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살았던 한 부부의 삶을 21세기의 시점에서 살펴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가족을 이끌며 살아야 했던 당시와 생활 방식과 지금은 크게 달라졌고, 남녀의 사회적 역할도 이미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가 유지되던 조선시대의 관념에서 바라본다면, 21세기의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그저 하나의 풍속사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하겠다. 당쟁이 치열하던 시기 노론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인 송준길의 증손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대헌 송요화(宋堯和;1682~1764)이다. 그와 혼인을 맺었던 인물 역시 노론으로 분류되던 장동 김씨 집안의 호연재 김씨로, 이들은 당시의 관례에 따라 학연(당파)에 따른 혼인을 했다고 하겠다.
이 책은 그들이 살았던 대전 송촌동의 소대헌과 호연재 부부의 옛집을 답사하고, 여러 기록들을 참고하여 17세기 당시 그들 부부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아울러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조선시대 양반가의 풍습과 가문 의식,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물들을 통해 조선시대 풍속사의 일면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제 그들이 살았던 집은 한옥과 전통적인 주거생활을 답사하는 현장이 되었고, 사용했던 물건들은 따로 보존하여 선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파트가 보편적으로 주거하는 양식이 되었고, 단독 주택의 형식도 더 이상 한옥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본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는 소대헌과 호연재 부부가 혼례를 치르고 송촌가옥에 정착하는 과정부터 소개하고 있다. 대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이니만큼 자식이 결혼하면 따로 살림집을 지어주는 것이 당시 양반들의 관례였기에, 어른들이 사용하던 동춘당과는 별도로 부부를 위해 별채를 짓고 각각 부부의 당호이기도 한 소대헌과 호연재가 자리를 잡았다.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은 그대로 남아, 지금은 선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결혼과 함께 부부가 되고, 호연재는 30여 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대가족을 이끌어나갔을 것이다. 그들의 생활상은 당시의 호적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전하는 호패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경우 남편이 생활하는 사랑채와 부인이 사용하는 본채로 구분되었는데, 이 역시 대외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처지를 반영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그럼 점에서 남편인 ‘소대헌의 하루 또는 연중 생활’과 ‘안방마님 호연재의 하루 또는 연중 생활’을 구별하여 소개하고, 당시 남성들의 배움의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부인인 호연재의 경우 친정 식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한시가 전하고 있어, 문학적 재질을 지녔던 여성들의 배움의 과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전해지는 놀이 용품을 통해서 당시 부부가 즐겼음직한 전통 놀이들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진출하기도 하는데 소대헌 송요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음직이란 특별한 인물이나 가문의 후손들을 과거를 통하지 않고 관직에 임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한글로 편지를 부도받기도 했으며, 소설을 베껴 읽고 보관하기도 했다. 호연재 김씨처럼 특별한 경우 친정 식구들과 한시를 주고받아 후손들에게 전해지는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전해진 글들을 모아 후손들에 의해 <호연재집>으로 묶여졌으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 작가의 목록에 한 사람이 추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호연재 김씨는 남편보다 먼저 죽어 무덤에 묻혔다가, 남편이 죽은 후에 42년 만에 남편과 합장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부부 가운데 누군가 먼저 죽더라도 나중에 합장하여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대전 송촌의 종가를 답사하고 다양한 자료를 구하여 조선시대 양반의 생활상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책이라고 할 수 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