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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학 권두칼럼>
소중한 만남과 인연(因緣)의 끈
- ‘따뜻한 감성의 느낌표(!)’ 박경현 교수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선으로 가는길' 편집 고문)
오랜 날 평자는 그 나름으로 일관성 있게 “우리의 소중한 삶에 있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운명적임”을 역설하며 불교의 「同種善根說」에서 최대의 인연이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임을 시사(示唆)하였다. 그 같은 점에서 엊그제도 인천의 연안문학회 김의중 회장이 지역 문인과의 교류를 위해 필자를 찾아왔지만, 여기서 1945년 황해도 연백태생으로 꿈 많은 청소년 시절에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와의 인연의 매듭을 풀지 못하여 80을 바라보는 황혼의 시간대에서 짐짓 지나친 세월을 뒤돌아보며 「소중한 만남과 인연(因緣)의 끈 - ‘따뜻한 감성의 느낌표(!)’ 박경현 교수」 이 같은 전제는 결코 우연일 수 없다. 까닭에 소중한 삶의 일상에서 그 자신은 종종 이해인 수녀의 시편인 <듣게 하소서>를 낮은 음조로 즐겨 읊조리며 흥얼거리는 편이다.
언어의 공해 속에서도/얼굴을 찡그리지 않고/겸손히 듣고 또 듣는/들어서 지혜 를 깨치는/삶의 구도자 되게 하소서.//
-<듣게 하소서>에서
특히 『지도자의 화법』의 저자 박경현 시인이며 수필가의 소탈한 웃음을 떠올리면 감사하게도 누군가는 일순 평상심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 ‘민족시인 만해(萬海)’가 삶의 잠언(箴言)으로 일깨워준 시편은 이 같은 일면에서 못내 유의미하다.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그 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 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인연설 2>에서
이처럼 인용한 시편에서 확증되듯 그렇게 무려 41년의 짧지 않은 세월을 이 땅의 교육 현장에서 미래의 꿈나무 육성에 투신한 박경현 교수의 심리적 현상은 놀랍게도 필자와 그 삶의 동일화 차원에서 유무의 변증법에 연계되고 있음도 결코 소홀하게 지나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차제에 파스칼이 “진정한 도덕가는 도덕을 싫어한다.”라는 가르침과도 무관치 아니하지만, 그간에 평자가 줄곧 역설하였듯 영국의 사실주의자 필립 라아킨이 “시란 맑은 정신의 문제,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는 시론과 전통적 질료를 보편적 정서와 소우주의 표징으로 접합시켜 삶의 중량감을 안겨줄 푸른 생명감과 담백한 시격(詩格)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감 없이 수긍한 점이다. 또 무엇보다 소중한 삶에 있어 ‘살아있는 자만이 춤출 수 있기’에 살아 숨 쉬는 한순간은 지극히 감동과 감사의 시간대이다. 따라서 죽음과 삶의 엄숙한 교차이며 순환과 재생의 과정임을 상징하는 빛남과 눈부심의 징표인 꽃(花)과 같이 생명현상에 기인한 일련의 사유를 함축적으로 발화시킨 코아(岩芯)에 관해서도 지극히 유념할 바다.
모름지기 진정한 내면의식의 성숙을 위하여 뷔퐁(L'aiguille de Buffon)이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고 지적했듯이 최소한 시 쓰기에도 열중하며 분망한 삶의 여정에서 진정한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정신풍경에 담아 놓은 따뜻한 감성을 신선한 충격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그 자신이 못내 자연 친화적인 인간성의 회복이야말로 엄숙한 생명 경외의 존재감으로 빛나기에 새삼 경이롭다. 비록 필자의 모교로 현재 가톨릭관동대학에서 1979-1980년 국어교육학과 재임 중 1년 남짓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1980년 국립경찰대학 개교로 박경헌 교수가 이직을 서두른 관계로 그 아쉬움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또 한편 인생의 황혼길을 만보(漫步)한 여적은 차별화의 과정에서 ‘진정한 휴머니스트, 빛나는 이름’으로 일컬어도 결코 지나치지 아니하다.
각론하고 상황에 비춰 현실적으로 직장생활에서 동료라는 그 관계성도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랄까? 이해관계에 맞물려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기실 20, 30년 남짓 같은 학과의 교수로 재임하면서도 퇴임 후에 작은 도움을 베푼 정황에서도 일체 문안의 소식조차 없는 것이 보편적이기에, 불과 1년 남짓한 기간 따뜻한 교유(交遊) 없이 박경현 교수와는 그렇게 지나쳤다. 이 같은 맥락에서 뜻밖에 해가 저물던 지난 2023년 12월 28일, 필자 또한 까맣게 잊고 지나친 43년 만에 “靜浪 시인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朴景賢, 기억하시는지요? 心身이 늙어가니 보고 싶은 이들이 많아지네요. 1980년 늦가을 선생님과 함께 연구실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추억이 새롭습니다. 내일 제자인 경찰서장 만나러 강릉갑니다. 관동대 캠퍼스도 한 바퀴 돌아볼까 합니다. 혹 시간이 되시면 강릉 어디서든 잠시 龍顏 뵙고 싶습니다. 기대합니다. 餘不備禮.”
