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의 치하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다시 남북으로 갈리며, 그 이후 지금까지 분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가라고 칭해지고 있지만, 분단 상태가 언제 해소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물리적인 상황의 남북의 분단도 풀어야할 과제이지만, 그로 인해 여전히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의 분단은 사람들 사이에 ‘이념의 갈등’으로 표출되었고, 그로 인한 상처는 한국 현대사에서 깊게 아로새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갈등의 원인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되었고, 다만 누군가 그것을 이념의 잣대로 갈라놓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제주 4.3 사건’과 그 연장선에서 육지로 옮겨 붙은 ‘여수 순천 10.19 사건’ 등 1948년에 시작된 두 사건이 바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오랜 동안 이념적 잣대로 인해 ‘반란’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었지만, 최근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두 사건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애꿎은 국민들이 희생되었던 것으로 규명되기에 이르렀다. 단지 그것이 이념 갈등으로 규정되면서,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이들에 의해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조차 없었던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당시 희생자들 대부분은 ‘이념’이 아닌 ‘일상’ 혹은 ‘생존’의 문제로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편가르기’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제주 4.3’에 이어 ‘여수 순천 10.19’의 의미가 재조명되고, 특별법에 의해 억울한 희생을 기리는 작업이 시작된 것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조치라고 하겠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에 깊게 아로새겨진 비극을 단지 ‘이념’의 문제로 쉽게 치부할 수는 없을 터, 개개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사연을 토로하고 그동안 맺힌 한을 풀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남 순천 출신의 작가인 저자는, ‘여순 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유족들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구술을 채록하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억눌렀던 ‘이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동안 꼭꼭 숨겨야만 했던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날이면 저자는 막걸리를 사들고 마신 후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누군가는 ‘이념’이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총을 들고 맞서다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산사람’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전까지 이웃으로 지내던 그들이 찾아와 밥을 청하고 도움을 청하면 모른 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산사람’에게 밥이나 물을 건네주는 등의 사소한 호의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했다는 사실이다.그렇게 희생당한 이들의 남은 가족들은 이후에도 ‘이념의 편 가르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제주 4.3’이나 ‘여순 사건’의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할 수 있었던 시기는 그리 얼마 되지 않는다. 전체 6편 중에서 4편은 유족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면서 작가의 마음을 울린 사연들로, 비로소 수 십년의 거리를 두고 작품으로 형상화된 것들이다. 표제작인 ‘공마당’은 순천에서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근거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모두 ‘여수 순천 사건’의 겪은 후 살아남은 이들의 후일담을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작가 자신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호금조’라는 작품을 함께 엮은 소설집이다. 비록 일부의 목소리이지만 작가의 소설을 통해 당시 비극적인 사연들의 일부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