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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시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때로는 특정 시 작품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거나 사건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영화로 풀어낸 작품이고, 우편배달부라고 번역될 수 있는 <일 포스티노>는 망명 중인 파블로 네루다의 영향을 받은 전속 우편 배달부가 시를 이해하고 시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이다. 최진실과 박신양의 열연을 펼쳤던 이정국 감독의 영화 <편지>는 황동규 시인의 시 ‘즐거운 편지’를 주요 모티프로 삼아, 죽음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이밖에도 시 혹은 시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찾아보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 대해, 저자는 ‘영화와 시와 평론이라는 서로 다른 영토들을 횡단하고 융합하려는 크로스오버 기획’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신성한 잉여>라는 책의 제목은 문학평론가 임화의 <작가와 문학과 잉여의 세계>에 등장하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다. 임화가 그 의미를 ‘기성의 현실 세계를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안정성의 질서를 벗어나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불완전성과 역사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새롭게 나타난 여분의 요소’로 사용하고 있기에, 저자는 ‘이 책의 욕망 역시 영화와 비평의 크로스오버, 그 횡단과 융합의 실험적 시도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응 효과의 최대치를 겨냥’하여 제목으로 활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비평서’를 표방하면서 영화와 시를 연결시켜 논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하겠다.
저자가 비평 대상으로 삼은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옥자> 등과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 리덕스>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며, 그와 짝이 되는 문학 작품은 김수영과 정지용의 시, 그리고 이영광의 시에 대한 저자의 평론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수록된 8개의 글을 통해 저자가 바라보는 영화와 문학에 대한 관점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영역들을 결합하여 시도하는 ‘크로스오버’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비평들은 일반 독자들에게 그리 쉽게 읽혀지지 못할 것이라고 파악된다. 아마도 이 책을 쓰는 동안 저자가 탐독했을 문헌에 대한 지식이 ‘영화와 시’라는 본령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과 라캉 등의 서영철학자들의 주요 개념들은 물론이고, 동양의 <주역>과 <논어> 등에서 취한 구절들이 본문과 주석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러한 사상에 기대어 비평 작업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읽어낼 수는 있었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독자들에게는 ‘영화와 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어쩌면 더욱 난해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이쩌면 이 책 역시 비평의 전거로 삼고 있는 특정 사상이나 이론을 제시하면서, 그에 입각해 문학 작품을 설명하려는 현대비평의 일반적인 경향을 따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러한 비평을 읽으면서 문학 텍스트에 집중하기보다는 내용에 제시된 난해한 이론들로 인해 더욱 어렵게 느껴졌던 경험이 적지 않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범주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으며, 다만 영화와 시를 함께 논하는 평론을 접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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