하면서 흥겹게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왜구들은 알몸에 칼만을 차고 헤엄쳐 이순신 장군 휘하의 선단으로 다가갔다.
왜구들은 일당백의 용기로 ‘저토록 술에 취해 먹고 떠드니 무슨 겨를에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랴’하고 접근했다.
그러나 왜구들은 한 사람도 승선하지 못했다.
새벽녘에야 놀이를 끝낸 병사들은 해가 중천에 오른 뒤에야 머리를 흔들며 기상했다.
군사들은 뱃전에 잘려져 남아 있는 손가락들이며, 손목, 배 주위에 떠다니는 많은 왜구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이때, 이순신이 병사들에게 부르게 한 ‘강강수월래’가 구전되어 오늘날 전라도 지방에서 널리 불려지고 있다.
이 노래의 ‘강강’은 악기를 두드리는 소리의 ‘의성(擬聲)’으로 ‘수월래’는 ‘술래’라는 말을 길게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수호신처럼 받들어지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두고 이같은 전설로 엮어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부녀들이 파수(把守)를 서서 노래를 하며 왜구의 침입을 경고하였다고도 한다.
우리가 오늘날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전(水戰)이면 육지에서 상당한 거리를 둔 해중(海中)에서 벌어진 전투인데 그 전투 끝에 지금도 뱃사람들의 금기 중의 하나인 아녀자들의 노래를 해중(海中)에서 불렀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해전에 나가는 병선(兵船)에 당장에 전군이 마실 수 있는 양의 술이 하적돼 있었다는 점, 달이 밝은 데도 안개가 자욱하여 야습에 마땅하였다는 기후 조건은 육연풍(陸軟風)이 연안에서 자주 일 수 있는 한절(寒節)에 어떻게 알몸에 칼을 차고 멀리 떨어진 곳에 정박한 베에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을까 하는 따위의 의문을 갖게 한다.
- [독서신문](1971. 11. 28) -
액면 7원권의 강강술래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 특유의 민속 무용으로 밝은 보름달이 솟는 한가윗날 밤이면 처녀들이 넓은 마당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그 박자에 맞추어 원무(圓舞)를 추는 흥겨운 유희이다.
강강술래의 가사(歌詞)는 지방과 부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차이가 있으며 목청 좋은 여자가 가운데 서서 선창(先唱)하면 놀이를 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후창(後唱)을 하는데 처음에는 느린 박자로 시작하여 점점 빨라진다.
이 유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해안에 상륙하는 왜병을 감시하고 적에게 군세(軍勢)의 강함을 보이려고 밤이면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위를 돌면서 강강술래를 부르게 한데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발행일 1987.9.1
추석 강강술래
이 우표는 원래 "민속시리즈 네번째 묶음"의 제목을 하고 발행된 우표다.
추석의 대표적인 민속 놀이인 "강강술래"를 디자인하여 발행하였다.
민속시리즈 추석우표1
민속시리즈 추석우표2
민속시리즈 추석우표3
민속시리즈 추석우표4
이 우표는 "연쇄 우표"로 발행되었는데, 연쇄 우표란 "하나의 그림을 연속하여" 나타낸 우표를 말한다.
음력 8월15일 추석 풍속으로 널뛰기,제기차기,강강술래,윷놀이,씨름 등의 놀이를 하며,보름달에 소원 빌기를 하는데 강강술래는 전라남도에서 전하는 민속놀이로,해석하면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서 온다 "는 뜻이라고 한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이며, 2009년9월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
주로 해남,무안,진도,완도, 등지에서 음력 8월15일 밤에 예쁘게 차려입은 부녀자들이 공터에 모여 손을 잡고 둥근 원을 만들어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는 놀이로,원무를 도는 도중에 민속 놀이도 곁들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우리의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남장 차림을 한 부녀자가 옥매산을 돌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원시시대부터 1년 중 가장 달이 가장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에서 비록된 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합니다
발행일2002. 08. 01.
전남-강강술래
2002. 8. 2. ~ 8. 11.까지 서울 COEX에서 개최한 필라코리아2002세계우표전시회를 맞이하여 지방의 국제적 상호관계를 강화시키고 우표전시회의 범국민적인 축제를 도모하기 위해 16개 광역단체와 연계하여 각 지방 자치단체의 전통문화와 개성을 대표하는 유무형 문화재를 특별우표로 발행했다.
그충에 한종으로 전남 강강술래다.
8월 한가위에 부녀자들이 원형으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둥그렇게 도는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출처] [옮긴 글] 강강술래(강강수월래)|작성자 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