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앞에 심어 놓은 해바라기 낮엔 해님 보기 바빠서 조용한 밤에 자라는지 밤 지나고 나면 키가 쑤욱 커져 있어요
낮엔 함께 놀다가 남 안 보는 밤에 아닌 척 남몰래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처럼 내가 보지 않을 때 부지런히 키를 키우고 있나 봐요
# 낚시
아빠 따라 저수지에 갔더니 낚시하는 사람들 엄청 많았어요 가짜 미끼로 유혹해서 생명을 잡고 있었어요 남을 속이는 건 나쁜 것이라 하는데 고기는 속여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고기들이 말을 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 # 내 마음의 징금다리
내 마음의 징금다리는 엄마의 마음 엄마를 통해 아빠에게 내 마음 전해지고 나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의 마음을 연결하는 우리 가족의 징검다리
# 여름의 향기
무더운 여름에 무슨 향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찾아도 봄 꽃 같은 향기가 없는데 더운 땀 냄새를 향기라고 하는가? 아니면 내 모르는 향기가 따로 숨어 있는가?
# 와, 여름이다
공부에 갇혀 있던 아이들 개울에서 신나게 물장구치고
이따금씩 퍼붓는 소나기에 게으른 차들이 공짜로 샤워하는 시원한 여름
# 여름 한 컵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는 시원한 맥주 한 컵 나와 형은 시원한 사이다 한 컵 엄마는 시원한 물 한 컵 시원한 한 컵에 지겨운 더위도 손 들고 달아나지
# 산의 마음
산은 마음이 넓다 욕심부리지 않고 말없이 길을 내어 주고 잠시 쉬어가라고 시원한 물길도 내어준다
멀리서 높은 것만 바라보다가 가까이 와서 보니 넉넉한 산의 마음이 보인다
하루도 같은 산이 아니지만 뻐꾹새 소리는 먼 훗날에도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 모른 척
설핏 잠이 들려는데 내가 자는 줄 알고 아빠와 엄마가 내 걱정을 걱정하시면서 내게는 말하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듣고도 모른 척했다 엄마와 아빠가 무안해 할까 봐 알기 때문에
# 바람의 길
바람도 가는 길이 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들판의 보리나 벼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볼 수 있다
바람이 가는 길은 계절따라 방향이 달라서 봄에는 남동풍이 불고 갸울에는 북서풍이 분다
# 이웃이 없다
말로는 온 세계가 이웃이라는데
문 하나 닫으면 앞 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아파트 시대
'이웃'이라는 말만 있지 이웃이 없다
이웃과 담 너머로 정 나누며 살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가고 있다
# 비밀
세상이 밝아져서 숨기기 어렵지만
엄마 아빠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여자 친구 이야기
# 시냇가
더위에 지친 바람도 쉬어가는 시냇가
졸졸졸 흐르는 맑은 물에
발 담그고 노는 구름들
강아지가 부러운 듯 바라보다 간다
# 뭉개구름
초여름 오후 푸른 하늘에 뭉실뭉실 피어나는 구름
양떼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한 아름다운 모습
내 마음도 두둥실 떠 올라 온 세상 함께 구경 다니고 싶다
# 할아버지 날씨 예보
옛날엔 할아버지가 몸으로 날씨를 예측하셨대요
산 너머 기적소리가 은은하게 번져오면 비 올 것 같다며 마당 설거지를 당부하셨고 팔 다리가 쑤신다며 아랫목을 찾으시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대요.
빗나간 일기예보로 기상청이 ‘수퍼청개구리’라고 매를 맞고 있는 요즘
문득문득 몸으로 날씨를 보여 주셨다는 할아버지가 그립다
# 어려운 문제
사람들은 새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기도 하고 새가 운다고 하기도 하는데, 학자들은 짝을 찾기 위해서 내는 소리라고 합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쁘고 슬퍼서 늘 똑같은 노래를 부른다? 지겨워서 못할 것 같습니다. 슬퍼서 부른다면 눈물 자국이라도 있어야지. 그래서 내놓은 답이 짝을 찾기 위해서라고요? 그럼 갓 태어난 어린 새들도 짝을 찾기 위해서??? 짝을 찾기가 그렇게 힘들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겠다 싶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 할머니 생각
아빠 따라 시골집 가면 큰 길까지 나와 반겨 주시던 할머니
지난 추석 성묘 길에 시골집 찾았다가
텅빈 길 위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왔다
오는 길 내내 따뜻했던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 꽃은 피는데
시골에서 사과 농사 짓는
큰아버지
꽃은 많이 피는데 거둘 과일이 걱정이다
과일 나무 꽃도 암술과 수술이 만나야 열매를 맺는데
병충해 잡겠다고 땅에서 하늘에서 뿌려대는 농약으로
꽃술을 맺어 주는 꿀벌이 사라져 결실을 못한다고 한다
해마다 큰아버지네 사과를 먹으면서도 그걸 몰랐다
# 고운 바람 미운 바람
꽃소식을 불러오는 따뜻한 봄바람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여름바람
고운 물감 싣고 오는 반가운 가을 바람
매서운 추위 몰고 오는 미운 겨울 바람
# 선생님 홍수
요즘 '선생님'이 너무 많아요 국어사전에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하는데
의사선생님 약사선생님에다 공무원, 안내원 은행원.배우 등 직업 이름 뒤에 선생님이란 말을 마구 붙여 쓰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선생님'이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