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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일)
이동 : 바라나시공항 - 호텔체크인 - 점심식사 - 강변골목 - 가트 - 푸자의식 - 호텔
- 바라나시에 도착하다
전일 델리 힐튼호텔에서 1박, 낮선곳에서의 하루밤을 보내고 뿌옇게 찌든 대기를 보며 다시 공항으로 향해 이곳 바라나시에는 대략 12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작은 도시가 아닌것을 알리듯이 공항이 있는 지방도시,
하지만, 공항밖은 여느 시골못지 않은 시골스러운 곳으로 보인다
수하물을 찾아 공항밖으로 나서자 공항건물 밖으로는 휑하니 공터와 주차장 그리고 걸인과 릭쌰 호객꾼으로 가득하다. 순간 어느 승객이 릭샤를 불렀는지 우루루 하고 호객꾼이 앞다투어 승객을 향해 뛰어간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마도 패키지가 아닌 배낭을 메었으면 저 호객꾼에 휩싸여 정신없는 바라나시의 초행길을 맞이 했을지도 모른다.
버스는 협소한 도로를 지나 우리가 묵을 호텔로 향한다.
호텔식사
호텔 : Clarks Varanasi
아침 델리에서의 호텔식은 못마땅했다.
오전 6시30분부터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일곱시에 도착한 식당 인덕션에는 막 올려놓아서 미지근한 카레가 기다리고 있었었다.
점심은 인도에서의 제대로된 음식을 맛보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일행 일부는 벌써부터 - 아니 출발전부터 - 음식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난과 카레 그리고 날아갈듯한 밥으로 점심을 마치고 배정받은 룸으로 짐을 부려놓는다
혼돈의 도시
호텔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바라나시 여행을 하는 가장 핫한 장소로 가기 위해 최대한 가까운곳에서 내려준다.
이곳부터 시장입구까지는 싸이클릭샤를 타기로 한다.
걸어가도 되겠지만, 아니 많은 순례자를 포함한 인도여행객들은 도로에 가득하다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 릭샤, 그리고 소 돼지 개 염소,,,
두발이던 네발이던 발, 바퀴 이동을 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갖고 있는 모든 매개체들의 집합소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
거리에는 위와 아래로 꺼지고 오를 수 없는 것 외에는
모두 좌와우, 그리고 앞과 뒤로 흐름의 연속이다.
발이 디딜수 없을 정도의 빽빽한 도로를
우리 싸이클릭샤는 사이사이를 비집고, 때로는 틈새를 내어주면서 목적지인 시장입구로 향한다.
비쩍마르고 곰발바닥같은 두껍고 거칠어진 가죽발로 페달을 밟아가면서
우리 아저씨는 앞으로 앞으로 그들만의 대화를 해가면서 가이드(길벗님)가 알려준 장소로
한바퀴 한바퀴 바퀴를 굴려가며 나아가고 있다.
순간... 이런 순박한 이에게 몇푼되지 않는 팁이라도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한다.
[바라나시 거리의 풍경]
[자전거 오토바이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후에 지우개로 지워버려야 했다.
자전거 손잡이를 잡던 오른손이 뒤쪽으로 향하더니 팁을 달라는 손짓을 해대기 시작한다.
릭사아저씨 와 나 사이에 의사소통을 할 방법은 오로지 바디랭귀지 밖에 없다.
그 행동을 못 읽을 내가 아니다.
갑자기 헉 하고 숨이 멈춰진다.
하지만,,, 그래 그 1, 2 달러로 초반 여행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달하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2달러만 주라고...
주머니에서 2달러를 꺼내주니 허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내가 우러나서 주는 팁과 요구에 아니 약간은 강요된 느낌의 팁은 그런 느낌이 든다
잊자,,,
아직은 인도를 느껴야 할 것이 많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출발전의 자전거릭샤, 곰발바닥 아저씨가 뭔가를 주물럭거리고 있다]
[바라나시 시장 좁은 골목길]
바라나시 시장
여전히 어린시절의 기억이 새록하다.
삼양동이란곳의 그늘진 판잣촌
벌이가 시원치 않던 가장들의 어스름한 저녁의 골목풍경
그리고 어린아이들로 가득하던 동네
그렇지만 그 풍경도 이렇지만은 않았다.