그렇다. 뜻밖에 어떻게 헨드폰 번호를 알았는지 이 같은 내용의 문자가 날아왔다. 그다음 날 오전 9시 “엄 교수님! 서울출발 11시 50분 강릉경찰서장실에서 뵙지요. 드디어 만나는군요!” 모처럼 극적인 해후(邂逅)는 이윤 서장실에서 짧은 포옹으로 이루어졌다. 또 한편 현직에 재임 중인 제자가 존경하는 노스승을 정중히 그 자신의 승용차로 모시는 자리에 초대되어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마침 그날 옆 테이블에 우연히 대학 제자로 KBS의 김경미 시인(강릉문협지부장)과 마주쳐 서로 간 인사도 나누었다. 그간에 필자는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전용찬 전 강원경찰청장에 이어 최인철 인제경찰서장, 김상회 종로경찰서장이 주도한『경찰문학』의 고문을 맡고 있기에 책 몇 권을 이윤 서장에게 건네주며 그렇게 만남이 주어졌다.
짐짓 한 시대의 진정한 대변인 T. S. 엘리엇이 자신의 시편 <The Hollow men>에서 “우리는 텅 빈 사람, 우리는 가득한 사람이다.”라는 역설로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듯, 민족의 스승인 만해(萬海) 선사가 ‘공간이면서도 텅빈 공간이 아닌 님의 실체를 찾아서 견고한 고독 앞에서 고뇌하였듯’ 격랑(激浪)의 시간대에 처했던 짧지 않은 삶에서 30년 이상을 신설된 국립경찰대학에 몸담으며 전심으로 순전한 애국심의 발현(發現)에 끝내 비장감이 묻어있다. 또 한편 “嚴昌燮 교수님! 방금 귀가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40여 년 전 추억의 배를 타고 다녔습니다. 내내 건강, 건안, 건실하시길 비옵니다.” 이처럼 가끔 ‘여행이라는 어휘 앞에서도 첫 입맞춤처럼 가슴 설렘의 낯선 환경·풍물을 다양한 소재로 삼아 이미지를 형상화한 행위 일체는 피로감도 말끔 씻겨준다. 특히 지난 1, 2월 세계 79개국 선수가 참가한 국제강원청소년올림픽 기간 중 필자가 이사장을 담당한 「사단법인 k 情나눔」의 ‘털실 목도리 뜨기’ 행사에 이윤 서장은 몇 번에 걸쳐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특히 고정인식의 틀 깨기로 정년 후 따뜻한 감성의 정신기후 조성을 위한 글짓기의 소임도 그렇거니와 청소년 보호 취지에서 설립한 협회의 책임자로서 2011년 11월에 도입된 `게임시간 선택제'와 `게임 셧다운제'가 기대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도 컴퓨터 게임과 가정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규제가 아닌 예방과 해소를 위한 `유해 게임물 정화 시스템과 청소년 상설 수련 시설 및 G-러닝(Game based Learning) 시스템을 구축’한 그 청소년 게임문화조성의 융복합정책은 미더움이 주어질 따름이다.
차제에 유장(悠長)하고 막힘없이 그 자신이 써 내려간 예감이 빛나는 공감의 시학과 정신적 피폐함으로 고통을 받는 타자에게 자아 성찰의 역동성은 지극히 놀랍다. 이같이 즉물적 현상의 심부를 해체 시키는 도식으로 ‘들어냄보다 감춤’의 담론으로 사라지는 대상의 생명감을 거듭 입증하고 있음도 기실 공감 이상이다. 아울러 생명의 엄숙성이 수용된 따뜻한 감성의 시적 행보(行步)는 정체성을 지닌 독자적인 시의 지평을 열어 보임도 그렇거니와 지난 2011년 11월 14일에 경찰대학 개교 때부터 함께 해온 '원년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 앞서 마련된 30여 년간에 '말과 글을 통한 인성 교육'에 힘써 온 고별 강의 직후, 젊은 제자들의 뜨거운 축하의 박수와 함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어우러진 한 때의 그 차별성은 더없이 감동적이다.
모름지기 잠시 지나쳐온 세월을 뒤돌아다 보면 필자 또한 피가 뜨거운 대학 1학년 재학 중인 1965년, 현재『한국시학』의 임병호 발행인을 주축으로 당시 김석규, 김석희, 최호림, 김용길을 포함한 패기에 찬 전국의 젊은 문사들과 함께『華虹詩壇』(발행)을 어쭙잖게 결성하여 함께한 그 결과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자긍심의 일면이다. 또 한편 잠시 묵언의 응시 끝에 박경현 교수와 맑은 영혼의 창을 열고 생명의 기표로 격(格) 없이 교감할 수 있음은 그간에 한국 문단에서 서로 간의 따뜻한 감성을 지닌 정신작업에 종사한 연유도 그럴 것이나 천상의 층계 오르는 삶을 지극히 갈망하는 몫의 일체감인 까닭이리라.
