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문명의 뿌리, 웬델 베리, 한티재, 2016.
씨를 뿌려 작물을 키우는 농업은 인간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산업이며, 미래에도 변함없이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농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그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으며,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듯이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간혹 귀농을 선택하여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빈집이 늘어나고 있으며, 인구가 줄어들면서 ‘인구 소멸’을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농업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경제적 이유로 그나마 그동안 짓던 농사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뿌리는 어떻게 뽑혔는가’라는 부제의 이 책은 1960~70년대의 미국의 농업 상황을 설명하면서, 대규모 기업농에 의해 ‘소농’들이 사라져가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경제적 이익만을 꾀하는 농업 전문가들의 연구들이 실은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면서, 오히려 땅을 죽이는 현상을 촉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에서도 1940년 이후에 농사를 포기하고 농장을 떠난 사람들이 2,500만명에 이르며, 그들의 자리를 이제 몇몇 대규모 기업농이 차지했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농민과 농촌 공동체가 파국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은 지금의 한국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직 남아있는 훌륭한 소농장과 농민들에게서 희망이 발견’되기에, 이 책을 통해서 ‘소농’이 문명의 뿌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재의 상황은 ‘땅, 지역사회, 문화를 파괴하는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 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여전히 지구상 곳곳에서는 ‘여전히 그런 파괴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저자는 개탄하고 있다. 이미 농업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조차 거대한 ‘산업체제의 신봉자들’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러한 관점은 앞으로도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올바른 토지 사용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필요한 변화를 촉발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강조한다.
농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들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실용적인 목적’과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 상황에 처한 자연 농법과 문화유산의 종속, 그리고 생물 개체들의 보존과 활용이야말로 문명과 역사의 생명을 이어주는 관건’임을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자신이 ‘공들여 쓴 이 책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될 수만 있다면 ‘이 책의 가장 행복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사와 현실의 측면에서 ‘이 책의 비극은 이 책이 옳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농업의 가치와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소농’들이 점점 늘어나고, 결국 그러한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지속되게 하려는 노력’으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