오십년이나 지난 풍경이 이곳 바라나시 골목시장에서 어렴풋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아이들의 신신한 당부
"엄마손 놓지말고 꼭 잡고 다녀야 해요"
꼭 잡은 마님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마주치는 행인들을 피해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닌다.
우리 가이드는 이곳에서만 3여년을 홀로 지냈다고 한다.
이곳 시장 그리고 바라나시를 눈감고도 지도를 그릴수 있을 정도라 하니
그 어떠한 매력이 이 한국에서 온 여행객의 발을 잡았을까?
점점 더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가야 하나...
아직은 이제 이 정신없는,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골목 중간즘 가이드가 발길을 멈춘다.
여성분들에게 미간에 붙일 장식(인도여성들의 붉은 점 같은)을 해보기를 권한다.
20루피(우리가 구매했으면 얼마를 불렀을까...ㅎ)에 다섯개의 장식품을 구입하고 미간에 장식한다.
다시 골목길을 따라 갠지스강 강가방향으로 향한다.
마주하는 흰색옷을 입은 일행을 보고 길벗님의 그리 얘기한다.
화장을 하고 돌아가는 상주와 친척일행들이라고...
가는길에 빨간 핏물이 드문이게 보인다.
저게 뭐데요?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씹는 입담배 물이라고 한다.
연기를 내는 입담배가 아닌 깻잎같은 잎에 뭔가를 싸서 씹으면 입안에 고인 물을 뱃은것이라고...
한참을 골목길에서 있었나보다.
느낌이 갠지스강의 냄새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
골목을 빠져나오니 엄청난 인파가 그리고 여기저기 수많은 화장의 풍경이 시선에 잡힌다.
갑작스레 마주친 장면에 놀란 여성일행들은 고개를 돌린다.
앗 이거구나...
손잡은 마님의 고개를 돌리게 하여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무심하게 보아야 하는 광경을 다른 느낌을 갖고 보면 한동안은 힘들 장면이라고...
이제 막 시작하는 화장, 한참 진행된 화장 그리고 장작더미위에 올려지고 있는 시신....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그 광경을 무심하게 본다.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 상주나 주변사람이 카메라를 뺏기도
한단다. 죽은자의 영혼을 카메라 사진으로 뺏긴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갠지스강, 윤회 그리고 해탈
갠지스강을 찾는 이유를 길벗님이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
갠지스강은 신성한 성지라 모든 인도인(힌두인, 불교인)에게는 생전이던 사후이던 이곳 갠지스강의
물로 목욕을 하고 화장을 해서 뿌려지면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을 한다고 믿는다 한다.
그래서 돈있는 사람들은 멀리서라도 죽음을 앞두고 이곳에서 있다가 죽음을 맞이해서 화장을 하고
어머니인 갠지스강에 돌아가는것이 최고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어떤이는 재산을 정리하고 은팔지 두개만 팔목에 차고 이곳 바라나시에 와서 노숙 및 구걸을
하다가 죽게되면 그곳 사람들이 은팔지 두개를 팔아 장작을 사다가 화장을 하고 갠지스강인 어머니품에
돌려보낸다고 한다.
신성한 갠지스강은 유유히 흐르고 그 건너편 모랫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건기라서 강폭은 그다지 넓진 않지만 저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나무가 보이는 곳이
강의 끝이라고 한다. 우기가 시작되면 강의 물살과 폭은 어마무시하게 넓고 거칠어진다고 하나...
[갠지스강이 보이고 저건물아래에서 윤회의 사슬을 끊고자 화장의식을 하고 있다]
가트(Ghat)
가트, 계단이라고 한다.
이곳 바라나시의 가트는 워낙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해서 목욕, 화장, 물을 길어가는 곳이라
도시에 붙어 있는 곳에 돌과 세면으로 계단을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강의 접근을 편리하게 해놓은
곳이다.
때가 건기인지라 가트는 거의 아래쪽까지 열려있었는데 우기에는 거의 위쪽까지 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가트위로는 일반인들의 가옥도 있지만 신을 모시는 사당이 즐비하다.
주 출입구 옆에는 힌두신들의 으뜸인 시바신이 위용을 펼치고 있다.
[갠지스강에서 바라본 가트의 모습]
푸자의식
시간이 얼추 다섯시즘 되어 간다.
호텔로 돌아가는가... 싶은데
힌두의식이 있으니 보고 갈거라고 길벗님이 알려준다..
