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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양문학사와 문학개론 류의 책들에서 숱하게 이름만으로 접했던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처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주지하듯이 보들레르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기존의 제도와 문학적 권위에 반하는 작품들로 인해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기존의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사탄'과 '악'을 찬미하는 듯한 그의 작품 세계는 충분히 기득권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족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시집의 제목인 <악의 꽃>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상식적인 관념을 어그러뜨리는 것으로써, 관념화된 이상을 노래하는 기존의 경향을 벗어나 암울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를 담아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초판본 <악의 꽃>은 보들레르가 생존했을 때인 1857년에 출간되었지만, 여기에 수록된 6편의 시가 부도덕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출판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우울과 이상’이라는 항목에 수록된 시 ‘장신구’의 첫 부분을 인용해 본다.
가장 소중한 여인은 벗고 있었고, 내 마음을 알고 있어서,
고리 나는 장신구들만 간직하고 있었고,
그 값비싼 것들이 그녀를 승리자처럼 보이게 했는데,
무어인들의 노예들이 호시절에 보였던 그런 모습이었다.
(보들레르의 시 ‘장신구’의 1연)
당시 여성들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여기던 관습에서 벗어나, 오히려 여성들을 장신구처럼 하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그 여성들의 모습을 ‘무어인들의 노예’에 비유한 것이 문제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시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이러한 시인의 현실 비판적인 면모는 유감없이 발현되고,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삭제되고 벌금까지 부여받은 나머지 작품들 역시 시인의 날커로운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풍기문란의 혐의로 벌금형까지 받고 6편의 시를 삭제해야만 했지만, 보들레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862년에 초판본에 35편의 작품을 더해 전체 6부로 나누어 재판을 출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사후인 1868년에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작품을 추가하여 증보판을 발행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은 1968년의 증보판에 수록된 작품까지 모두 포함하여 번역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후 벨기에 등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그의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1949년이 되어서야 출판금지에서 풀려났다고 한다.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책과 시집을 자의적으로 출판금지 조치했던 1970~80년대 독재정권 시절 한국의 상황이 약 100여 년 앞선 프랑스에서도 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보들레르의 시는 작품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표현 기법이나 시작 태도 등에서 새롭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이후 프랑스 시단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주로인 기독교적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이교도적인 면모를 드러낸 작품 경향이 문제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보들레르는 재판 과정에서도 자신을 ‘사실주의자’로 평가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에 드러난 상징주의적인 경향에 오히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이해된다. 특히 에로틱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사탄’이나 이교도를 숭상하는 듯한 작품의 내용도 기존의 지배적인 관념과 충돌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비록 번역의 형태이지만, 이 시잡에 드러난 때로는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 21세기에도 조금은 새롭게 보인다고 이해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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