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3 공민영 1호 기사(수정)

[공민영]

기자가 먼저 반했다··· 여자야구, 주목에서 성장으로
기록의 공백을 채우는 기자의 시선

12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25 KBO리그가 1,115만 9,737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정규시즌 누적 관중 2억 781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야구에 대한 관심이 그 무엇보다 뜨거운 지금, 프로야구의 그림자 속 여자야구 선수들도 그들만의 뜨거운 마운드 위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은 2006년 9월, KBO 아마야구 육성위원회를 중심으로 창립을 준비해 2007년 1월 창립됐다.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은 한국 최초로 고교 야구부에 입단했던 안향미가 주축이 되어 만든 비밀리에라는 팀으로 2004년 제4회 IBAF 여자야구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시작됐다. 프로팀은커녕 실업팀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은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여자야구 월드컵에 출전하고 2017년과 2023년 아시안컵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성실히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2024년 9월에 국내 첫 엘리트 여자 대학야구부가 국민대학교에서 창단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여성 스포츠 열풍에 힘입어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 창설 소식이 발표됐다. WPBL은 오는 2026년 공식 출범한다. WPBL은 여자야구 선수들이 설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프로 무대인 만큼 전 세계에서 무려 600여 명의 선수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26일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25), 김현아(25), 박주아(21)가 미국 워싱턴 내셔널스파크에서 열린 WPBL 트라이아웃 최종 단계에서 기량을 발휘했다. 이 트라이아웃은 WPBL 선수 선발을 위한 최종 무대로, 이 트라이아웃을 통과한 선수들은 10월 드래프트를 통해 각 구단 지명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는 총 5명의 선수가 지원해 박주아 선수와 함께 투수 김라경 선수, 포수 김현아 선수 등 3명이 최종 선발되어 구단 지명만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여자프로야구 리그(WPBL) 최종 트라이아웃을 통과한 박주아 선수=부산일보

이번 WPBL 트라이아웃 최종 단계 통과는 한국 여자야구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성과가 아닌 한국 여자야구 전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를 비추는 언론의 역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스포츠는 단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무대가 아니다.”
여자야구 현장을 3년여간 취재해 온 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는 여자야구를 취재하며 느낀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황 기자는 그라운드 위에서 땀을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통해 잊고 있었던 스포츠의 본질을 다시금 떠올렸다. 선수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열악한 여건 속 묵묵한 성장이 얽힌 여자야구 경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조명받지 못했던 그라운드 위를 기록하는 일, 앞으로도 여자야구를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황혜정 기자를 만나봤다.


[Q. 여자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키즈로 자라며 박지성 선수를 보며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고, 매일 새벽이면 남자 축구 대표팀 A매치를 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 축구의 존재는 알지 못했습니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여자 축구 대표팀이나 관련 팀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에 여자 축구를 처음 인식하게 됐습니다. 당시 지소연 선수를 필두로 한 U-20 여자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어서 U-17 여자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시 결승전을 끝까지 지켜봤고, 3-3 동점과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경기는 제게 환희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여자 축구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저는 스포츠 기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축구를 좋아한다는 점을 어필하며 축구팀 배치를 희망했지만, 인력이 부족하던 야구팀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야구 현장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취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야구팀 신입 기자로 근무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문득 "여자야구는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몇 년 전의 기사만 보였고, 여자야구 대표팀이 사회인 동호인 체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직접 여자야구를 취재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맹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왜 오려는지 경계하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여자야구만의 독특한 에너지와 활기에 놀랐고 점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여자야구 취재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여자축구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세계 대회에서의 선전이었던 것처럼, 여자야구도 미디어가 꾸준히 조명한다면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여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명감을 가지고 여자야구를 취재해오고 있습니다.