아... 푸자의식.... 힌두교 의식이라고...
신들을 깨워 자신들의 복을 비는 종교의식으로 매일저녁 이곳 갠지스강 가트에서 거행된다
맨앞에 제단을 차려놓고 종교의식을 진행하는 사제단이 있고 그 앞으로는 신도들이 가트계단에
열을 맞춰 앉아 의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옴"....으로 시작하는 경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펴지고 제단위에 우산형태의 등장식 대여섯개가
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일행도 제단오른쪽 중간 평상위에 앉아서 종교의식이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끝날때까지 있으면 나갈때 복잡해서 못나가니 큰 불을 돌리기 시작하면 일어나요"
길벗님이 이 의식에서 우리가 일어나야 할 때를 알려준다.
푸자의식은 갠지스강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강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찾아 제단으로 올라와서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한다.
종을 치고, 작고 큰등불을 돌리고 , 경을 읽고, 뿌우하는 악기를 불고 북을 치고,
조금은 종교의식에 색다른 부분이지만 리드미컬한 박자와 음율로 경을 읽으며 흥을 돋구고 있다.
어느덧 길벗님이 얘기해준 큰 등불을 들고 흔드는 춤사위가 시작된다.
이제 일어나서 이 가트를 빠져나가 호텔로 가야 할 시간이다.
얼추 일곱시반즘,,,,
[의식은 갠지스강에서부터 시작된다]
[푸자의식의 한장면, 인도인들도 이 의식을 담기위해 카메라를 꺼내든다]
다시 혼돈의 도시
도로에 질펀하게 퍼질러놓은 소똥을 피해 일행은 꼬리를 물고 길벗님을 따른다.
이번엔 오토릭샤 팁을 절대 주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시장통을 빠져나와 길벗님은 오토릭샤와 흥정을 한다,
흥정이 끝났나보다.
오토릭샤에 4명식 탑승한다.
여행객은 편하게 4인승이지만, 현지인들은 같은 릭샤에 7~8명정도가 타고 있다,
가운데 앉은사람은 처음에 탄 사람이겠지만, 옆에 가까스로 앉은 사람 뒤에 매달린 사람
릭샤운전수옆에 매여 가는 사람....
빵꾸가 안나는지 모르겠다.
언제 이렇게 많은 교통량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낮에 왔을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엄청나게, 아니 빽빽하게 왼켠도로(이곳은 좌측통행)는 릭샤 사이클 자동차로 매어져 있다.
이들의 운전대에는 어느 수단이고 가리지 않고 클락숀이 있다. 자전거링, 오토바이 크락숀
자동차 클락숀,,, 쉼없이 이곳 공간을 소리로 채워놓는다. "찌리링 삥삥 빵빵... 그리고 큰소리"
사이만 보이면 머리를 디밀고 한발을 앞서기를 반복하며 우리가 탄 오토릭샤는 한바퀴씩 나아간다
거의 앞에서 끌어주는듯이 어쩌면 뒤에서 밀어주는 듯이...
혼돈속의 이들만의 질서
그러한 엄청난 소음과 빽빽함에도 그들은 어떠한 트라블이 없는듯 하다.
낮의 그 수많은 인파에서도 분쟁이 생겼다거나, 싸움이 일어났다거나, 큰소리가 난다거나,,,
저 정도 인파면 어디선가 머리끄뎅이 잡고 싸움이 일듯도 할텐데...
전혀
단지 강한 소음이 있을 뿐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
이방인에겐 강한 인상을 주던 일
그럭저럭한 평온이 있던 날
릭샤는 우리호텔을 찾지 못하는지 헤메고 있다.
머리를 갸우뚱이며 가던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다.
너 왜그러니?
말이 통해야 묻지...ㅠㅠ
마침 주머니에 호텔룸 카드키가 있다.
보여주니 끄덕이며 호텔로 향한다.
수고했다 하며 호텔로 들어간다..
야간결혼식
호텔로 들어서는데 결혼행사가 호텔야외무대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결혼식을 할까?
때가 건기인지라 요즈음에 결혼식이 많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하고 미팅을 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사온 팩소주와 알타리김치 그리고 약간의 안주로,,,
이것참
술도 한잔해야 하고 결혼식 구경도 해야하고...
