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사랑초
한 준 수
초등학교 3학년생인 손녀가 꽃과 물고기와 달팽이를 좋아한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꼭 저를 닮은 화분이나 물고기 그리고 달팽이를 사왔다. 하나같이 작고 앙증맞은 것들을 사온 터이다.
아무래도 제 아비와 헤어져 우리에게 와 자라고 있어 가끔은 제 아비 생각에 허전함을 느끼게 된데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아빠는 술을 많이 먹으니깐 싫어.”란 말을 해 왔어도 그림을 그린 것을 더러 보면 술에 취한 남자를, 정장 차림의 신사를 그린 것을 보게 되었다.
접때는 사랑초라는 꽃을 사왔다. 나는 야생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지가 몇 년 되었지만, 일반 식물에는 그렇게 깊은 관심이 없는 터였다. 그런데 사랑초를 자세히 보니 거기서 손녀의 생각을 읽을 것 같았다.
사랑초는 입새가 세 개씩, 줄기의 맨 위에 마치 커다란 나비 세 마리가 입을 맞대고 앉은 모습이다. 그 색깔 역시 진한 보라색인데 잎의 등 쪽 복판에는 붉은 Y자 무늬가 있기도 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러나 사랑초는 줄기도 그 잎도 여리고 약하기 이를 데 없다. 어둠이 오면 몸을 움츠리고 밝음이 오면 다시 활개를 펴기에 힘겨워하는 식물임을 알았다. 잎줄기와 꽃줄기는 각기 따로따로 올라와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피고 있다.
오늘 아침 우연히 보았더니 줄기 들이 잎들의 하중을 못 이겨 화분의 울 밖으로 쳐져 있었다. 손녀가 실로 매어 놓았지만 어설프게 묶어 놓아 내가 보았을 때는 그 잎이 바닥 가까이 닿을 지경이었다. 애처로운 생각이 문뜩 들었다. 사랑초 줄기를 모아 쥐곤 밑으로 늘어진 실올가미를 조심조심 끌어 올려 어느 정도 바로 서게 해 놓았다. 꽃대는 네 개 올라와 있지만 아직 꽃이 핀 것은 한 송이 뿐이다. 무녀리로 피어나 일찌감치 고달픈 삶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햇빛을 받아 빵끗 웃을 때 보면 코딱지만 한 분홍 다섯 꽃잎이 보면 볼수록 앙증맞고 귀엽다. 아니, 어쩌면 속내를 숨기고 있을 손녀처럼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아이가 물고기를 처음 사온 것은 네 마리였다. 작은 종류라서 어항이 너무 허전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며칠 후 또 한 마리를 사다가 다섯 마리를 만들었다. 네 마리 때에는 손가락으로 한 마리, 한 마리 가리키며 다음 같은 말을 했었다.
얘는 할머니, 얘는 엄마. 그런 다음 나의 얼굴을 슬쩍 보고 나서, 얘는 할아버지. 하고 인심을 썼다. 그리고 남아지 한 마리는 저라고 했었다. 그러나 어딘가 비어 있어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지 한 마리를 더 사다가 다섯 식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는 아홉 살 되던 정월에 아버지를 여위었다. 그 해 고향으로 내려가 살았는데 가을이었나 보다. 城隍堂(성황당) 고개 위에 앉아 도붓장수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오십대 남자분이 '천이' 쪽에서 '당진 읍내' 쪽을 향하여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분명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서 나의 눈앞에 나타난 거였다.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하고 그의 앞으로 달려가 품에 안길 뻔 했다. 야외인 얼굴, 구부정한 허리는 불편하여 등에 진 짐 꾸러미가 불안정하게 달려 있었다. 일제 때 독립군 자금을 보낸다는 혐의로 일본 고등계 형사들에게 고문을 당하여 척추 골절상을 입으셨던 아버지, 등짐을 질 때마다 고통스러워하시던 바로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랬는데, 그분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그 분의 뒷모습에서 조차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를 더 걸어가며 나를 몇 번 돌아 본 그 분이 갑자기 가던 발길을 멈추더니 거친 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너 이놈 왜 사람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니? 어린놈이 어른 얼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게 아냐 인석아, 어느 집 아인지 버르장머리가 아주 못됐구나.”
그는 나의 턱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몹시 화를 내어 말했다. 곧 나의 따귀라도 때릴 것 같은 기세였지만, 나는 어린 탓에 ‘당신이 죽은 우리 아버지로 보여 당신에게서 시선을 뗄 수조차 없었습니다.’라고 해명할 능력이 없었다. 그를 아버지로 착각한 것이 큰 죄가 된 듯싶었고, 무섭고 겁이 나서 눈에 고였던 눈물이 볼로 흘러내렸을 뿐이었다. 그는 의아한 얼굴이더니 가든 길로 돌아갔다.
우리 손녀도 언제부터인가 제 아빠의 모습을 눈에 그려보는 습관이 생겼을 것이다. 가끔은 거리에서 본 어느 젊은 신사를 제 아빠로 착각한 적도 없지 않을 것이다. 술에 젖어 흐느적거리면서 “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좋지 않던 이미지의 아빠도 그려볼 테고 신사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아빠가 선물 꾸러미를 안기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영빈이를 제일 사랑한다.” 했던 다정다감한 아빠의 모습도 그려볼 것이다.
핏줄과의 헤어짐, 특히 자식과 부모간의 사별이나 이별에는 깊은 상처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영빈’이란 놈 역시 제 어미 아비가 이혼한 탓으로 능력이 좀 나은 제 어미 편에서 자라고는 있지만 다섯 살에 헤어진 제 아빠를 어찌 잊을 것인가. 그렇지만 아이는 속이 깊다.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 삭히면서 그 대신 꽃이나 물고기 또는 달팽이 같은 것을 키우는 것으로 마음속 빈자리 하나를 채워 보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꽃이 말라죽은 화분의 흙을 덜어내어 흙이 덜 담긴 사랑초 화분을 채워주고 물도 부어주었다.
손녀가 철이 들기 전 이 글을 읽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첫댓글 선생님의 글에는 눈물이 감춰져 있습니다--전 그런데 그 눈물을 감출 수가 없네요 .작품 "노루발목"도 그렇고요
사람 본연의 아름다운 그리움 , 저멀리 잊고있던 그리움이 고픈 계절입니다. 선생님의 심성이,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잔잔하게 손녀를 통해 되살아 난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손녀을 애뜻이 생각하는 할아버지 마음을 보았습니다.
첫 줄 "손녀가 꽃과 물고와 달팽이를" 중에서 물고기와 달팽이의 탈자 아닌지요.
글쌔요,'탈자'의 뜻을 잘 이해 못하겠네요. ㅎㅎㅎ
김형구닌, 지석님 어설픈 글 읽어 주시어 매우 곱습니다.
애틋한 사랑초와 물고기를 통해 손녀의 마음을 잘 표현하셨네요.
사랑 충만한 속에서 자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스함 속에서 밝게 자라길 빌어봅니다..
김미옥님, 고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자라길 비라지요.
준빠님의 글에는 예사롭지 않은 울림이 있습니다.
눈물 속에 미소가 있고 미소에 어린 눈물이 있어요.
혼자 바깥에 나와 맛나게 담배 피시는 모습을 보면
그런 순간에 떠오르는 글들이 아닐까 싶어져요.
준빠님, 요즘 마음 아픈 일이 어느 집에나 많습니다. 어찌 외손녀 뿐이겠습니까.
그래도 옆에서 지켜보는 어미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 다행입니다.
주위분들의 사랑을 먹고 잘 클 것입니다. 뭉클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