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시 춘천’의 ‘낭만 자전거 길’ 35km 달려보니…
데크 파손, 위험구간 안내판 미비… 설치 편의시설은 ‘관리 부족’
북한강을 따라 만들어진 춘천의 자전거 길은 경춘선 이용이 가능함과 동시에 대부분 구간이 강을 따라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춘천 시민들뿐 아니라 서울 및 경기 주민들도 찾는 유명 자전거길이다. 춘천시가 ‘낭만자전거길’이라 홍보하고 있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이 곳의 관리실태를 알아볼 겸 전체 99.2km 구간 중 우두동과 강촌리 사이 약 35km 구간을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달려봤다.
지난 13일 강촌 구간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객 이호재씨는 “성남 중원구에서 출발해 춘천까지 가는 길인데, 춘천 자전거 길은 성남 탄천 자전거길에 비해 자연경관이 뛰어나 눈이 즐겁다”고 말했다. 25일 신매대교 인증센터에서 만난 자전거 모임 '독수리오형제' 회원들은, 경춘선 덕에 편도로 자전거 여행이 가능해 편하다"며 낭만자전거길을 찾은 이유를 전했다.
그러나, 기자가 이틀에 걸쳐 전체 1/3이 넘는 구간을 달려본 결과, ‘낭만자전거길’은 명성에 걸맞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 위로 설치된 나무 데크가 파손됐거나, 내리막길에 사전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는 등 곳곳에 위험요소가 눈에 띄었고, 국토종주 인증센터의 도장이 마르는 등 편의시설의 관리 부족도 드러났다. 북한강변을 따라 조성된 해당 구간은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일부이기도 해, 춘천 시홍보 자원으로 활용돼야 할 낭만자전거길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부서진 채 방치되고 있는 나무 데크(좌)와 데크가 사라져 드러난 철골 구조물(우). 손이 들어갈 정도로 틈새가 넓고 깊어, 자전거 바퀴에 충격을 가하거나, 발이 빠질 우려가 있었다.
소양 2교 북단에서 출발, 신매대교와 강촌리를 거쳐 소양2교 남단까지 35km(파란색 선)를 달렸다. 편의시설 관리가 부족한 곳은 한 곳(주황색 점), 위험요소 안내가 부족한 구간은 세 곳(빨간색 점)이 발견됐다. (원본 사진 출처= 춘천시)
소양 2교 북단부터 신매대교 인증센터까지 약 5km 구간에서는 사고 발생이 우려되는 요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매대교 인증센터’의 노후화 문제가 눈엣가시였다. '인증센터'는 '국토종주 인증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서울, 경기 지역 자전거 여행객들이 1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 도착하는 곳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인증부스 안에 설치된 세 개의 도장 잉크는 모두 말라 있었다. 인증부스에서 도장을 찍고 나온 류모(49)씨는 시설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인증부스와 도장이) 노후화되었죠. 당연히 개선될 필요가 있죠"라며 문제를 꼬집었다. 특히 도장 상태는 타 지역 인증센터들에 비해 불량했는데, 낙동강 자전거길이나 남한강 자전거길에서 볼 수 있는 ‘자동스탬프’와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자동스탬프의 경우 잉크가 도장 내부에 있어 도장의 결과물이 선명하고, 잉크가 마르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신매대교 인증센터의 도장과 말라버린 잉크(좌),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의 잉크 보충 방식 자동스탬프(우)
신매대교 인증센터를 지나 '나무 데크 구간'에 들어서면서, 위험요소가 다수 발견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에 대한 사전 안내도 미흡했다. 신매대교 인증센터로부터 1.5km 남쪽에 위치한 데크 구간에서는, 나무 울타리가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었고, 강 위에 설치된 데크에서 육지로 통하는 대피로가 날카롭게 부서져 있었다. 또, 야간에 급회전 구간을 미리 알리는 반사판의 코팅이 벗겨져 있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전거 동호회 '춘천 따릉이 원정대' 회원 김지한(25)씨는 “습도가 높은 날 이 구간에서 자전거 바퀴가 미끄러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며 “데크 길은 미끄러지기 쉽고, 커브도 심해 사전 안내가 없으면 사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10년 이상 타고 있다는 최모(41)씨는, "자전거를 오래 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매대교 인근 데크 구간은) 사고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며 ”겨울과 여름 모두 습한 곳이기 때문에 이 구간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자동차 도로로 우회할 정도"라고 말했다.
신매대교로부터 1.5km 남쪽에 위치한 나무 데크 구간. 부서진 데크로 인해 발이 빠지며 다칠 위험이 있는 대피로(좌)와 파손된 자전거길 울타리, 기능을 상실한 급회전 경고 반사판(우)의 모습. 강 위에 위치한 탓에 습도가 높아 브레이크 제동 거리가 길어지거나 미끄러질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급회전 구간의 반사판과 울타리의 존재가 중요한 구간이다.