결혼식을 조금보고 회합을 하기로 한다.
이들의 결혼은 저녁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한다고 한다.
기후탓이겠지
한낮의 찌는듯한 더위를 피해 시원한 야간에 결혼식을
야외무대주변에 호텔에서 준비한 먹거리와 차 등을 준비해놓고 손님을 맞는다
무대에서는 노래쫌하는 가수도 있었지만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 댄스와 퍼포먼스를 한다.
이런행사가 늦게까지 진행한다는 길벗님의 뒷얘기가 전해진다.
아쉽지만 회합을 위해 호텔룸으로 들어간다.
12월 10일(월)
이동 : 호텔 - 갠지스강일출 - 호텔 - 사르나트 - 호텔 - 쇼핑 - 바라나시역
갠지스강의 일출
다섯시 모닝콜이 울린다.
"날씨가 쌀쌀하니 조금 따듯하게 입고 나오세요"
한국에서도 새벽일출은 조금 쌀쌀하다는 얘기를 듣고 바람막이를 준비해갔다
조금 쌀쌀하지만 우리 중간가을 날씨 정도 되는날씨이다.
호텔앞에서 버스에 오르고 잠깐의 이동으로 - 새벽이라 교통량이 현저하게 없는 - 시장입구에
도착한다.
이렇게 짧은 거리인데 그렇게 많이 걸리다니..
이것들 하나 사세요
갠지스강위에 띄울 연꽃모양의 작은 등불이다.
10루피였었나...160원...
바로 가트를 내려가 시바신앞을 조금 지나 뱃사공과 흥정한 길벗님이
배에 오르라고 한다.
흔한 노젖는 배
좌우로 중심을 맞춰야 흔들림이 없어 인원수에 맞춰 자리에 앉는다
배는 상류로 올라갔다가 다시 하류로 내려간다.
가끔씩
갈매기들 먹이를 팔려고 가까이오는 배
기념품을 들고와서 사라고 오는 배
선상에서 바라본 가트의 모습은 가트안에서 바라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상류에서 하류로 방향을 바꿀즈음 들고온 연꽃등을 강에 띄우라고 한다
조심히
잔잔하게 흐르는 갠지스강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강물위에
연꽃등을 띄운다
나도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을 할 수 있을까....
수행도 없이 그럴수는...없겠지
하나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기로 한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이른새벽임에도 팬티(기저귀형태)만 입고 수영하는 노인, 강물로 양치를 하는 사람
강물을 마시는 노인(실제로 마시지는 않고 시늉만 한다고 한다),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들,,,,
몸에 오일을 바르는 남자,,, 여성은 거의 찾기가 어렵고 모두 남자들 그것도 노인들이다
하류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즈음 해가 뜨기 시작한다
갠지스강에서 떠오르는 해
한강에서 떠오르는 해
뭐가 다르겠냐 마는
이곳 인도인들의 성지인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 의미를 달리 가지고 있어도 괜찬겠다싶기도 하다
[목욕하는 노인들]
[갠지스강을 떠나며]
이제 가트로 올라 호텔로 가는 길이다
이른 아침시간이지만 벌써부터 시장골목은 북적이기 시작한다
일행에게 붇는다
"혹시 기회가 되면 다시 이곳 바라나시에 올 사람?"
30%는 오지 않는다
70%는 다시 오겠다.
[갠지스강 시장을 벗어나며, 이른시간이라 행인의 발길이 뜸하다]
[사르나트 Sarnath]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호텔앞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사르나트로 향한다.
가는길 고가도로위에서 멈춘 버스는 무슨일인지 움직이질 않는다.
흔치 않은 일인데... 길벗님도... 궁금해 한다.
한참이나 서있던 버스는 사르나트박물관앞에 멈춘다.
호텔로부터 북쪽으로 30여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사르나트에 도착을 했다.
박물관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단, 촬영을 하기위해서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부처님의 첫번째 설법장소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사르나트는 불교의 4대성지중 하나라고 한다.
1. 부처님이 태어난 곳 룸비니
2.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곳 보드가야
3. 부처님의 첫설법지 이곳 사르나트
4. 부처님의 열반지 쿠시나가라
이중 한곳인 사르나트
인도국기에 나오는 수레바퀴가 있는곳,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다고 의미를 하는 문양
이것이 인도국기에 나오고 인도정부는 이 돌로 조각된 이수레를 수도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옮겨놓기를
원하지만 이곳 사르나트에서는 불교성지인 이곳에 계속 유치를 하겠다고...
