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 그림을 보며 화가를 꿈꾸었다는 박수근
일본 유학은 커녕 보통 학교 도화 시간이 전부
독학하던 시골집 농가를 그린 '봄이 오다'로
선전에서 입선하고 착한 그림의 길을 걸었지요
금강산으로 떠난 아버지 대신 올망졸망 동생들 보살피며
윗집 처녀 김복순 '빨래터'에서 처음 본 날
빨랫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 양구 청년 심장에 울려퍼지고
평양 시청 서기로 일하던 때는 박수근의 봄날이었지요
큰딸이 쓰던 몽당연필로 데생을 하면
깊고 깊은 지구 마그마로부터 터져 나오는 화강암 DNA 막을 길 없어
백내장으로 한 쪽 눈 잃어도 남은 한 눈으로 '노상의 소녀들' 그려
국전 추천 작가로 세속의 인정을 받던 날
'집으로 가는 길' 로 접어든 박수근의 인생길
미8군 px에서 만난 작가 박완서 미군 초상화 주문 받아오고
박수근은 그림값 삼불, 오불로 창신동에 판잣집 사고
먼훗날
두 사람이 화단에서, 문단에서 나목 대신 거목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평범한 그림 그린다고 고백하였던 박수근
그 평범한 그림이 얼마나 비범해졌는지
천국에서 다시 찾은 밝은 두 눈으로 새로운 봄을 그릴 박수근에게
작가 박완서, 지상의 유고전 소식 전해주면
미술관 앞 박수근 동상
할아버지 안경 너머로 너털웃음 울려 퍼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