[Q. 여자야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지]
여자야구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은 단순한 팀이 아니라, 야구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간절히 바라던 기회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소중하겠지만, 여자야구 선수들에게 대표팀은 유일하게 체계적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놀이터였습니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대표팀에서만 밀도 있게 훈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일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주말이면 쉬지 않고 운동장에 모여 합숙 훈련을 받았습니다. 1세대 여자야구 국가대표 출신이자 당시 대표팀 트레이너였던 방순진 씨는 “벚꽃 축제가 한창인 3월에도 선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대표팀 소집에 참석한다. 벚꽃보다 야구가 더 좋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은 배움에 목말라 사비를 들여 레슨을 받거나 동영상과 서적을 탐독하며 야구를 익혔습니다.

투수 최송희 선수는 야구공을 마음껏 던지고 싶어 레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외야수 안수지 선수는 처음에는 10m도 채 던지지 못했지만 8년간의 노력 끝에 서른이 넘어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포수 김해리 선수는 웬만한 야구 기자들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더 잘 알 정도로 해외 야구까지 챙겨보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야알못’에서 국가대표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취재하며, 야구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여자야구의 이야기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돈이 안 된다”는 논리로 귀결되었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243건의 여자야구 기사를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돈이 안 되는데 왜 취재하냐”였습니다. 여자 프로 리그가 없다 보니 스타 선수가 드러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구속이 느리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편견이 작용했습니다. 그 결과 미디어에서도 조명을 꺼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본 여자야구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국가대표 에이스 김라경 선수의 커브는 예술 작품 같았고,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 덕분에 오히려 궤적이 더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투수 박민성 선수는 스리쿼터 자세로 던지는 직구가 뱀처럼 휘어 들어오며 환상적이었습니다. 외야수 안수지 선수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중견수 신누리 선수의 다이빙 캐치, 유격수 박주아 선수의 몸을 날린 호수비, 포수 김현아 선수의 호쾌한 장타는 모두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였던 정근우 전 SK 선수 역시 “여자 야구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직접 보니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말했습니다. 투수코치를 맡았던 윤길현 전 SK 선수도 “여자야구, 정말 매력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자 선수들의 경기를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단 한 번도 그들의 플레이를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원래 ‘힘’보다 ‘지능형 스포츠’를 표방하며 탄생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밀한 플레이와 협업을 강조하는 여자 야구가 단순히 구속이 느리다는 이유로 저평가되는 것은 모순입니다. 같은 논리라면 MLB보다 KBO가 덜 재미있어야 하지만, 실제로 KBO는 관중 점유율에서 MLB를 앞서고 있습니다. 이는 스포츠의 매력과 흥행이 단순히 구속이나 힘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자 배구의 사례도 비슷했습니다. 흥행하기 전까지는 늘 “스파이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인기를 얻은 뒤에는 “유연한 볼 전개가 장점”이라는 평가가 붙었습니다. 결국 선수들의 기량이 바뀐 것이 아니라, 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평가가 달라진 것입니다. 여자 야구 역시 충분히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여자야구를 기사화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어떤 점에 유의해 취재하고 있는지]
저는 여자야구를 취재할 때, 무엇보다 선수들의 진심 어린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들을 최대한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경기 결과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왜 야구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여정을 거쳐 국가대표에 올랐는지를 세밀하게 조명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저는 여자야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선입견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유의해왔습니다. 여자야구가 남자 야구보다 구속이나 힘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이를 굳이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발견되는 세밀한 플레이, 팀워크, 집중력과 같은 고유한 매력에 집중해왔습니다. “구속이 느려서 재미없다”는 피상적인 시각 대신, 직접 현장에서 마주한 경기의 박진감과 선수들의 표정, 땀,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여자야구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글쓰기의 방향이었습니다.

또한 여자야구는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 있는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수들은 학교나 직장을 병행하면서도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여 훈련을 받고, 사비를 들여 레슨을 받으며 기량을 갈고닦고 있습니다. 그들의 야구를 향한 애정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것이며, 그 열정을 담아내는 일은 기자로서의 사명과도 같다고 느껴왔습니다.

저는 여자야구를 취재하며, 스포츠가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열정, 성장의 드라마가 담긴 장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여자야구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꾸준히 진심 어린 기사를 써나가고자 합니다.

[공민영]

교수님 WPBL은 미국 북동부를 연고지로 6개 팀이 참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