부처는 열반에 들면서 어떠한 형상도 남기지 말것을 주문하였으나 후세 추종자들은 부처의 형상을
만들어 종파의 번성을 이루고자 하였다고 한다.
이 박물관안에는 우리 반가사유상보다 더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가부좌를 튼 부처상이 있었다.
수많은 외침중에 이스람권의 침략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불상의 코는 잘려나가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박물관옆에는 녹야원(Deer Park, 사슴공원)이 있고 이 곳에는 옛날 수도를 하던 스님들이 기거를 하면서
수행을 하던 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그 학교터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고 하니..
[부처님의 초전법륜터 녹야원의 옛터와 온전하게 남아있는 탑을 배경으로]
우리 혜초스님도 이곳에 왔었을까요?
아마 보드가야에 가셨을 겁니다....
아바타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
힌두교에서 신령이 인간이나 짐승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타나는것을 가르킨다.
첫번째 : 물고기 (Matsya)
두번째 : 거북이 (Kurma)
세번째 : 멧돼지 (Varaha)
네번째 : 반인반수 (Narasimha)
다섯번째 : 난쟁이 (Vamana)
여섯번째 : 도끼를 든 라마 (Parashurama)
일곱번째 : 크샤트리아 (Rama)
여덟번째 : 크리슈나 (Krishuna)
아롭번째 : 붓다 (Buddha, 부처)
열번째 : 칼키(Kalki, 미래의 화신)
아홉번째 화신으로 나타난 붓다(부처님)이 힌두교의 신화에 나타나는 아바타중 하나이다
8만개에 달하는 힌두교의 신들중에 하나의 신으로 불교는 힌두교에서 파생되어 정제된 종교로
보여진다.
인도는 불교가 탄생한 나라이지만 힌두교 국가이다. 불교는 융성하여 주변국가로 전도되었지만
정작 불교성지인 인도는 힌두교의 한켠에 있는 하나의 신에 불과한 존재였음을...
[녹야원 사원을 들어갈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신발을 맡아주면서 팁을 달라고 하니 조금 줘야 한다]
쇼핑을 하고
버스를 타고 호텔에서 점심을 하니 두시남짓한 시간이다
네시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는다하며 주변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하고 역으로 가자고 한다
저녁 야간 침대열차로 이동을 하려면 물을 포함 간단하게 먹거리가 필요하여
물과 과일 을 조금 산다.
이 계절에는 과일이 맛난게 나오질 않는다 해서 기껏 석류하고 물만 사고
개인적으로 인도카레류, 샤프란을 구매하기로 한다.
바라나시역
다섯시조금넘어 바라나시역에 도착한다.
기대반 걱정반이다.
중국에서 특급침대차 일반침대차로 경험을 한 터라 나는 별 걱정이 없었지만
마님과 일행 등 처음 접해보는 문화에 긴장들을 하는 모습이다.
여전히 먼지 폴폴나는 길위에 호객꾼들이 말을 건넨다.
아마 짐을 들어주고 팁을 받겠다고 하는거 겠지...
다행히도 에스컬레이터가 운행중이라 조금 쉽게 올라섰는데
플랫폼으로 내려서는 길은 계단이다.
하나 의아한것은 개찰구가 없다.
우리 외곽쪽의 전철역과 유사하지만 개찰구도 역무원도 없고 자유로이 왕래가 가능하다.
"이즈음에 있으면 됩니다." 라는 길벗님, 그리고 체인을 사오겠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다.
체인은 야간침대열차에서 혹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도난에 대비해 케리어를 기둥에 묶어놓기 위해서이다.
아랫쪽 철로에는 상상이상의 변과 오물이 바닥에 질펀하다.
건너편 멈춰선 기차에서는 승객이 하차하여 선로에 있는 수도를 틀어놓고 양치와 세수를 한다.
그 물은 뜨거운 열차를 식히기 위해 있는 수도라 한다.
잠시후 체인과 도시락을 들고 오신 길벗님
그리고 몇량의 후줄근한 객차가 들어오고 우리가 탑승할 침대열차가 들어온다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로 가는 야간침대열차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전엔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까지 버스로 여섯시간이상 달려와야 카주라호로 올 수있었다고 한다.