남쪽으로 약 7km를 더 내려오니 나무 데크가 아예 사라져 없어진 곳도 있었다. 붕어섬 인근 데크 구간의 경우, 아스팔트 도로와의 연결부 데크가 비어있어, 데크를 받치고 있는 철골 구조물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춘천 따릉이 원정대’ 운영자 김영섭(25)씨는 “틈새가 좁아 보일 수 있어도, 자전거의 진행 방향에 따라 바퀴가 빠지는 정도가 달라 자칫 넘어지기 쉬울 것 같다”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데크가 사라져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모습. 손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어있는 공간이 깊어, 자전거의 진행 방향에 따라 바퀴가 빠질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미리 인지하지 못한다면, 낙차 등 큰 사고가 우려됐다.
강촌교와 자전거 길을 잇는 경사로의 경우, 내리막 진입 전 사전 안내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해당 내리막에서 속도를 측정해 본 결과, 자전거 페달을 굴리지 않았음에도 40km가 넘는 속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속도가 빠른 만큼 사고 위험이 큰 구간이었으나, 경사로 중간에 ‘오르막을 오를 때만 보이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경사로 길이가 더 짧음에도 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의암스카이워크 인근 구간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강촌대교 내리막길(좌). 좌측의 벽과 급회전 구간으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고, 속도가 빠른 만큼 충돌 위협이 큰 구간임에도 안내판이 갖춰지지 않았다. 내리막에서 측정된 최고속도(가운데). 안내판이 갖춰진 의암스카이워크 인근 내리막길(우)
국내 유일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남한강 자전거길의 강천보 경사로는 잦은 사고 발생으로 인해, 방지턱을 설치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강촌교 경사로는 사고예방책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로 보였다. 김씨는 “경사로가 다리(강촌대교) 밑이라 추운 날에는 결빙 위험이 있는 데다, 커브 길이 벽으로 막혀있다. 반대편 자전거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주의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 것이 분명하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경사로를 등지고 있어 내리막을 내려갈 땐 보이지 않는 안내판(좌)과 남한강 자전거길 강천보 경사로에 설치된 방지턱의 모습(우) 강천보 경사로의 경우, 방지턱을 설치하는 극단적 사고예방책을 사용함으로써 여행객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이동하도록 했다.
강촌대교부터 소양 2교 남단까지 15km 구간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특히 겨울동안 폐쇄됐다 지난달 27일 재개통한 의암호 자전거길 구간은, 나무 데크와 경고판 설치 상태도 우수했다. 덕분에 급회전 및 경사로 구간을 사전에 인지하고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관리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난 편의시설 한 곳과 위험 요소 세 곳의 경우, 시의 빠른 대처가 요구되는 구간이었다. 자전거길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춘천시 관계자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매대교 인증센터 도장의 경우, 잉크가 마르는 등 미흡함을 인정한다. '자동스탬프'로 도장을 교체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치 않은 만큼, 조속히 교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내판이 없는 강촌교 경사로 역시, "현장 확인 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 표지판 등의 경우, 전 구간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노후화된 표지판도 교체할 예정“이라고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나무 데크 구간'에 대해서는 ”가장 고민인 구간“이라며 말을 아꼈다. ”시 예산 부족“과 ”관리 인력 부족“이 그 이유였다. 문제가 된 데크 구간의 경우,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국토종주 자전거길'이다. 춘천 내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경우, 2012년 12월 개통될 때까지 설치는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가 주도했다. 그러나 이후 관리는 지자체가 떠안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춘천시 관계자는 "나무 데크의 경우 설치 10년이 넘은 만큼, 노후화로 인한 교체 소요가 있지만, 시 예산으로는 역부족이다. 국토부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지만, 답변을 받지는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관리 인력도 턱 없이 부족했는데, 현재 춘천 내에 개통된 자전거길 99.2km를 관리하는 인력은 세 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전거길 관리를 맡고 있는 도로과 내 '보행자전거팀'에는 주무관 두 명과 팀장 한 명이 전부다. 매년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했지만, 정비 소요를 발견하더라도, 예산 문제에 가로막혀 간단한 정비만 하기 일쑤였다.
취재 결과 인증센터 도장 교체, 위험 구간 표지판 설치 등, 비교적 예산이 적게 투입되는 정비 소요에 대해서는 춘천시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 데크 교체 등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이 필요한 정비의 경우, 지자체 차원을 넘어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와 춘천시가 ‘협력 거버넌스’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지점으로 드러났다.
이승윤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