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꽂도 어울리게
이계양(품자주자 시민들 공동대표,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어울리다"는 서로 잘 맞거나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특히 사람끼리 서로 성격이나 취향이 잘 맞을 때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말은 서로의 상황과 처지 등이 맞아 인정과 존중으로 함께 지내며 같은 소속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꽃밭에서“(어효선 시, 권길상 작곡)라는 동요가 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채송화, 복숭아꽃이 한창인 꽃밭에 나팔꽃이 ‘어울리게’ 피어 있다. 한 가지 꽃만 피어 있어도 아름다울 텐데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꽃이 피어 어울리는 꽃밭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시인이 일부러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채송화와 봉숭아 그리고 나팔꽃은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고 한다. 채송화는 남미가 원산지고, 봉숭아는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 등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란다. 또 나팔꽃은 열대 및 아열대 지역 특히 중앙아메리카(멕시코 등)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혹은 인도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보기도 함)로 알려져 있다. 남미와 동남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등 기후와 토양과 생육 고향(환경)이 전혀 다른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들이 한 꽃밭에서 서로 어울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 동거의 어울림에 그치지 않는다. 채송화의 꽃말은 '가련함, 순진, 천진난만'이고, 봉숭아 꽃말은 '나를 만지지 마세요'다. 또 나팔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덧없는 사랑’, ‘기쁜 소식’이다. 각각 꽃말의 의미가 서로 이질적이지만 한데 어울리어 한 꽃밭에서 어울려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꽃밭(자연)의 이치는 이렇듯 본질적 바탕이 달라도 인정 존중하며 어울려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그런데 세상의 이치는 이와 정반대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끔찍하다.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 버린 우리 사회의 안 어울림. 어쩌면 일부러 안 어울리려고 하는 것 같다. 여러 해 전 교육부의 정책기획관이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 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라고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가르고 무시하고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12.3 비상계엄 이후로 더 극렬하게 극대화되고 있다. 인간이라는 본질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존중은 언감생심이다.
120년 전 을사늑약을 맺은 후 수십 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인들을 가르고 무시하고 차별함으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게 하여 공동체의 해체를 부추겨 왔다. 또 80년 전 해방과 함께 찬탁과 반탁 등 좌우로 갈려 6.25 전쟁을 치렀다. 그 후로 남북으로 갈리고 이념이 갈리고 지역이 갈리고 계층과 계급이 갈리고 학벌이 갈리고 성별이 갈리고……. 끝없이 차별과 무시와 혐오와 배제와 소외 등으로 분화되어 극단을 향해 치달았다. 급기야 좌파 척결을 이유로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좌우 대결의 끝판왕인 줄 알았는데 12.3 계엄 이후로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 헌법재판관까지 좌우로 갈라놓고 죽일 듯한 적대와 혐오로 이판사판 이전투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함께 나서서 쳐부수자’며 대한민국 공동체를 붕괴시키려고 목숨을 건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팽배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 체제, 패권주의적 질서 속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제 정세도 힘겨운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반도 국가인 대한민국 스스로가 서로 어울리기는커녕 주먹을 쥐고 으르대며 독기를 드러내는 일이 치떨리게 무섭고 싫다.
태어난 지역이 다르고 속성도 다르지만 함께 어울려 핀 꽃밭은 풍성한 아름다움 자체이다. 꽃밭의 어울림이야말로 혐오와 적대의 격투장이 된 이 시대의 반면교사가 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탄핵을 넘어 새로운 한민족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역이나 혈연 공동체를 넘어서야 한다. 국적, 성별, 동성애, 트랜스젠더, 장애, 학벌, 나이, 질병, 실직, 무직을 넘어서 어울려야 한다. 야유, 배제, 천대, 무시, 차별, 혐오, 소외, 적대의 강을 건너야 한다. 다시 인정과 존중의 공동체로 어울려야 한다. 오는 5월엔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이 어울려 핀 ”꽃밭에서“ 온 국민이 한데 ‘나팔꽃도 어울리게’를 목청껏 노래하고 싶다.(광주매일 칼럼 2025.3.10.)
첫댓글 독재 파시즘이 무섭고 싫습니다.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어쩌면 저리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합니까? 아니 숨쉬듯이 한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우리나라 좋은나라가 어서 올바른 길을 찾아서 으르렁 대지않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