[바라나시 역] - 1호선 구로역과 흡사하다
[야간열차]
객차풍경
중국에서의 침대칸과 사뭇 다르다
중국은 복도가 있고 왼편으로 여섯칸 내지 네칸의 침대가 있다
여기는 복도가 있고 왼편으로 여섯칸의 침대 오른편에 두칸의 침대가 있다.
같이 여행하는 코레일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이곳 기차선로가 우리 선로보다 훨씬 넓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왼편침대칸(가로배치) 복도외에 오른쪽에도 침대(세로배치)를 놓을수 있나보다
어렵게 침대티케팅을 했다고 하는 길벗님의 얘기대로 침대칸은 붙어있지 않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하룻밤인데 뭘.... 하면서 버티기로 한다.
침대칸안에는 인도인 외에도 여행객들이다.
대체로 잘사는 인도인들이기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침대는 동양인키에 맞게끔 사이즈가 되어있고 내자로 된 감색러버로 쌓여 있다.
침대위에는 담요한장이 있고 열차가 출발할때즘 승무원인듯한 남자가 대봉투에 쌓인 물품을 건넨다
담요시트인가 보다.
그 승무원이 무어라고 묻는다. "니너" "디너"... 라고
무슨뜻인지 몰라 대답을 하진 않았다.. 나중에 보니 "Dinner?" 저녁주문하란 뜻...
침대밑에 체인으로 케리어를 묶어놓고 일행이 많은 곳으로 모인다.
저녁식사
여섯시즘 출발한 기차 12시간을 달려 그다음날 아침에 내려주니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우리는 길벗님이 한식도시락을 주문해 놓았다고 한다.
한국식당에서 일하던 인도인이 이곳 바라나시에서 한식도시락을 주문받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카레음식을 못먹던 일행들 한식도시락 맛이 너무 좋다고...ㅎㅎ
어설프지만 김치에 장아치에 밥도 찰기가 있는 밥에
한국에서 먹던 도시락에 버금간다.
잠자리에 들며
중간에 모인 여덟자리에는 우리일행 3명, 빈자리 2자리, 그리고 중국인부부 2명
그리고 배낭여행객이 배낭을 내려놓으며 한국말로 투덜거린다.
"한국인이세요?"
여행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반가운 사람도 있지만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다.
흔한 깃발부대 아주머니들,,, 소란스럽고 유난스럽게 한국인 티를 내는 여행객들
지금은 중국깃발이 유난스럽지만 예전엔 한국깃발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반갑지 않은 민족이었던 한국깃발민족,,,
티벳에서 트래킹을 하고 콜커타를 경유해서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에 왔다가 카주라호로 간다고 한다.
저녁으로 간단하게 준비를 하였는데, 우리일행 한명이 식사를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 배낭아저씨는 횡재를 하게된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포장도 안뜯은 팩소주를 하나 건네주었다
한식도시락에 소주를 받았으니 로또당첨된 기분일듯...
이 배낭아저씨 침대칸이 3층이라 우물거린다. 1층이 좋은데..
중국어를 조금 하는 내가 나섰다.
중국인이시냐, 어디서 오셨나.... 쓰촨 청두(성도)에서 온 부부인데 이들도 카주라호로 가고 있는 중...
간단하게 몇마디하고 이 배낭족이 1층을 원한다고 하니 선뜻 여자분이 오케이를 한다.
왜일까....
이들 중국인은 침대열차 여행이 잦다. 게다가 3층은 1층에 비해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니 선뜻 오케이를 하지 않았을까...
3층에 오른 여자분은 한참이나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고 가끔 남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우리도 잠자리에 들어야 겠다.
조금전 마님자리(3층)에 어떤이가 자리를 한다.
왜? 우리자리인데...
이친구 자기키가 너무커서 발이 문에 걸린다고 양해를 바란다고 한다..
참.. 별일이 다있구나... 하며 그렇게 하라고 한다.
마님이 내가 사용하려던 복도2층을 쓰기로 하고 내가 3층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사람이 다니는 복도옆이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별일 있겠나 싶어 잠을 청해본다.
발
[3층칸이다. 발쪽 객실문에 발이 걸린다고 키큰 여행객은 자리를 바꿔달라고 했다]
첫댓글 메인가트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