무엇보다 그 자신의 다양한 경력에서 ‘국선도 道牧法師’라는 이채로운 직함에 새삼 관심을 지녀야 함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아놀드 토인비가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인류를 구원한다.’라는 경계는 분별할 점이다. 까닭에 인류 최고의 경전으로 ‘배달민족의 상고사를 담은 환국시대의 천부경(天符經)’을 소유한 민족의 자긍심도 일체 상실하고,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으로 갈등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안타깝게도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아니한다. 그간에 필자는 힘겨운 삶을 역주(力走)하며 ‘극소수의 창조자임’을 자처하지 않고서도 언어공해의 심각성을 경계하였다. 따라서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 조국(祖國)이 있음”을 역설하였듯, ‘위대한 우리 문화와 역사의식의 정체성’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일깨운 일면에서 ‘민족혼인 국어 사랑의 지대한 관심사와 시어(詩語)의 틈새 좁히기에 맞물린 치밀하고 뛰어난 언어의 감별력’을 끝내 시적 상상력의 확장에 결부시켜 ’한국화법학회 회장, 의식개혁협의회 공동대표, 시민감찰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의 소임을 충직하게 수행하며 ‘國仙徒 道牧法師’ 역할이야말로 더없이 놀라운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맞물림이다.
이처럼 삶의 일상에서 필자 나름으로 그간에 남다른 교분을 쌓았던 문인 중에 안타깝게도 작고한 ’김용재, 신경림, 성춘복, 이성교 시인에 관한 애틋한 추모의 정을 아쉬움의 감회(感懷)로 조시(弔詩)나 미셀러니로 발표한 터라 “지내온 삶을 글로 남기고 싶은 심사(心事)이기에 외람되지만, 박경현과의 인연에 대해 형식에 무관하게 몇 페이지 부탁한다.”라는 정중한 내용의 문자를 박경현 교수로부터 받아들었다. 새삼 그분과 잇닿은 소중한 연을 애써 ‘따뜻한 감성의 느낌표(!)’로 매듭지을 의중은 아니어도, 황혼의 길목에 처한 삶의 현상에서 자아 성찰을 탐색할 때, 80년 초는 지방대학 교수의 전직(轉職)이 보편적인 추세라 그 당사자인 박경현 교수와 같은 학과의 어학전공인 박희숙 교수는 청주 교원대학으로, 또 현대문학전공의 장윤익 교수는 뒷날 인천대학과 경주대학의 총장을 역임했지만, 고희기념논총 간행 당시 필자의 ‘축하의 글 수록’에 느꺼움이 주어짐도 끝내 별개일 수 없다.
연유야 어떠하든 우리의 문단에서「한국 문인의 양심」으로 평가받으며 보람찬 삶을 영위하는 ‘정신적 큰 스승 김우종 교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항상 고매한 품격과 이 시대의 자존감을 지닌 마지막 선비다. 다소 거리감이 주어질지라도 “엄 선생은 산과 호수, 그리고 바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광 좋은 고향에 몸담고 있지만, 가급적 낚시는 취미로 하지 말아요.” 이것은 대학원 당시 창조적 영혼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준 엄격한 스승의 깊은 배려심이다. 또 한편 ”내가 대학 강단에서 엄창섭 시인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라며 제자의 존재감을 불어준 것은 삶의 항해에서 진정한 선장으로의 서번트 리더십이다. 이렇듯 박경현 교수 또한 깊은 밤 홀로 고뇌하며 40여 년 남짓 분망한 시간대에 쫓기며 사회발전에 다양한 모양새로 공헌한 제자에게 격 없이 존경받는 정신적 스승임에 틀림이 없다.
결론적으로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갈등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시간대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며 상실한 자아를 되찾고 따뜻한 감성을 회복할 일이다. 슈바이처가 ‘현대인의 병리성을 비자립성, 무사상성임’을 경계하였듯 경제 논리에서 현대인의 비극은 진정한 자아와 삶의 좌표, 그리고 자긍심의 상실이기에, 집념과 삶의 행적은 검증할 바다. 까닭에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지닌 박경현 교수가 엄숙한 시대적 소임에 한 사람의 지성으로 대응하는 인간적인 고뇌는 ‘철학과 교육, 그리고 민족혼의 온전한 합일’에 맞물린 존재감으로 그 해법의 당위성을 지닌다. 모처럼 창가의 눈부신 맑은 햇살에 글 치기를 멈추고 설레는 심정으로 막상 핸드폰의 연락처를 누르니 통화 중이다. 아! 그렇다. 인간(人間-사람 사이)관계에서 ‘맺어진 인연의 매듭’은 인위적으로 끊어내지 않으면 풀리지 않음은 세상의 명백한 이치다.
* 엄창섭 : 강릉출생,『華虹詩壇』(1965) 발행인,『시문학』출신, 한국시문학 학회 회장, 관동대학교 교무처장(대학원장, 총장 대행)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및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고문, 사) K 정나눔 이사장, 월간『모던포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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