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대학 성적평가, 학생들 고민
일부 대학 비대면 절대평가 방식 고수…상대평가 학생들 “취업에 불리” 시위도
국내 대학들이 2학기 대면수업으로 대부분 돌아왔지만 비대면수업 당시의 성적 산출방식과 대면수업 상대평가 방식이 혼재, 학생들이 자교의 산출방식이 취업에 불리하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숭실대학교에 재학중인 이모(23)씨는 “학교에서 왜 성적 기준을 굳이 상대평가로 엄격하게 잡아 학생들의 미래를 막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씨는 “학교가 서울시내 다른 대학들보다 A+B학점 비율을 낮게 주고 있다”며 총학생회가 주도한 학내 시위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씨는 “벽에 대자보도 붙이고 총학을 포함해 단과대 학생회, 학과 학생회들이 중앙광장에서 판넬을 들고 서 있었다”며 “총장 퇴근 시간대에 맞춰 총장실이 있는 베어드 홀 앞에서 돌아가며 마이크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총장실 앞 복도에 학생들이 다 같이 앉아 시위하기도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이같은 학생들의 불만은 코로나19 유행이 점차 사그라들며 대부분의 대학이 올 2학기부터 ‘대면 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성적 산출 방식은 비대면수업 당시의 방식을 유지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혼재한 데서 비롯됐다.
대다수 대학은 완화된 상대평가 혹은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상대평가를 택했지만, 여전히 일부 대학은 절대평가를 유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상대평가는 최고 등급인 A학점 비율이 제한되지만 절대평가는 그런 면에서 훨씬 유연한 제도이다. 이에 대학생들은 ‘들쑥날쑥’ 성적평가 기준이 취업 시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숭실대 학생회는 지난해 시위에도 학교측이 상대평가 제도를 유지해가자 지난 8월 ‘A 비율은 35%에서 40%로, A+B 비율은 75%에서 80%로 완화해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성적 완화 학칙 개정 요구안’을 본교에 냈다.
이씨는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 고위직 간부들은 현재 각 대학교의 성적 평가 기준이 어떤지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라며 “학생들의 학점은 취업과 연관되기 때문에 우리 학교도 절대평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면 강의 체제 하에서도 상대평가 중심의 평가 방식을 유지했던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한모(22·여)씨는 “우리 학교는 교수 재량으로 성적평가방식이 결정돼 다수의 수업이 상대평가로 학생들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학점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해진 상황에서 상대평가는 다른 학교 학생과의 취업경쟁을 생각하면 부담이 느껴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씨 역시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도입한 회사들은 인사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 대학의 성적 산출 방식을 일일이 다 알지 못하기에 성적 그 자체만 가지고 평가할 것”이라며 “상대평가 체제하에 점수를 받는 일부 대학생들에게는 불리한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역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원도 춘천의 한림대학교 역시 전면 대면 수업으로 강의 방식을 전환하면서 완화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철회했다. 이번 학기는 코로나19 이전 상대평가 기준을 적용, 상위 35% 이내의 학생들만 A학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 중인 재학생 이모(24)씨는 “절대평가를 유지하고 있는 타 대학교들은 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한림대도 이전의 평가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대학 교무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규정을 만들 때 교육부에서 발행한 고등교육법을 따른다”며 “현재 운영 중인 상대평가 역시 고등교육법에 따라 균형을 기해 만든 학칙”이라고 말했다. “취업에 불리할 것”이라는 학생들의 의견을 전하자, 이 관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누구나 다같이 성적을 잘 받게 될 경우 오히려 취업 시장에서 더 불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아닌, ‘완화된 상대평가’ 시행을 유지하는 학교들도 있다. 서울여대의 경우 이번 학기부터 대면 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최대 50%까지 A학점을 부여하는 ‘완화된 상대평가’를 채택했다. 이에 대해 재학생 김모(24·여)씨는 “현재 평가 방식에 만족한다”며 “우리만 다른 학교보다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면 졸업 후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학점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교의 완화된 상대평가에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한편, 학점이 과거만큼 취업 시장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상대평가 제도도 상관없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충북대학교는 이번 학기부터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수업에서 A학점을 30% 이내로 부여하는 상대평가를 시행했다. 취업 준비 중인 충북대 재학생 정모(24)씨는 “당연히 더 좋은 학점을 받으면 좋겠지만 원래대로 학점을 부여받는 게 불만족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씨는 그 이유로, “요즘 수치화된 학점보다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취업 강연에서 많이 듣는데 이제 학점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학점의 중요성이 내려간 만큼 상대평가로 인한 불이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전민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